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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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이냐 탈출이냐 이혼의 5가지 심리학

서로에 깊은 상처와 후유증 이혼 결정 심사숙고해야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입력2011-10-17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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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벌이냐 탈출이냐 이혼의 5가지 심리학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과거와 다르게 이혼이 흔한 일이 됐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도 임상 진료 현장에서 이혼을 앞둔 부부의 부부치료 또는 가족치료를 많이 경험한다. 또한 이혼 후에도 당사자와 자녀의 심리적 어려움을 상담하는 치료 과정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혼 사유는 여러 가지일 테고, 부부간 얽힌 수많은 사연과 사정 또한 제각각이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의 경험과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혼의 심리학적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징벌이다. 징벌이란 말 그대로 옳지 않은 일을 하거나 죄를 지은 데 대해 벌을 내리는 것이다. 배우자의 부정 또는 외도를 경험했을 때 주로 취하는 형태다. 감히 나를 두고 다른 여성(또는 남성)과 바람피우다니, 용서할 수 없다는 심리다. 분노와 실망감에 배우자를 비난하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다가 최후 선택으로 이혼을 결정한다. 가장 높은 징벌 수위가 바로 이혼이기 때문이다. 비록 법원 판사의 결정에 따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라 할 수 있다. 물론 배우자가 외도했다고 모두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마 다른 형태의 징벌을 계획하거나 실행할 것이다.

    둘째, 취소다. 그동안의 결혼생활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의미가 크다. 이러한 결정은 대부분 짧은 결혼생활 끝에 이뤄진다. 신혼여행을 갔더니 연애 시절에 알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을 보였다고 하소연하곤 한다. 신혼여행지에서 심하게 다투면서 배우자 집안까지 비난한 다음에는 영락없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결혼 전 꿈꾸던 남편 결혼 후엔 악몽

    또한 결혼하고 1~2년을 지내보니 결혼 전 꿈꾸고 기대했던 남편(또는 아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전혀 다른 모습의 배우자를 봤다고 불평한다. 자상하게 자신을 보호해주고 의지 대상이 되리라 기대했던 남편이 결혼 후 슬슬 무관심해지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거나 면박을 준단다.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심신이 피곤한데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컴퓨터 게임만 하는 남편에게 어느덧 살의마저 느낀다는 아내도 있었다.



    권위주의적이고 냉담하며 무서운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정반대 성향을 지닌 남편을 선택했건만 그것은 완전한 오판이었고, 끔찍이도 아버지와 비슷한 남자를 선택한 셈이 됐다. 그래서 이제 취소하련다. 물건을 잘못 구입하면 환불이나 반품 또는 교환을 할 수 있지만,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으랴. 그러니 무조건 이혼이다. 이 경우 어리둥절한 것은 배우자다. 내가 그렇게까지 큰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상대방이 막무가내로 이혼을 요구하니 처음에는 버티다가 결국 이혼에 합의한다.

    셋째, 탈출이다. 흔히 악몽 또는 지옥 같았다고 표현하는 결혼의 경우다. 많은 경우 학대하는 배우자가 문제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심하거나 사사건건 간섭하고 구속하며, 잔소리를 해대는 배우자에게 질린 나머지 이혼을 선택한다. 어떤 부인은 필자와 상담하는 중에 “나는 부부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는다. 폭언도 듣는다. 처음에는 모멸감과 수치심이 나를 괴롭혔는데, 이제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다. 이젠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경우 마침내 이혼에 성공하면 기쁨은 잠시일 뿐, 허탈감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탄식으로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린다. 당연히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나 회상 자체를 회피한다. 상담하는 중에 과거의 남편 또는 아내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불안 반응을 보이면서 몸서리를 치거나 눈물을 흘리곤 한다.

    넷째, 혐오다. 흔히 성격이 서로 안 맞아서 또는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등의 이유로 이혼하는 경우다. 서로 사랑할 때는 상대의 행동이 다 곱게 보인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가면서 상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옷을 옷장에 넣지 않고 침대에 걸쳐놓는 등의 사소한 습관을 지적하기 시작한다. 배우자는 이런 지적을 비난 내지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번에는 배우자 차례다. 상대방이 샤워를 하고 나면 욕실 바닥이 물에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을 비난한다. 이쯤 되면 서로의 못마땅한 생활습관뿐 아니라 말투, 행동, 지출 명세 등으로까지 갈등 전선을 확대한다. 오랜 기간 서로 다투다 보면, 상대를 싫어하는 단계를 넘어서 혐오의 감정까지 든다. 혐오 대상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래서 이혼에 이른다.

    다섯째, 욕심이다. 이혼이 자신에게 안겨줄 여러 이익에 대해 생각한다. 또는 이혼하지 않으면 겪게 될 불이익을 피하려고 이혼을 선택한다. 배우자와 재산 문제 또는 빚 관계가 얽혔거나, 새로운 이성이 나타난 경우도 있다. 현재의 결혼생활을 접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는 냉혹한 판단을 내린다. 물론 배우자와의 사랑이 식었기에 이혼을 쉽게 결정한다.

    차라리 접고 새 출발 냉혹한 판단

    징벌이냐 탈출이냐 이혼의 5가지 심리학
    간혹 배우자를 좋아하지만, 성공과 출세를 위해 이혼하기도 한다. 마치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돈과 권력을 좇아 배경 있는 이성을 선택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혼 사유에 해당하는 여러 문제 행동을 보이면서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이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아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이혼한 것 이상으로 망가지고 단절된 부부관계지만 이혼을 해주지 않기에 배우자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경제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거나 몹시 이기적이고 지배적인 사람의 경우다.

    이혼의 심리적 이유를 이처럼 다섯 유형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 무리다. 이외에 다른 이유가 많을 테고,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혼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혼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제 진행 과정에서 이혼을 철회하며 오히려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도 꽤 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기에 이혼은 사실 사랑의 종말이라 볼 수 있다. 사랑의 종말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따라서 결혼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혼을 하려거든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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