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9

2010.05.31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명사들의 축구사랑과 나의 월드컵

  • 입력2010-05-31 12: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목소리의 주인공 축구해설가 신문선, 16강 진출하면 콧수염 밀고 8강 진출하면 삭발하겠다고 약속한 가수 김흥국, 서울월드컵경기장 설계한 류춘수 건축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앨범 만든 뒤 세 번째 응원앨범 발표한 밴드 ‘노브레인’, 국회의원축구연맹 미드필더로 활약하는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대표팀에 호랑이 그림과 그 기운을 전달한 이목일 화가에게서 특별한 축구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월드컵 송▶▶ 노브레인 밴드

    “목 터져라 응원가 불러야죠”

    ‘비와 당신’ ‘넌 내게 반했어’ 등으로 유명한 밴드 ‘노브레인’이 2010 남아공월드컵 응원가 ‘대한의 전사들이여’를 발표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부터 매번 야외 공연을 하며 응원에 동참했다. 수많은 거리공연을 했지만, 특히 16강 진출 여부를 결정짓던 2006년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을 잊을 수가 없다.

    “잠실, 시청, 홍대를 오가며 다섯 군데서 공연을 했어요.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할 만큼 일정이 빠듯했죠. 땀은 흐르지, 터널 통과할 때 매연 심하게 나오지…. 그래도 국민과 함께 응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보컬 이성우)

    이들은 월드컵 때만 ‘반짝’하는 그룹이 아니다. 2005년부터 K리그 수원 삼성의 응원곡을 만들었고, 2006년부터 K리그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역전승을 하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 수원 삼성 응원단이 하나가 돼 저희 노래 ‘리틀 베이비’를 부르는데 갑자기 찡하면서 소름이 돋더군요.”(기타 정민준)

    그러나 K리그 경기를 보러 가면 관중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아 안타깝다. 요즘 축구팬들이 월드컵이나 유럽 프리미어리그 등 큰 경기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야속할 지경이다.

    “유럽리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K리그는 선수와 함께 호흡하며 볼 수 있잖아요. 와서 응원해주면 선수들 기량도 늘 거예요. 성적이 좋아서 K리그도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드럼 황현성)

    요즘 10개 밴드와 10개 팀 서포터즈가 참여한 K리그 헌정앨범을 준비하는데 월드컵 막바지인 7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 앨범이 월드컵의 열기를 K리그로 가져오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베이스 정우용)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축구해설가▶▶ 신문선

    “선수들 기량 냉정하게 볼 겁니다”

    월드컵 하면 그의 목소리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때 라디오 리포터로 시작해 2006년 독일월드컵 때 SBS 중계해설위원까지 총 6번의 월드컵을 안방으로 전해줬던 신문선 씨. 이번 월드컵은 ‘신 위원’이 아니라 ‘신 교수’로 보게 됐다. 2007년부터 명지대 스포츠기록분석학과 교수로 재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축구라는 재료를 맛있게 요리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주방장이었다면 이젠 그 음식을 분석, 평가하는 평론가가 됐죠. 물론 현장에 가지 못해 아쉽지만 학자로서 선수들 기량을 냉정하게 분석하며 볼 겁니다.”

    한국팀과 상대팀의 운동량, 패스, 영상 분석 등 전력 분석을 마친 신 교수는 “같은 조에서 가장 약체지만 충분히 승산 있다”고 전망했다. 객관적 실력은 최약체여도 ‘글로벌 세대(일명 G세대) 선수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것.

    “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등 해외 경험을 한 선수들은 세계 축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자신감이 넘치죠. 여기에 2002년 4강의 성적을 거뒀던 김남일, 이영표 등이 경험을 살려 능숙하게 팀을 이끌어준다면 충분히 승산 있어요.”

    그의 축구 인생을 통틀어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은 최고의 장면이다. ‘유럽팀에 상대가 안 된다’는 편견을 선수들이 투혼으로 싸워 이겨낸 것. 하지만 한국축구계가 자기반성 대신 결과에 취해 상승세를 K리그로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이번 월드컵에도 상승세를 타지 못하면 K리그는 고사할지 모릅니다. 선수들은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해야 해요.”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이동국 선수가 실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신 교수는 이 선수의 포철고 시절 데뷔 경기를 중계하다 “저 친구는 천재다. 당장 유럽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선수는 방황, 부상 등으로 ‘비운의 스트라이커’란 이름표를 달았다.

