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4

2010.09.13

고령화, 저성장 사회 전문직 인기도 변하는 거야

대입 변천사로 본 전문직 흥망성쇠 … 2011년 입시 ‘특성화 학과’에 주목하라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9-13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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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화, 저성장 사회 전문직 인기도 변하는 거야

    1989년 12월 28일 서울대가 합격자 명단을 발표하자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가 운동장에 몰려들었다.

    ‘전문직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자격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후진국형 자격증으로, 자격증을 따는 것만으로 관련 직업에서 안정성이 보장된다. 즉, 수요보다 적게 자격증이 발부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선진국형 자격증인데, 이때 자격증은 말 그대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로 국한된다. 자격증을 딴 뒤에도 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과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전문직이 후진국형 자격증과 관련 있었다면, 이젠 점차 선진국형으로 옮아가고 있다. 즉, 전문직이라 하더라도 더는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최근 대학 입학시험(이하 대입)에도 이런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한의대의 경쟁률이 점차 낮아지는 게 단적인 예다. 이처럼 대입에서 선호되는 계열과 학과는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변화를 밀접하게 반영하다. 이투스청솔 평가연구소 오종운 소장은 “1960년대 이후 약 50년 동안 대입에서의 인기 학과는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졌는데, 상대적으로 자연계가 인문계보다 부침이 심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때는 문리대에서 정치학과가 ‘톱’이었습니다. 커트라인이 법학과보다도 높았죠. 광복 이후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숫자도 적었을뿐더러, 스스로 정치가가 되겠다는 열망이 있었거든요. 특히 4·19를 겪으면서 그런 성향이 강해졌죠. ‘내가 하면 이 나라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S대 정치학과 60학번 김모 씨·중소기업 사장)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대입 시대가 열린 것은 1960년대부터다. 정치혼란기였던 1960년대 초반엔 인문계에서는 정치학과, 외교학과 등이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보수·안정화되면서 1960년대 중반 이후 법학과가 부동의 1위로 자리매김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최고의 전문직을 배출하는 사법시험이 머리 좋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유일한 출셋길로 여겨졌기 때문. 이후 경제발전기인 1970년대엔 상경계열(경제학과, 경영학과, 통계학과 등) 학과가 법학과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었다.



    자연계에서는 1990년대까지 공대, 즉 공학계열의 시대가 이어졌다. 물론 가장 인기를 끈 학과는 시기별로 조금씩 달랐다. 1962년 2월 24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해 서울대 입학전형 합격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학과는 화학공학과였다. 이런 성향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정부가 중화학 중심의 경제개발계획을 펼쳤고 이것이 대입 선호학과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의대(의예과, 치의예과) 역시 인기가 있었으나, 최고 학과는 공대의 몫이었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전자공학과를 졸업하면 가뿐히 S전자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전자공학과 출신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아서 학과실에는 늘 대기업 원서가 쌓여 있었죠.”(K대 전자공학과 85학번 강모 씨·자영업)

    1980년대 들어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인문계에서는 여전히 법학과와 상경계열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자연계에서는 1970년대 최고였던 화학공학과가 아닌 전기·전자·전파공학과(학교마다 학과 이름은 조금씩 다름·이하 전자공학과)가 더 큰 인기를 누렸다. 1983년 4월 22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커트라인 최상위 학과가 인문계는 법학과, 자연계는 전자공학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LG(당시 럭키금성) 등 전자제품이나 반도체 등을 기반으로 한 대기업들이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 분야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 어느 학교든 공대, 특히 전자공학과에만 들어가면 대기업 취업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고령화, 저성장 사회 전문직 인기도 변하는 거야

    자연계에서는 1960년대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공대의 시대였다. 특히 1960~70년대엔 화학공학과가, 1980년대엔 전자공학과가 큰 인기를 누렸다.

