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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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명품빵’의 고소한 냄새

재료·기술·맛으로 소비자 사로잡아 … 웬만한 빵값의 3배 가격은 너무해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08-30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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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명품빵’의 고소한 냄새
    # 평일 오후 3시 서울 청담동의 한 가게에 들른 프랑스 유학파 출신 주부 A씨. 우아한 재즈가 흐르고 갓 구운 빵 냄새가 풍기는 이곳은 해외 유학파, 대기업 사모님, 인기 연예인 등이 즐겨 찾기로 유명한 프랑스 정통 베이커리 ‘기욤’이다. 시중 베이커리보다 빵, 케이크 등의 양은 적고 가격은 3배 정도 비싸다. 하지만 프랑스 유명호텔의 수석 제과장 출신 셰프가 직접 개발한 메뉴라니 아깝지 않다. 특히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위해 만든 디저트 ‘밀페이 로열’은 기욤의 베스트셀러.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인데 가격은 9900원. 비싸다며 놀라는 이도 있지만 1만 원에 여왕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자고 나면 생겨나는 세련된 빵집, 빵집들

    음~ ‘명품빵’의 고소한 냄새

    명품 부티크 숍을 연상케 하는 신라호텔 ‘패스트리 부티크’. 최고급 진열장에 케이크 등을 전시하고 고가의 와인, 거위 간 등도 함께 판매한다.

    #“망고쇼트케이크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자란 젖소의 원유로 만든 생크림만을 씁니다. 하루에 2~3개만 생산하는 제품입니다.”

    명품 주얼리 매장 분위기가 나는 신라호텔의 베이커리 ‘패스트리 부티크’. 하얀 앞치마를 단정하게 두른 점원 B씨는 손님이 매장에 들어서면 옆에서 걸음걸이를 맞추며 손님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빵, 케이크 등을 추천한다. 가격이 일반 베이커리보다 3배 정도 비싸고 10%의 부가세도 있지만 유기농 밀, 일본산 생수, 강원도에서 키운 팥 등 고급 재료만 쓴다니 구입을 망설이는 고객은 별로 없다. 100만 원 정도 하는 5단 케이크는 이 호텔 파티에 자주 등장한다.

    빵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고급 베이커리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고급 베이커리의 정의는 모호하지만 일반적으로 유기농 재료를 쓰고, 프랑스·일본 등 빵 선진국의 제과제빵 기술로 만든 빵을 판매하며, 매장의 외관이나 서비스 등이 세련된 빵집을 의미한다. 가격은 일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2~3배로 비싼 편. 과거에는 유명 호텔의 베이커리가 곧 고급 베이커리였지만, 최근에는 명장, 해외 유학파가 운영하는 자영 베이커리, 국내에 입점한 외국 베이커리 등 형태가 다양하다.



    사람들이 고급 베이커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빵에 대한 개념이 간식에서 주식으로 변하고 웰빙(참살이)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소비자가 몸에 좋은 빵을 선호하게 됐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자영 베이커리 ‘뺑드빱바’는 제빵사가 새벽 3시부터 유기농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직접 빵을 굽는다. 방부제를 쓰지 않아 하루 동안 팔리지 않고 남은 빵은 전량 폐기처분한다. 이곳을 즐겨 찾는다는 주부 변모(31) 씨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유기농 재료를 쓰고 소금을 거의 넣지 않은 빵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 아토피 환자들도 자주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빵을 사러 여기까지 온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냉동반죽을 각 매장에서 굽기 때문에 재료, 신선도 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올해 여의도 63빌딩에 입점한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에릭 케제르’는 이스트가 아닌 자연 액체효모를 이용해 빵을 만드는데, 이 때문에 지방에서 빵을 사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또 해외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프랑스, 일본의 정통 빵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도 늘었다. 특히 프랑스 빵이 인기가 높은데 ‘기욤’ ‘폴’ 등이 국내에 있는 대표적인 프랑스 베이커리다. 이들은 매장 전경만 봐도 프랑스 현지의 빵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2008년 프랑스인이 청담동에 처음 문을 연 기욤은 개점 1년여 만에 매장이 3개로 늘어날 정도로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다. 전지현, 송혜교,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이 매장을 찾으면서 더 유명세를 탔다. 매장에서 만난 고객들은 프랑스에서나 맛볼 수 있는 빵과 케이크를 구입할 수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유학파들 해외 정통빵 속속 들여와

    음~ ‘명품빵’의 고소한 냄새
    120년이 넘는 프랑스 정통 베이커리로 세계 전역에 450여 개의 매장을 가진 폴은 2009년 국내에 들어와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폴의 송지혜 매니저는 “파리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물론 매장 분위기도 본점과 동일하게 연출하고자 접시, 테이블, 커튼 등 모든 물품을 프랑스에서 가져왔다. 특히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이 찾는데, 젊은 시절 파리에서 거주한 어느 노신사는 강원도에 살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찾을 정도”라고 전했다.

    일본 도쿄의 최신 빵을 선보이는 ‘도쿄팡야’는 일본인 제빵사가 직접 운영한다. 주인 야스마 후지와라 씨는 정기적으로 도쿄를 방문해 최신 일본 빵 기술을 배워 온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빵의 종류는 15가지 정도로 많은 편은 아니다. 후지와라 씨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볼 수 없는 카레빵, 멜론빵, 미소빵 등을 판매하기 때문에 멀리서도 찾는 사람이 있다”고 자랑했다.

