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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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3高’가 한국경제 발목 잡나

원화가치·원자재 가격·금리 ‘들먹’ … 경기 주춤, 기업 채산성 악화 우려

  • 이태환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 수석연구원 taehwan.rhee@seri.org

    입력2010-03-04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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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3高’가 한국경제 발목 잡나

    1 원화가치가 절상되면 수출은 급감하고 수입은 증가한다. 2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완제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가 위축된다. 3 금리가 오르면 집값이 떨어진다.

    연초부터 ‘신3고(新三高)’라고 한다. 기업 활동에 매우 중요한 3대 가격변수, 즉 원화가치, 원자재 가격, 금리가 이미 높아졌거나 앞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 활동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다들 걱정이다. 정말 심각한 상황일까?

    우선 환율을 보자. 2009년 3월 달러당 1573원 하던 원/달러 환율이 2010년 1월에는 1119원까지 떨어졌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원화가치가 무려 40.5% 절상됐다. 달러에 대해서만 올랐다면 글로벌 달러 약세를 의심하겠으나 그것도 아니다. 정도는 덜하지만 엔, 유로, 위안 등 주요 국제 통화에 대해서도 다 올랐다. 이 추세가 여기서 멈출 것 같지도 않다. 2009년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인 426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흑자가 난 것은 반갑지만, 그만큼 원화가치는 계속 절상 압력을 받는다. 2010년 평균 원/달러 환율은 2009년보다 16% 절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수출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원화 기준으로 지난해 3월에 받던 가격을 계속 받으려면 외국의 구매자에게 달러 기준으로 40.5% 더 높은 가격을 불러야 한다. 당연히 물건이 안 팔린다. 그렇다고 달러 기준으로 예전에 받던 가격을 유지하자니,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 팔았는데 원화로 바꿔놓으면 예전보다 턱없이 적은 돈이다. 이래저래 매출은 줄어들고 수익성은 악화된다.

    원화가치, 원자재 가격↑ 기업들 죽을 맛

    내수로 눈을 돌려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수입품 가격 하락이 문제다. 원화가치가 절상되면 똑같은 외국 물건을 수입할 때 원화 기준으로 돈을 덜 내도 된다. 우리 기업이 만드는 것과 비슷한 수입품이 2009년 3월 1만원 하던 것이 이제는 7110원밖에 안 된다. 우리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뚝 떨어진 것이다. 기업들은 울상이 될 수밖에 없다.



    원자재 가격은 또 어떤가. 2009년 1월 두바이유(油)는 배럴당 44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2010년 1월에는 77달러까지 뛰었다. 세계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각국의 생산 및 소비가 늘어나는 만큼 원유 수요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그칠 기세가 아니다. 2010년 하반기 원유 가격은 배럴당 84달러 근처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 1년에 수입하는 원유가 평균 8억 배럴쯤 된다. 쉽게 줄일 수 있는 수요도 아니다. 가격이 배럴당 연평균 10달러 오르면 연간 수입액이 그 자리에서 80억 달러 늘어난다. 보통 일이 아니다. 원유뿐 아니라 다른 원자재 가격들도 상승 중이다. 기업 생산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렇게 원자재 때문에 오르는 생산비는 완제품 가격에 전가시키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원자재를 사는 기업은 한국 기업만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기업이 같은 상황이다. 이럴 때는 제품 가격이 다 같이 오른다. 환율하락 때처럼 우리만 힘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인 수요 위축이 문제가 된다. 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인다. 당연한 이치다. 가격은 전가되더라도 수요량이 줄어 기업 매출에는 여전히 악영향을 준다.

    금리는 요즘 전 세계인의 화두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국과 세계 각국의 정부는 정책금리를 크게 낮추고 돈을 풀었다.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까지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0년 초까지 이러한 저금리 기조가 대체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금리를 끝없이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돈이 많이 풀리면 물가가 들썩이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거품이 낀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지금은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신중한 모습을 보이지만, 조만간 금리를 다시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초읽기 금리인상, 극도 소비위축 예상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등은 이미 지난해 10월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부동산 과열이 걱정되는 중국과 기준금리 0%대의 미국도 요즘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구체적인 시기가 언제가 됐든 올해 안에는 금리인상, 좀더 넓게는 재정 긴축까지 포함한 이른바 ‘출구전략’을 실행에 옮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어느 나라든 중앙은행장이 금리 관련해서 말 한마디 꺼내기만 하면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거릴 지경이다.