    학과 선택 패러다임을 바꾼 외환위기

    이런 성향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엔 전자공학과와 의예과가 1, 2등을 주고받았다. 여기에 컴퓨터가 일상화되면서 컴퓨터공학과와 ‘퓨전’ 공학인 산업공학과 열풍이 불었다. 인문계에서는 법학과, 상경계열 학과와 함께 미디어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학과(학교별로 학과 이름은 조금씩 다름·이하 신방과)가 부각됐다. 오 소장은 “1980년대 컬러TV 시대가 열리면서 주목을 받은 신방과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신방과 인기의 이유는 일반적으로 이쪽 분야를 선호하는 여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SKY 대학의 공대는 충분히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수도권 소재 대학의 의예과를 택했죠. ‘의사 자격증’은 명문대 간판과 바꿀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거든요. 사실 공대 나온다고 평생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세 살 어린 여동생도 ‘간호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간호학과에 들어갔죠.”(I대 의예과 01학번 이모 씨·종합병원 레지던트)

    고령화, 저성장 사회 전문직 인기도 변하는 거야

    1997년 외환위기는 ‘사’자 전문직에 대한 열망을 더욱 키웠고, 이는 고스란히 대입에 영향을 미쳤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학과를 선택하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놓았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자연계에서 의대는 부동의 ‘톱’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국 각지 의대에 1등부터 차곡차곡 채워 넣은 후, 다 차면 그 다음 사람이 명문대 공대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진 것도 이때부터다.

    문일고 김혜남 교사(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상담센터 대표강사)는 “당시 수험생들은 1970년대 공대를 졸업한 뒤 한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한 아버지 세대가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너무도 쉽게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봤다”면서 “이때부터 의사, 한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사 등 이른바 ‘사’자 전문직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고, 이런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학과로 몰려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2003년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이 도입되면서 생명계열(생명공학과, 생명학과 등) 학과가 큰 인기를 누렸고 수학과, 물리학과 등 순수과학을 다루는 이학계열 학과도 반짝 특수를 누렸다.

    인문계는 더욱 ‘실용가도’를 달렸다. 교대 및 사범대 그리고 회계 세무 관련 학과 등 실용성 있는 학과가 큰 인기를 누린 것도 이때부터다. 이에 ‘문사철’(文史哲·전통적인 인문학 분야인 문학, 역사, 철학을 일컫는 말)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대입에서는 전문직 관련 학과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 전문직은 후진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이제 대입도 조금씩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와이즈멘토 평가기획팀 최유리 과장은 “지금 대입을 앞둔 학생들은 5~10년 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이들과 학부모는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대입에서 전문직 관련 학과들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만큼 10년 후엔 지금과 다른 사회가 펼쳐질 것이고, 이를 대비해 자신의 전공 학과를 결정해야 한다. 또 2000년대 중반 이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래엔 어떤 직업이 유망할 것인가. 또 이와 연관해 수험생들은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할까.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 소장(미래학자)은 “5~10년 후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꼼꼼히 살펴보고, 이에 따라 전공과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5~64세의 노동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2018년엔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2019년엔 은퇴자 인구가 전체의 28.6%에 이른다. 최 소장은 “보통 은퇴하면 평균 소비를 40% 정도 줄이기 때문에 상당수 산업군이 쇠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지금 대학에 진학하는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15~ 2020년은 본격적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 시대가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 복지 및 상담, 정보기술, 문화콘텐츠, 경영회계 같은 분야의 수요가 증가하고, 이 분야 전문가가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뜨는 직업은 무엇?

    다음 2개의 표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간된 ‘미래의 직업세계’와 연구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고령화, 저성장 사회 전문직 인기도 변하는 거야
    고령화, 저성장 사회 전문직 인기도 변하는 거야
    보건의료, 복지 및 상담 분야 유망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예과나 치의예과, 한의예과, 간호학과 등은 보건의료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유망하다. 최유리 과장은 “의학 중에서도 특히 의료연구 분야가 유망하다. 임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순수 연구자보다 의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에 연구의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또 의공학이나 융합 의료 등도 추천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김혜남 교사도 “한의학이 최근 주춤했지만 5~10년 후엔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에 한의학과도 여전히 미래 전망이 밝다는 것.

