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3

2010.02.09

관절이 웃어야 인생이 웃는다

‘국민병’ 관절염, 운동이 최선의 예방법 … 바른 자세와 체중 관리도 중요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0-02-04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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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절이 웃어야 인생이 웃는다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모호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골목이나 마을 어귀에는 봄이면 햇볕 좋은 자리, 여름이면 큰 그늘을 만드는 아름드리나무 밑에 큼지막한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곳은 늘 동네 어르신인 할머니들의 차지. 늙어 운동력과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그곳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게 생의 낙이었다. 골목문화가 사라지고 농촌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경로당이나 노인회관이 생겨났지만 그곳을 찾는 이들은 드물다. 동네를 떠나 그곳까지 걸어가는 것 자체가 고역인 노인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다리 관절염에 걸린 노인들은 이제 아파트 안에 갇혀 잘 들리지도 않는 TV 채널만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노인에게 100세까지 사는 현실이 과연 얼마나 행복하게 느껴질는지.

    관절염 환자가 너무 많다. 회갑이 지난 어르신 중에서 “아이고! 다리야, 어깨야, 팔이야”라며 관절마다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성 노인의 경우 특히 심각하다. 2007년 정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남녀 통틀어 60대는 10명 중 3명(28.9%), 70대 이상은 4명(37.6%)이 관절염을 호소한다. 10명 중 2명을 넘지 못하는 남성 노인에 비해 여성은 60대의 41.8%, 70대 이상의 48.5%가 관절염을 앓고 있다. 숫제 절반이 관절염 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절염으로 매년 6400억원 손실 … 살인에 자살까지

    2000년대 들어 관절염은 고혈압, 당뇨병, 고콜레스테롤혈증(고지혈증)을 제치고 우리나라 45세 이상 성인의 가장 흔한 만성질환이 됐다. 10여 년 전인 1998년 통계와 비교해도 다른 만성병보다 유병률의 증가폭이 크다. 60대 이상 여성 노인의 경우 매년 1% 이상씩 유병률이 상승하고 있다. 만성질환마다 ‘국민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국민병’의 진정한 으뜸은 바로 관절염.

    매년 관절염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액도 국내총생산(GDP)의 0.11%에 해당하는 약 6249억원에 달한다. 이는 요통·좌골통(4233억원), 사고·중독(3602억원), 위염·소화성궤양(2627억원), 뇌졸중(1930억원), 당뇨(1406억원)로 인한 손실액보다 1.5~3배 높은 수치로, 질환의 생산성 손실액으로는 독보적 1위다. 정신적 피해도 크다.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관절염 환자 중 과거 1년간 슬픔이나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은 여성의 경우 74.1%, 남성은 67.1%에 달했다. 또한 관절염 환자의 26.7%가 늘 피로를 느낀다고 답했다.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환자의 비율도 31.2%나 됐다.



    관절염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손모(68·경기 안양시 동안구) 할머니는 남편인 강모(72) 할아버지를 둔기로 살해한 뒤 자신의 머리도 내리쳤지만 미수에 그쳤다. 손 할머니는 평소 관절염과 우울증으로 거동까지 불편한 남편에게 “치료할 돈도 없는데 같이 죽자”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관절염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그로 인한 피해가 커져가는 이유는 고령화와 수명 연장에 있다. 관절염은 말 그대로 온몸에 있는 206개의 뼈와 뼈 사이에서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100개 이상의 관절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관절염은 질환의 세부 종류만 120개가 넘는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또 잘 알려진 질환이 바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퇴행성관절염이다. 통계에 따르면, 관절염 환자의 83%가 50대 이상이다. 나이 든 인구의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관절염 환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 여성이 관절염에 유독 약한 까닭은?

    퇴행성관절염은 뼈와 뼈를 연결하는 관절의 물렁뼈, 즉 연골이 닳아 생기는 질환. 연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모가 심해져 종래에는 뼈가 맞부딪치게 되는데, 그럼 차츰 통증이 심해지다 염증이 생기고 관절의 운동 기능마저 급격히 떨어진다. 관절에 물이 차 붓기도 하고, 다리가 뻣뻣해지며, 움직일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나 우두둑 소리가 나기도 한다. 심하면 무릎이나 어깨가 구부러지지 않거나 다리가 O자형으로 휜다. 어깨, 팔목, 발목은 뼈 자체에 기형이 오기도 하는데 최악의 경우 걸을 수도 없고, 팔을 드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가벼운 노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질환이 되는 것이다.

    잘못된 생활습관도 퇴행성관절염을 부르는 주범이다. 그 자체로 바로 관절염이 생기지는 않지만, 관절에 부상을 입은 후 방치하거나 관절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 또는 무리한 압력이 지속적으로 관절에 가해지면 연골이 급속히 마모되면서 젊은 나이에도 퇴행성관절염이 찾아온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팔목관절, 껌을 많이 씹는 사람은 턱관절, 점프 동작이 많거나 다리를 혹사하는 운동선수들은 무릎관절에 염증이 생겨 고생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일반인이 하는 평범하고 지속적인 운동은 인대와 근육에 생긴 부상을 방치하지만 않는다면 큰 지장이 없다는 게 학계의 중론.

