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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출산율과 낙태를 연관짓지 말라!

임산부·의사 처벌로 출산율 높이기는 전체주의적 발상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출산율과 낙태를 연관짓지 말라!

출산율과 낙태를 연관짓지 말라!
“기본은 32만5000원부터 시작해요. 영양제는 5만원, 7만원, 10만원짜리가 있는데 대부분 7만원짜리를 맞으세요. 영양제요? 당연히 맞아야죠. 빨리 회복하시려면요.”(A산부인과)

“(임신) 6주면 38만원, 8주면 42만원, 12주면 65만원이에요. 우선 오세요.”(B산부인과)

“병원에 오셔야 (낙태시술) 상담을 해드려요. 전화상으론 곤란합니다.”(C산부인과)

“저희는 낙태시술 안 합니다.”(D산부인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불법 낙태시술 단속을 포함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 11월16일, 여러 산부인과에 전화문의를 하니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나 낙태시술을 거부하는 병원은 드물었다.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낙태시술을 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형법(제269조, 제270조)에 규정돼 있지만,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2005년 당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종합대책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 낙태는 연간 34만여 건 발생했다. 하지만 검찰의 낙태죄 처리 현황을 보면 기소 건수가 2005년 3건, 2006년 10건, 2007년 7건, 2008년 9건에 불과하다.

보도 이후 논란이 불거지자 미래기획위원회 측은 “낙태 단속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출산율이 1.19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올해는 1.22라고 하니, 손쉬운 대책으로 ‘낙태 근절’을 택할 수 있는 까닭이다.

출산율 높이기를 위한 정부의 낙태시술 단속 방침에 대해 의사, 철학자, 법학자, 여성학자의 의견을 물어 해결 지점을 모색해봤다(기사는 편의상 대화 형식을 빌렸지만 인터뷰는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국가가 낙태시술을 단속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안나(산부인과 의사) 나는 낙태에 반대하고 낙태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의사지만, 출산율과 낙태를 연관 지어선 안 된다고 본다. 출산율이 높으면 낙태해도 되고, 출산율이 낮으면 낙태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낙태 문제는 그 자체로 접근해야 한다.

김종석(산부인과 의사) 국가가 나서서 낙태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사실을 알린다면 그전보다 더 신중하게 낙태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산아제한정책을 펼 때 낙태시술의 한 형태인 ‘월경조절술’을 피임방법으로 홍보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떤 명분으로 낙태를 단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오진탁(한림대 철학과 교수·생사학연구소장) 진작 문제 삼았어야 할 부분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데다 그간 낙태시술을 묵인해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지 않았나.

김열규(서강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저자) 낙태는 태아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육친을 살해한 것으로, 그 자체가 엄청난 죄다. 따라서 법적 처벌 규정이 있더라도 1차적으로는 윤리에 맡기는 것이 옳다.

양현아(서울대 법학부 교수) 국가가 낙태시술 의사를 처벌해 출산율을 올린다는 발상 자체가 전체주의적이다. 국가는 아이를 낳아라, 마라 할 권한이 없다. 국가는 아이를 낳아주지도, 키워주지도 않는다. 개인의 중차대한 결정을 국가 인구정책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여성은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존재’로 규정돼 여성 인권 측면에서 옳지 않다. 여성에게 낙태의 권리는 성, 출산, 양육의 권리 및 책임과 연동되기에, 낙태와 출산 문제에 대한 연속적 접근이 필요하다.

장필화(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여성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여성의 취업 기회 확대, 미혼여성 지원, 보육 지원 등을 통해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모자보건법에는 낙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 있는데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출산율과 낙태를 연관짓지 말라!

정부가 만든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가족계획 포스터(왼쪽부터).

최안나 의학적으로 낙태시술이 용인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임신을 유지하면 산모의 목숨이 위험할 때다. 엄마가 죽으면 태아도 죽게 되니 둘 중 하나라도 살리자는 취지다. 부모에게 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해도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여기엔 인권유린의 소지가 있다. 부모가 아프다고 반드시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니며, 아픈 아이라고 죽여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어떤 임부들은 엑스레이 촬영을 했거나 약을 먹었다는 이유로 아이를 위해 낙태해달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 아이에게 결함이 있다는 증거가 뚜렷하지 않을뿐더러 설령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아이가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의학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정도의 기형이면 자연스럽게 사산(死産)된다.

김종석 그동안 많은 병원이 이런 근거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낙태시술을 해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분만을 하면 초산의 경우 18시간 내내 체크해야 하는데, 산모가 부담하는 비용은 20만원 안팎이다. 건강보험을 지원받아도 50만원이 안 된다. 개인병원에선 분만이 많아야 한 달에 5건인데, 그 수입으로는 교대 인력의 인건비 대기조차 힘들다.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 우리 병원에선 아내가 병원식당 일을 거들며 인건비를 아끼고 있다.

김대영(산부인과 의사) 낙태시술은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말이 있다. 1, 2시간의 수술로 50만원을 벌 수 있으니 일부 의사들은 처음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도 곧 여느 수술을 하듯 덤덤하게 낙태시술을 하게 된다. 상당수 개인의원은 낙태시술로 벌어들이는 돈이 전체 수입의 40, 50%에 육박하므로 시술을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현아 우리나라에선 낙태가 대부분 사회·경제적 이유로 이뤄지기 때문에 낙태 사유 자체를 현실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선 ‘17세 이하이거나 40세 이상인 경우’ ‘부모의 일방 혹은 양방의 질병이나 정신적 불안 등으로 아이를 돌볼 능력이 심각하게 제약받는 경우’ ‘아이를 4명 이상 출산한 경우’에 낙태를 허용한다. 헝가리에서는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 사유로 ‘임부가 미혼이거나 지속적인 별거생활 중일 때’ ‘임부가 만 35세 이상일 때’ ‘임부와 그 남편이 자기 소유의 집이나 독립적인 셋집을 가지지 못했을 때’ 등으로 규정한다.

여성권이 먼저냐, 생명권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 있다.

오진탁 어느 것도 우위에 둘 수 없지만 여성의 권리가 생명의 권리에 앞서지 않는다고 본다. 생명 존중이 기본이고, 그 뒤에 남성이나 여성의 권리가 있다.

최안나 낙태에 반대한다고 여성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성권 신장을 위해 낙태를 반대한다. 그동안 여성은 피임에 실패해도 낙태라는 해결책이 있었기 때문에 더 궁지로 몰렸던 것이다. 낙태를 하면 여성의 몸이 훼손돼 불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여성권은 더 낮아질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를 안 하면 아이들이 늘어날 테고, 그렇게 돼 국가가 지원책을 마련하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여성권은 신장될 것이다.

장필화 낙태가 줄어 아이가 많이 태어난다고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 현실이다. 미혼모는 있지만 미혼부는 없지 않은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엄마의 생명권이 계속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무작정 태아의 생명권만 강조할 수 없다.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려면 엄마가 없어도 아이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개개인의 상황을 무시한 채 권리의 경중을 논하는 것은 부당하다.

모자보건법 제15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 [2009.7.7 개정]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② 법 제14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은 연골무형성증, 낭성섬유증 및 그 밖의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으로 한다.

③ 법 제14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및 그 밖에 의학적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한다.

(개정 전 : 유전성 조울증, 현저한 범죄 성향의 유전성 정신장애, 간염 등 포함)




주간동아 2009.12.01 713호 (p54~55)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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