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2010.01.05

운전자보험 광고 ‘소비자 협박’

‘중상해 교통사고 내면 구속’ 허위 과장 … 과실과 불가항력 따라 처벌 달라져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9-12-29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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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자보험 광고 ‘소비자 협박’
    2009년 2월26일 헌법재판소는 교통사고특례법(이하 교특법) 4조1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교특법 4조1항은 ‘교통사고로 인해 중상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자동차종합보험과 각종 공제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는 운전자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 즉 교통사고로 상대방에게 중상해를 입혔다고 해도 음주, 뺑소니, 사고 후 도주 등 11대 중대과실이 아니고 가해자가 보험 가입만 했다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소한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는 그 피해 정도에 관계없이 검찰의 기소권 자체가 봉쇄돼 있었던 것.

    하지만 교특법의 위헌결정으로 중대과실이 아니어도 상대방이 중상해를 입으면 보험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위헌결정은 운전자의 안전 주시 의무를 촉구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강화했다는 점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중상해’의 개념이 애매한 데다 결국 전과자만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대검찰청은 위헌결정에 따른 수사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중상해의 개념을 정의한 업무처리지침을 만들어 일선 검찰과 경찰에 하달했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중상해라도 과실 정도와 사고 당시 상황을 종합해 가해자의 형사입건에 최대한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겁내는 운전자에 2~3배씩 올려 받아

    하지만 교특법 위헌결정으로 큰 이득을 본 쪽은 따로 있다. 2009년 초부터 운전자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손해보험사들이다. 일반 자동차보험이 주로 차량 파손과 상대 운전자의 사망 및 상해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비해 운전자보험은 운전자 자신에 대한 보장에 집중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피해자와의 형사합의금(2000만~3000만원)과 변호사 비용(500만~1000만원), 구속 시 위로비용(50만~200만원), 벌금(최고 2000만원), 사망 및 상해(최고 5억원) 지원이다. 따라서 이번 위헌결정으로 자칫 전과자가 될까 걱정하는 운전자들이 자기방어용으로 너도나도 운전자보험에 가입했다.

    2009년 하반기 이후 대형 손해보험사가 앞다퉈 운전자보험 시장에 뛰어들자 분위기가 혼탁해졌다. 이들은 케이블방송 광고와 인터넷 광고를 통해 무차별 경쟁에 나섰다. 이들의 광고 내용은 거의 ‘협박 수준’에 가깝다. 위헌결정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해 운전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 전형적인 스타일은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중상해만 입히면 형사처벌’ ‘중상해 사고의 경우 합의하지 못하면 형사처벌’ ‘합의하지 못하면 구속을 면할 수 없다’ 등. 거기에다 1만원이면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고 선전해놓고, 정작 전화통화를 하면 나이와 운전경력에 따라 보험금을 2~3배씩 올려 받는다.



    운전자보험 광고 ‘소비자 협박’

    인터넷에 실린 운전보험 광고. 버젓이 ‘중상해 사고를 내면 구속된다’고 써놓았다.

    요즘 케이블방송에 나오는 유명 손해보험사의 운전자보험 광고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광고 첫머리에 ‘신호를 위반하지 않아도, 과속하지 않아도 중상해 사고가 나면 형사처벌’이란 문구가 나오면서 사고를 낸 운전자가 수갑을 찬 채 경찰 호송차에서 내린다. 운전자가 “생계 때문에 합의금이 없다”고 말하자 경찰관이 “합의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합의를 하라”며 운전자를 경찰서로 끌고 들어간다. 누가 봐도 ‘내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중상해 사고를 낸 뒤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된다’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운전자보험의 혜택을 본 사람이 나와서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합의를 해야 한다. 운전자보험에 가입해 덕을 봤다”고 말한다.

    인터넷 광고는 한술 더 떠 아예 이런 내용을 명문화한다.

    ‘중상해에 대해 본인 과실이 아닌 경우에도 상대방이 1~3급의 상해를 입는 큰 사고가 있었다면 구속을 면할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운전자라면 이에 대한 대비로 중상해 보장을 가미한 운전자보험을 별도로 준비하는 게 큰 손실을 막는 방법일 수 있다.’

    檢·警 “광고 내용, 사실과 다르다”

    과연 이런 광고 내용이 모두 사실일까. 교특법 위헌결정 관련 수사지침을 만든 검찰 관계자와 일선에서 이 지침을 집행하는 경찰 측은 이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먼저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대검찰청 김진표 연구관(검사)은 “교특법 중상해 처벌조항은 기본적으로 형사법상 업무과실이 있을 때만 처벌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잘못이 없는데 형사처벌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연구관은 합의 및 구속에 대해서도 사례를 들어가며 광고 내용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은 형사입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뜻일 뿐이다. 실제로는 과실의 경중과 사고 당시 운전자의 불가항력적 상황을 두루 분석해 형사입건 여부를 결정한다. 합의가 형사처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합의하면 형사처벌을 면하고 합의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합의를 거부하면 공탁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구속은 재판부의 판단을 필요로 하므로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가해자가 안전 주시 의무 등 경미한 과실이 있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었다고 해도 사고 당시 운전자의 상황이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처벌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뛰어든 사람을 치어 중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

    실제 위헌결정 이후 경미한 과실로 중상해를 입힌 가해자 3명이 형사입건됐는데, 모두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청 교통과 관계자는 “중상해 사고의 경우 내가 잘못이 없어도 형사처벌된다거나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과실의 경중과 사고의 불가항력성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검찰 지침에 따라 조사한 후 의견을 올리고, 애매한 사건은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각 손해보험사 측에 이런 과대, 편법광고의 제작 책임과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1만원이면 교통사고 고민 끝’이라는 광고 문구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구했지만, 관계자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손해보험협회와 광고심의위원회 심의필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없다. ‘1만원’ 부분은 아주 작은 글씨로 ‘나이에 따라, 선택 부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쓰인 화면이 빨리 지나가 소비자가 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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