    10년 전보다 20대 관절염 환자가 크게 늘어난 점도 무리한 운동으로 인한 인대와 근육 부상을 방치한 데서 기인한다. 1998년 0.7%대에 머물던 20대 관절염 유병률은 2007년 1.9%까지 늘었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이상훈 교수는 “정상 관절로 달리기와 마라톤 같은 지속적인 운동을 하면 관절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선수든 일반인이든 무리한 운동과 잘못된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관절 내 여러 조직에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조직이 망가지면 관절의 퇴행성 변화 및 관절염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주지현 교수도 “인간과 동물실험에서 전방십자인대와 반월판의 손상은 관절 연골의 손상을 유발한다고 밝혀졌다. 발목관절염은 발레 무용수, 팔꿈치 관절염은 투수, 중수수지 골관절염은 권투선수에게 흔한 반면, 일반인에게는 이런 부위의 관절염이 흔하지 않다. 하지만 심한 외상을 제외하면, 특정 운동과 관절염 발생의 확실한 인과관계는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연골의 퇴행성 마모 외에도 관절 혹사가 관절염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관절은 뼈와 뼈 끝부분을 에워싼 연골과 관절을 둘러싼 관절막, 그 속에 든 활막, 영양분을 흡수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활액, 인대, 근육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부상이나 과도한 사용, 무리한 압력 등이 관절에 가해지면 활막, 뼈 등에서 염증 물질이 분비돼 연골 분해(마모)를 촉진한다.

    서양인에 비해 한국인, 그중에서 여성이 유독 관절염에 많이 걸리는 이유도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입식 생활을 하는 서양인은 엉덩이관절염, 즉 고관절염 환자가 많은 반면, 좌식 생활을 하는 동양인은 무릎관절염이 많다. 구들장 문화를 가진 한국 사람들은 관절에 과부하가 걸릴 여러 요인을 갖고 있다. 걸레질, 재래식 화장실 이용, 김장, 세수 등 쪼그려 앉아 하는 일이 많은 것. 지금 60세가 넘은 여성들은 쪼그려 앉아서 생활한 시간이 서서 걸어다닌 시간보다 많다.

    관절이 웃어야 인생이 웃는다


    관절이 웃어야 인생이 웃는다
    주 교수는 “관절 연골은 여러 마찰에 매우 잘 견디는 특성이 있는 반면, 반복적인 충격에는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관찰된다.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걸을 때 본인 체중의 4~5배, 특히 쪼그리고 앉았을 때 체중의 10배 압력이 무릎 연골에 가해진다. 쪼그려 앉기, 꿇어앉아 하는 걸레질처럼 무릎 연골에 높은 압력이 가해지는 자세를 매일 아침저녁 취한다면 골관절염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체육대학의 실험 결과, 하루 30분 이상 쪼그린 자세로 장기간 생활한 사람이 일반인보다 무릎관절염에 노출될 위험성이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걸을 때→계단을 오르내릴 때→뛸 때의 순으로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량이 많았다.

    관절염 난치병 아니다

    체중 증가도 관절염 발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교수는 “과체중인 사람은 정상 체중의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관절염 발생위험성이 높다. 체질량지수가 30 이상인 사람(예 : 키 170cm, 몸무게 87kg)은 정상 지수인 사람(예 : 키 170cm, 몸무게 70kg)보다 관절염 발생위험성이 4~6배 높다는 보고가 있고, 체중을 5kg 줄였을 때 관절염 발생위험성이 50% 감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비만은 연골에 가해지는 부하로 인한 마모뿐 아니라 다른 요인과도 관련이 있는데, 과체중인 사람은 비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많아 연골에 더욱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이 경우 연골 손상 빈도도 그만큼 높아진다. 특히 비만은 관절에서 염증 관련 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관절염이 더 이상 불치나 난치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기에 발견하면 가벼운 실내 유산소운동(스트레칭, 수영, 실내 자전거)과 근력운동(최대 부하량의 30% 수준), 약물치료를 병행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미국의사협회지가 60세 이상 노인 439명에게 18개월 동안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시킨 결과, 무릎관절염 노인 환자들의 장애 정도, 통증, 육체적 능력이 모두 향상된 것으로 밝혀졌다. 관절염이 조금 진행됐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술법이 발달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관절내시경으로, 심한 경우에는 인공관절을 끼움으로써 관절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질환에 공통된 이야기이지만, 최대의 치료법은 역시 예방이다. 관절염 예방법은 조기 환자의 치료법과 거의 다르지 않다(32쪽 참조).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관절에 부담을 주지 않는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평소에 꾸준히 하고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사가 완만한 낮은 흙산은 괜찮지만, 40대 이상이라면 높낮이가 일정치 않은 돌산 등반은 피하는 게 좋다.

    흔히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 관절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명심해야 할 점은 관절염이 그 어느 질환보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면 감옥에 갇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 그리고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뼈저리다. 그 때문일까. 모든 질환에 대한 통계조사에서 관절염은 다른 질환보다 삶의 질 지수가 확연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수명 80세 시대가 시작됐다. 이제 노인들의 희망은 단지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죽는 날까지 통증 없이 편안하게 생을 즐기는 것이다. 일명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일 아프고 3일째 죽는다)’가 그들의 꿈이다. ‘9988’하게 살려면 관절을 보호하는 게 우선. 관절이 건강해야 인생이 편안하다는 말이 더 이상 헛구호가 아닌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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