    “이동국 선수 스스로 아름다운 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 남들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했으면 합니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영원한 응원단장 가수▶▶ 김흥국

    “16강 그까이 꺼 태극전사 파이팅!”

    “방송에서 16강 진출하면 콧수염 밀고 8강 진출하면 삭발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면도하면 면도기 CF를 못 찍지만 돈이 문제겠습니까? 허허허.”

    언젠가부터 축구 경기가 열리는 곳에는 항상 걸쭉하고 통쾌한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13세 때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가수 김흥국 씨는 그 한을 열렬한 대한민국 축구팬이 되는 것으로 풀었다. 이번 월드컵에는 ‘2022년 한국월드컵 유치위원’으로 남아공에 가는 만큼 어깨가 무겁다.

    “2002년 때 영광을 되살려 ‘한국축구의 르네상스’를 만들어야죠. 한국팀 성적이 좋아야 유리한데, 이번 허정무호는 역대 최강의 선수단에 팀 분위기도 좋습니다.”

    지방선거, 천안함 사건 같은 사회적 이슈에 방송사 중계권 논란과 남아공 치안 우려 등 ‘잡음’으로 아직은 월드컵 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월드컵 열기의 불을 댕기기 위해 ‘터진다’ ‘앗싸! 월드컵’ 등을 수록한 월드컵송 앨범을 제작했다.

    “4년을 기다린 축제인데 너무 조용해요. 우리가 신나서 응원해야 대표팀도 힘이 나서 경기하지 않겠어요?”

    1986년 멕시코월드컵 때는 비행기표 살 여유가 없어 환송식 축하공연에만 참여했다. 그러다 1989년 노래 ‘호랑나비’가 큰 인기를 끌었고 그때 모은 돈으로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현장으로 가서 응원을 했다. 응원석 맨 앞에서 꽹과리 치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지만 3패로 예선 탈락. 그래도 이후 모든 월드컵에 직접 가서 응원했고 그 노력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못 잊는 월드컵 경기는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 한국 대표팀이 원정 첫승을 거둔 경기다.

    “월드컵 때마다 외국에서 한국팀 깨지는 경기만 보다가 처음 이기는 걸 봤어요. 심지어는 ‘내가 응원을 잘못해서 우리가 지나?’ 싶었는데 이기니까 정말 자랑스러웠죠. 다음 날 현지 교민이 당당히 어깨를 펴고 걷는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예선 조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이지만 김씨는 “16강도 문제없다”며 희망을 보였다.

    “고지대라 산소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 주장(박지성)이 ‘산소 탱크’ 아닙니까? 끄떡없지요!”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대표팀에게 호랑이 그림 선물한 화백▶▶ 이목일

    “호랑이들 최소 8강까지 간다”

    “우리 민족은 저마다 호랑이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붙으면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갑니다. 항복을 모르기 때문에 IMF도 뚫고 가지 않습니까. 대표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호랑이 그림을 선물한 것은 호랑이의 상서로운 기운이 우리 안에 흐른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싶어서였습니다. 호랑이 기상으로 부딪치면 안 될 게 없습니다.”

    5월 20일 파주 NFC로 찾아가 허정무 감독에게 남아공월드컵 선전을 기원하며 ‘백두산 천지연 호랑이’ ‘지리산 북두칠성 호랑이’ 그림 40점을 선물한 이목일 화백은 ‘호랑이 화가’로 유명하다. 2001년부터 2003년도에 걸쳐 호랑이 1만 마리를 그린 그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강하게 밀어붙이는 근성을 지닌 호랑이가 다름 아닌 우리란 걸 깨달았다.

    그가 대표팀에게 그림을 전달한 것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키가 작아서 축구를 못했지만 축구란 경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축구는 단체가 하나 돼서 하는 경기가 아닙니까. 단체가 둘이나 셋이 되면 안 되고,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그야말로 ‘투혼’했을 때 성과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는 호랑이 중의 호랑이인 허정무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만나보니 덕장이더군요. 그야말로 한국 축구를 짊어지고 나갈 큰 사람이었습니다. 눈빛으로 지시를 하는 걸로 봐서, 무서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부모처럼 따뜻하고 자애로운, 위엄 있는 호랑이 자체였습니다. 누구라도 저분 말씀은 듣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진실하니 대표팀을 잘 이끌어갈 거라 믿습니다.”

