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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의 놀라운 편집의 힘

추상적 개념 남발 아니, 아니 됩니다

대선과 슬로건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추상적 개념 남발 아니, 아니 됩니다

추상적 개념 남발 아니, 아니 됩니다

어떤 후보가 18대 대통령이 돼 청와대에 들어갈까.

6월 말 현재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후보로 나선 이는 10여 명이다. 현재까지 각 후보군이 내세운 슬로건을 평가해본다.

◆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이 행복한 나라’

새누리당의 최종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하지만 친박(친박근혜) 캠프는 최종 슬로건을 꺼내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박 전 비대위원장이 지난 총선 유세 때 강조했던 구호다. 개성 없고 밋밋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른 후보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콘셉트 개발이 관건이다. ‘유신의 딸’ ‘수첩공주’ ‘얼음공주’라는 야권의 비판 공세를 무력화할 수 있는 단순명쾌한 비전 제시가 절실하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현재까지 안철수 원장은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각종 강연에서 사회적 모토로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강조한다. 정치, 경제, 외교, 문화와 관련해 각을 세우는 주의주장을 삼가는 강연 스타일을 지닌 그가 막상 대선 본선에서 어떤 현장 경쟁력을 발휘할지 미지수다. 각종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 능력이 시급하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들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상임고문은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시민이 직접 정치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중심 세력인 보통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동행’ 콘셉트는 참신하다. 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엔 미력하다.

◆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저녁이 있는 삶’

한 편의 시 제목을 연상케 한다. 손 고문은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대한민국 미래는 “누구나 가족, 이웃과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이라고 말했다. 손 고문 캠프가 그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와 동시에 ‘국민과 소통하는 소통령, 중소기업을 살리고 중산층을 넓히는 중통령, 국민 대통합과 남북 대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라는 참신한 레토릭도 구사했다. 언론의 눈길을 일단 붙잡았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 ‘막연한 대세론은 거품’

김 지사는 공공기관 청사 앞에 내걸 법한 ‘서민 민생 통합의 리더십으로 선진통일 강대국 달성’이라는 관료적 슬로건을 내세운다. 요즘 그가 생산하는 메시지는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반박이 대다수다. 즉 ‘박근혜 대체재’로 자신을 강조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밖에 ‘한국의 룰라’가 되겠다는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서민의 정치’를 외쳤지만 그의 특별함 없는 외침은 수도권까지 북상하지 못하고 있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위대한 국민과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내세웠는데 오히려 한반도 힘의 균형을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만 주목받고 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가난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생활 정치, 서비스 정치’를 화두로 내세웠지만 파장 없는 소박한 정견 발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개념을 남발하는 정치인의 속내는 자신이 내건 공약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국민은 눈앞에서 그림 그리듯 생생하게 말 걸어오는 대선 후보를 원한다.



주간동아 843호 (p57~57)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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