    ‘新3高’가 한국경제 발목 잡나
    금리 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각적이다. 우선 기업의 투자가 가장 먼저 위축된다. 기업은 투자를 위해 자금을 빌리는데, 갚아야 할 이자가 많아지면 자신 있게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투자가 줄면 자본재 수요도 줄고, 고용 창출도 둔화돼 경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한 금리가 오르면 부채를 안고 있는 경제 주체의 이자부담이 더 커진다. 기업은 운용경비가 더 드는 셈이고, 가계는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부채가 아니라 저축성 예금처럼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금리 상승이 득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경제 전체로 보면 총부채보다는 순부채가 중요하다. 2009년 3·4분기 말 기준으로 예금취급기관의 대출과 장기저축성예금을 비교해보면 가계의 순부채가 130조원, 기업의 순부채가 560조원가량 된다. 금리가 1%p 오를 때 가계와 기업이 져야 하는 추가 이자부담만 6조9000억원이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소득계층의 차이까지 고려하면 전망은 더욱 어두워진다. 일반적으로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고, 부채를 진 사람들은 저소득층이 많다고 가정할 수 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금융소득이 1만원 늘어난다고 그 1만원을 바로 다 소비하지는 않겠지만, 소득이 낮은 가계에서 이자부담이 1만원 늘어나면 소비가 1만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금리 상승으로 인해 소비가 순부채의 이자부담보다 심각하게 줄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 부문에서도 국채의 이자부담이 증가하면 균형재정 유지를 위해 추가적으로 긴축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내 금리가 상승하면 내수가 위축되고, 해외에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수출 부문에서 수요가 위축된다. 한국과 주요국에서 함께 금리가 상승하면 지금의 경기회복세가 아무래도 주춤할 가능성이 크다.

    빚 줄이고 품질 높여라!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우리 경제의 앞길엔 ‘노란불’이 켜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 빨간불이라고 할 만한 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안전 운행을 위해선 지금부터 감속하면서 준비를 해야 한다. 5000만명이 타고 있는 승용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속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환율하락에 대비해 비(非)가격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원화가치가 절상될 때 수출품의 외화 표시가격을 함께 높이지 않으면, 원화 기준으로 나가는 비용은 변하지 않는데 매출만 줄어 수익성에 타격이 온다. 하지만 외화 표시가격을 높일 수 있으려면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아야 한다. 다시 말해 경쟁상품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장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품질과 서비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예전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하청업체를 압박해 가격만 낮춘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도요타 사태가 극명하게 보여줬다. 내수 시장에서도 값이 점점 싸지는 수입품들과 경쟁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는 완제품 가격을 함께 올리기 쉬운 대신,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이럴 때 수요가 줄지 않고 유지되는 곳이 어디일까? 원자재를 생산해서 수출하는 나라들이다. 유가(油價)가 오르면 석유의 구매자는 힘들어지는 반면, 산유국의 지갑은 두둑해진다. 이런 나라 사람들은 우리 수출품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자가 된다.

    실제로 2008년 중반 유가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에 대한 우리의 수출도 크게 늘어난 바 있다. 올해도 그런 기회를 찾아야 한다. 원자재 수출국에서 지갑이 열릴 때 우리 물건을 바로 팔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미리 조사하고 제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금리에 대해서는 부채 비중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최근 한국이 각종 지표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금융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갚아야 한다. 기업의 부실자산 정리도 더 미룰 수 없다. 그리고 금리가 오르면 주택가격도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계에서는 주택담보 대출을 받고자 할 때 좀더 신중해야 한다. 2010년 ‘신3고’, 험난한 길이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넘을 수 있는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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