    명문대 간판 여전히 중요?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학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큰 인기를 누리는 간호학과다. 오 소장은 “중상위권 학생에게 간호학과는 절대적 의미를 가진다. 특히 수도권 소재, 병원이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는 수능 평균 2등급 이상을 받아야 지원할 수 있다”며 “중위권 지방대의 경우 다른 학과보다 간호학과의 입학 성적이 가장 좋은 편”이라고 했다. 김 교사는 “남학생에게도 간호학과를 추천한다”고 했다. 고령화 사회에 남자 간호사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 같은 의미에서 물리치료사, 치과위생사, 방사선사 등을 양성하는 학과도 좋다.

    경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상경계열 학과는 여전히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및 문화콘텐츠 분야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복지 및 상담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학과도 추천할 만하다. 또 정보기술 기반 사회에 필요한 공학 전문가는 수요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의료나 금융 등과 결합된 ‘융합 공학’이 더욱 뜰 것으로 전망된다.

    2011학년도 대입으로 조금 더 한정해보면, 전문가들은 “전통의 ‘강호’ 외에도 각 대학이 주력으로 내세우는 ‘특성화학과’에 지원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대학들이 미래의 시대적 흐름이나 특성 등을 파악한 뒤 그들만의 핵심역량으로 삼고자 기획한 학과이기 때문에 대학 차원의 어마어마한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아주대 금융공학부, 숭실대 금융학부,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인하대 아시아태평양물류학과 등이 있다. 김 교사는 “다만 금융 관련 학과들은 미래전망이나 학생 적성 등에 따라 조금은 조심스럽게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산학협동이 잘되는 지방대 특정 학과도 취업과 실용이라는 측면에서 유망하다. 김 교사는 “포항제철, 광양제철, 현대중공업, 한라중공업 등이 있는 지방의 공업지대에는 수백 개의 대기업 협력업체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다. 즉 취업이 용이하다. 따라서 중상위권은 물론 중위권 이하의 성적도 지원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래엔 이처럼 특성화된 도시에 관련 산업과 교육이 어우러지는 형태가 더욱 굳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명문대 간판’은 10년 후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할까. 오 소장은 “명문대에 대한 선호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대학진학률이 80%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이제 대학 교육은 전문가 양성이 아닌 교양 전수 수준에 머물게 됐고, 이른바 ‘사’자 전문직에서도 치열한 경쟁으로 하위 30%는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됐다. 이럴수록 명문대 선호가 강해진다는 것. 오 소장은 “자연계보다는 인문계가 그런 성향이 더 강하다. 따라서 어느 과에 들어가든 우선 좋은 대학을 나오고, 이후 원하는 직업에 필요한 전문 지식은 대학원이나 자격증 취득 등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 소장

    ‘SMART’한 회오리형 인재가 돼라!


    미래학자들은 “향후 20년의 변화는 지난 100년에 맞먹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현재의 감각으로 10~20년 후의 사회 모습과 직업, 미래형 인재를 살펴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미래 사회의 인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 소장은 “SMART한 회오리형 인재가 돼야 미래 사회에서도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SMART’의 ‘S’는 ‘Sense’, 즉 사물을 인식하고 통찰하는 능력이다. ‘M’은 ‘Method’로 사고하는 기술이나 일하는 방식, ‘A’는 ‘Art’로 예술성, ‘R’은 ‘Relationship’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의 원활한 관계력(리더십, 팔로십, 펠로십 등), ‘T’는 ‘Technology’로 기술 활용 능력을 말한다. 회오리형 인재란 마치 회오리처럼 다양한 영역의 지식을 흡입해 본인의 주력 분야로 융합하는 인재를 일컫는다. 여기에 더해 비전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 상황에서 잘 견디고,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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