    외국 유학파도 해외 정통빵을 선보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IMF 이후 일본으로 제과제빵 유학을 떠난 학생이 늘었고, 4~5년 전부터는 프랑스로 유학을 간경우가 많았다. 월간 ‘파티시에’의 김상애 편집장은 “최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 일본식, 프랑스식 자영 베이커리를 열고 있다. 특히 카페와 베이커리를 합친 디저트 카페를 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몇 년 사이 ‘핫 플레이스’로 불리는 홍대, 서래마을, 가로수길, 삼청동 등에 우후죽순 생겨난 디저트 카페가 이에 해당한다. 이곳들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보다 빵 가격이 10~20% 비싸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20, 30대가 주로 찾는다.

    명품 매장에서 느낄 수 있는 고급화, 차별화된 서비스 때문에 고급 베이커리를 찾는 경우도 있다. 기욤에서 만난 주부 김모(35) 씨는 조용하고 고급스럽고 앤티크한 분위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 가격이 일반 매장에 비해 2~3배 비싼 편이지만 색다른 빵과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또한 비교적 붐비지 않는 것도 장점.

    기욤의 이승규 실장은 “실제로 대기업 총수 일가나 연예인이 와서 빵을 먹고 간다. 명품 자동차나 가방처럼 큰 부담이 느껴지는 고가가 아니면서 상류층과 같은 서비스와 제품을 접할 수 있어 매장을 찾는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라호텔의 패스트리 부티크는 의도적으로 매장을 명품 주얼리 매장처럼 리뉴얼했다. 빵, 케이크, 마카롱 등이 보석처럼 유리진열장에 전시돼 있고 포장을 할 때도 보석이나 명품 포장처럼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사용한다. 신라호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 나도연 주임은 의도적으로 명품 매장을 벤치마킹했다고 전했다.

    “명품 매장처럼 퍼스널 쇼퍼 개념을 도입해 점원이 고객의 상황, 취향에 맞게 제품을 추천합니다. 또 베이커리, 패스트리류 외에도 고급 와인, 수입산 치즈, 유기농 차, 빈티지 식초 등 고가의 상품을 함께 진열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살렸습니다.”

    여기에 인터넷의 블로그, 마니아 문화 등도 명품빵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패스트리 부티크, 에리크 케제르, 기욤 베이커리 관계자들은 마카롱, 케이크 마니아들이 보석을 수집하듯 마카롱을 종류별로 사간다고 입을 모은다. 책 ‘맛있는 빵집’의 저자 이병진 씨는 “유명 베이커리를 찾아다니며 빵, 케이크 등을 비교하면서 ‘이곳은 식감이 딱딱하고 저쪽은 부드럽다’ ‘재료 함량이 차이가 난다’처럼 거의 전문가급 평을 하는 마니아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음~ ‘명품빵’의 고소한 냄새

    우아한 음악이 흐르는 ‘기욤’. 앤티크한 분위기 때문에 찾는 이도 많다(왼쪽). 새벽 3시부터 제빵사가 프랑스, 독일 정통 빵을 굽는 ‘뺑드빱바’.

    백화점-할인마트 등도 덩달아 고급화

    이처럼 고급 빵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백화점, 할인마트,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도 고급 인스토어 베이커리를 론칭하거나, 고급 베이커리의 입점을 늘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프랑스 밀가루, 천연 버터 등을 사용하는 프랑스 스타일의 ‘베즐리’를 운영 중인데 매년 10% 이상 매출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 역시 롯데브랑제리의 ‘보네스뻬’, 프랑스 베이커리 ‘포숑’ 등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백화점 측은 “이전엔 고객들이 백화점에 들렀다가 빵을 사갔다면 이제는 빵만 사러 백화점을 오는 고객도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 그룹은 2007년부터 디저트 카페인 ‘패션5’를 열어 고가의 베이커리, 패스트리, 케이크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부산의 대형마트인 메가마트 역시 프랑스 전통 수제빵을 만드는 ‘바스키아’ 베이커리를 운영한다. 이들은 고급 베이커리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품질을 제공하면서도 시중의 고급 베이커리보다 가격이 저렴해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분석이다.

    이런 현실의 영향으로 제과제빵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 일본 유학을 희망하는 이도 크게 늘었다. 종로요리제과제빵학원의 최현정 강사는 “어린 학생 중 80~90%가 국내에서 제과기술을 배운 뒤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유학을 희망한다. 단순히 국내에서 기술을 배워서는 호텔 베이커리에 취직하거나 고급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음~ ‘명품빵’의 고소한 냄새
    그러나 아무리 고급 베이커리라 해도 가격이 3배 이상 높은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재 중 만난 한 제빵업자는 “고급 베이커리에서 쓰는 재료나 기술 등의 수준이 높은 경향이 있지만 임대료, 인테리어, 서비스 비용이 더 크게 반영된다”고 주장했다. 대한제과협회 서정웅 회장 역시 높은 가격이 곧 좋은 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급 자영 베이커리에서 만난 제빵사 중에는 서울의 살인적인 임대료, 권리금 등이 가격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 이도 상당수였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권모(34) 씨는 “유학시절 맛보던 빵이 좋아서 국내에 입점한 프랑스 정통 베이커리를 즐겨 찾는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대중적인 빵집인데, 한국에서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만 강조한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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