    경남 함양군 안이면 함양예술마을 관장인 이 화백은 비록 남아공월드컵에는 가지 못하지만 큰 텔레비전을 마련해 동네 사람들과 경기를 관람할 계획이다. 집에서 응원하는 게 못내 아쉽지만 대표팀이 8강 진출할 생각을 하면 절로 흥이 난다.

    “호랑이들이 뛰기 때문에 최소 8강은 갈 겁니다. 8강 정도는 가야 비로소 우리가 호랑이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에 안 갈 리가 없습니다.”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만든 건축가▶▶ 류춘수

    “월드컵은 지구인들이 사는 재미”

    “월드컵을 개최한다고 하면 경기장부터 걱정됩니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고 경기장 건설에 2000억 원 이상 쓰는데, 한두 번 경기를 치른 뒤 적자덩어리로 전락하기 쉽거든요.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어야 할 텐데….”

    2002 FIFA 월드컵 개막전이 벌어진 방패연 모양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류춘수 건축가. 건물의 지붕으로 철 대신 천을 이용해 빛이 투영되게 만들어 디자인이 우수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실용을 우선시했다고 한다. 다행히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디자인과 실용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 현재까지도 매달 10억 원 상당의 순수익을 내고 있다.

    원주체육관, 부산 롯데야구장, 올림픽체조경기장 등 여러 체육시설을 설계한 그이지만 축구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대학교 1학년 때(1966년)죠. 우연히 라디오를 틀었는데, 런던월드컵에서 북한과 포르투갈의 8강전을 중계방송하고 있었어요. 경기를 시작한 지 1분도 안 돼 한 골을 넣더니, 5분도 채 안 돼 3골을 넣더라고요.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익사이팅한 경기를 들었으니 축구에 빠질 수밖에요.(웃음)”

    애착이 클수록 아쉬움도 컸다. 2002년 BBC방송국은 1966년에 활약한 북한 선수들을 평양까지 가서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멕시코는 멕시코월드컵이란 다큐 영화를 만들었지만, 한국은 2002년 경기 때 잠시 ‘어게인 1966’이란 구호가 나온 것으로 끝이었다. 그날을 추억할 만한 기록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2010년 월드컵. 그는 다시금 살맛이 난다고 했다.

    “월드컵 있고 2년 뒤 올림픽 하고, 2년 뒤 또 월드컵이잖아요. 지구인들이 그 재미로 사는 거죠. 기다리다 세월이 가고, 즐기다 인생이 확확 가지만 그만큼 재미있잖아요?”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촉수가 춤추는 6월 월드컵은 흥분제다
    한나라당 의원▶▶ 정병국

    “붉은 함성의 물결이 다시 춤출 것”

    “축구는 땀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고마운 스포츠입니다. 국회의원축구연맹 회원으로 친선경기를 할 때마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느끼는 건 땀을 흠뻑 흘리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선지 국가 대항전을 보노라면 심장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 못지않게 요동칩니다.”

    국회의원축구연맹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는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이 바쁜 일정 중에도 주요 축구경기를 챙겨 보는 이유다. 며칠 전 치러진 한일전도 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보았는데, 초반에 박지성 선수가 골 넣는 장면을 보자 가슴이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2002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된 경우다. 남다른 응원문화 덕이다.

    “축구장의 파도타기 응원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응원문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역동적인 응원의 감동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경기장으로 향하는 것 아닐까요.”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과의 경기를 지켜보며 축구의 매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승부차기에서 홍명보 선수가 골을 성공시키며 극적으로 4강 진출을 결정했을 때,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행복과 기쁨을 맛봤던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얼싸안았을 정도다.

    정 의원은 남아공월드컵 우승국 후보로 스페인을 꼽았다. 그러나 2006 독일월드컵에서 예상을 깨고 이탈리아가 우승한 것처럼 축구에는 늘 변수가 있다며 행운을 기다린다.

    “의외의 변수가 속출하는 게 축구인 만큼, 당연히 한국의 우승을 기대하죠.”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