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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근무 치비, 이젠 더 못 보니?

50년간 200만 명 독일사회 손발 노릇 … 군 개혁으로 폐지 독일 국민들 아쉬움

공익근무 치비, 이젠 더 못 보니?

처음 필자가 독일에 와 언어를 배울 때 가장 자주 얼굴을 대한 사람은 강사가 아니었다. 강사는 수업만 담당할 뿐, 기타 잡다한 일은 ‘치비(Zivi)’의 몫이었다. 치비란 공익근무(치빌디엔스트·Zivildienst)를 하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를 부르는 애칭. 필자가 다녔던 어학원에서는 치비들이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먹고, 자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주말여행도 했다. 나이도 학생들과 엇비슷해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몇 주 동안 독일 주요 도시를 여행할 때 유스호스텔을 자주 이용했는데 거기서도 어김없이 치비들을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숙박업무뿐 아니라 유스호스텔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등산, 래프팅 등)을 앞장서 준비하는 일꾼이었다. 물론 정식 직원은 아니고 일당 10유로(약 1만5000원) 정도 받는 ‘값싼 노동력’이었다. 대부분 집에서 통근하며, 부득이한 경우 외부에 숙소를 마련하는데 이 비용은 국가가 책임진다. 그렇지만 병원과 양로원에서 노인들의 식사를 돕고 휠체어를 끌며, 긴급구조대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치비들의 활약은 대단해서 만일 이들이 없었다면 복지기관이나 청소년 시설 등의 운영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상 징병제 폐지한 국방개혁안

독일에서 매년 10만 명가량의 젊은이가 이런 공익근무를 하는데, 이유는 국방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18세 이상 45세 이하 성인 남성은 특별한 신체적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일정 기간 군복무 또는 공익근무를 해야 한다. 복무 기간은 계속 바뀌는데, 현재는 둘 다 9개월이다.

올 초 독일 정부는 2011년부터 복무 기간을 6개월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11월 22일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사실상 징병제 폐지를 선언한 것. 구텐베르크 국방장관은 드레스덴에서 열린 군고위급 회의에서 2011년 7월부터 징병제 시행을 유예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 조항은 건드리지 않지만, 그 시행을 유예하겠다는 것. 비록 표현은 시행 유예라 했지만 사실상 폐지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건국 당시 독일에는 군대 자체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독일의 재무장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 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독일의 비(非)무장화 원칙도 바뀌었다.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동독이 은밀히 재무장을 시작하자, 이에 자극받은 미국, 영국, 프랑스도 서독의 재무장을 허락해 1955년 독일 연방군이 창설됐다. 창군 당시 나치 시절의 ‘국방군’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일환이 1957년부터 시행한 징병제였다. 신념 등의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는 1961년부터 시행됐다. 처음엔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양심 심사’도 했고, 복무 기간도 보통 군역보다 길었다.

하지만 오늘날 독일의 안보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냉전 기간에 독일 연방군은 나토의 서유럽 방위 주력군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위협에 대처했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동서독이 통일하면서 주적 개념이 흐려졌다. 국제 정세가 단순한 동서대립 구도에서 지구촌 전체를 망라하는 테러, 국지적 도발 등 불안정한 상태로 바뀜에 따라 독일 연방군의 존재 목적 및 돌발 사태에 대한 대응에도 문제가 생겼다.

특히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독일은 자금 지원의 형태로만 다국적군에 참여하고 인적 자원은 보내지 않았다. 이런 결정에 대해 국내외 많은 비판이 있었다. 이에 1994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에서 말하는 국가 방위는 단지 독일 국경만 지키는 게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고, 분쟁을 방지하며, 전 세계에서 독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 일체를 가리킨다”고 판시했다. 즉, 독일군을 전 세계에 파병하는 것이 법적 정당성을 얻게 됐다. 이처럼 방위 개념이 확대되면서 독일 연방군은 분쟁지역 평화유지군 활동에 더 많이 참여했다.

이처럼 안보 환경이 바뀌고 국제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 활발해지자 독일군의 구조개혁이 절실히 요구됐다. 군 조직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 국제적인 돌발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프로 정예병을 키워야 하는데, 평범한 젊은이가 그저 몇 개월의 군사훈련을 받는 현재의 징병제로는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구텐베르크 장관에 따르면, 현재 25만여 명의 독일군 중 해외 파병이 가능한 인원은 겨우 7000명에 그친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모병제인데, 이 경우 병력은 18만 명 정도로 감축되지만 해외 파병이 가능한 정예병력은 오히려 1만4000명으로 늘 것으로 보인다. 구텐베르크 장관은 아울러 관료화된 군무원의 수를 크게 줄일 예정이며, 새로 연방군을 모집할 때 해외 임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약 2조7000억 원 매년 지출해야

징병제 폐지 및 모병제 논의는 독일 통일 직후부터 녹색당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된 주제다. 특히 1998년 사민당-녹색당 연립정권이 수립될 때, 양당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한 직업군인 체제로 전환할 것을 합의했지만 시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기민련의 반대가 강했고, 사민당의 태도도 소극적이었기 때문. 정권이 바뀐 2005년 이후엔 징병제 폐지 목소리가 더 잦아들었다. 그런데 막상 우파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이 시점에 징병제의 시행 유예(사실상 폐지)라는 결정이 내려진 건 국가 재정 문제가 큰 이유였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다가 악화된 국가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5월 발표한 긴축재정안에 따르면, 2014년까지 국방 예산은 지금보다 83억 유로(약 13조 원)를 더 줄여야 한다.

기존의 징병제가 점점 유명무실화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병역 대상자 45만 명 중 실제 군 복무에 배정된 인원은 약 7만6000명으로 17%가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과거엔 신체검사의 5등급 중 3급만 돼도 소집됐지만, 지금은 최상위인 1급조차 소집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국가가 많은 수의 군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하지만 군 복무를 대신해 사회 구석구석에서 온갖 궂은일은 하는 치비들의 공백은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징병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국방 개혁안을 여당이 결의하고 야당 역시 반대하지 않기에, 시행은 기정사실이 됐다. 그런데 병역 의무가 폐지되면 공익근무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치비들이 담당했던 자리를 다른 인력으로 채우려면 18억 유로(약 2조7000억 원)가 매년 지출돼야 한다. 그래서 가정복지부 장관인 크리스티나 슈뢰더는 그 빈자리를 자원봉사자로 채울 것을 제안했다. 독일에서는 ‘카리타스’ 같은 대형 자선단체에 소속된 자원봉사자들도 정부로부터 약간의 재정 지원을 받는데, 그 액수는 치비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 변화가 과연 잘 이뤄질지 의문이다.

지난 50년간 200만 명이 넘는 치비가 음지에서 독일 사회를 섬겼다. 초기엔 군 복무를 기피한 겁쟁이란 오명으로 취직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오늘날 치비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아주 따스하고도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지난 세월 동안 치비들의 헌신적인 노력봉사가 이렇게 바꾼 것이다. 많은 독일인은 군 개혁과 더불어 그들의 존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무척 아쉬워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10.12.20 767호 (p64~65)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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