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2009.11.24

‘대박 드라마’ 공식? … 그런 건 없다!

캐릭터, 구조, 참신함, 기본기 충실 우선 … 비슷한 소재 답습한 ‘짝퉁’ 피해야

  •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입력2009-11-18 10: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박 드라마’ 공식? … 그런 건 없다!

    2009년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선덕여왕’과 젊은 여성팬들을 사로잡은 ‘꽃보다 남자’. 두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다.

    2009년 가을을 장식한 ‘공주가 돌아왔다’(KBS2), ‘맨땅에 헤딩’(MBC), ‘미남이시네요’(SBS)의 공통점은 뭘까. 배우, 감독, 작가의 명성에 못 미치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최근 종영했거나 아직 방영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드라마 마니아다.

    나름대로의 성공 요인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들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결정적인 요인은 이 드라마에 덧씌워진 ‘짝퉁 드라마’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청춘스타 출신의 오연수와 황신혜를 내세워 가정주부의 로망을 그린 ‘공주가 돌아왔다’는 실직 가장을 내조하고자 온몸을 던지는 주부의 활약을 그린 ‘내조의 여왕’(MBC)과 닮았다. 우리 시대 청춘의 이면을 감성적으로 포착해 형상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박성수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인 ‘맨땅에 헤딩’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청춘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절절하게 담아낸 그의 명작 ‘네 멋대로 해라’(MBC)와 유사하다.

    반면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능력이 뛰어난 홍정은·홍미란 자매 작가의 신작 ‘미남이시네요’는 ‘꽃미남’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2009년 상반기 화제작 중 하나인 ‘꽃보다 남자’(KBS2)를 연상케 해 ‘짝퉁 드라마’ 시비에 휘말렸다.

    드라마 예술은 창의적인 감성의 산물



    이쯤 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대박 드라마’에 공식이 있을까? 단언컨대 만약 그런 공식이 존재한다면 드라마는 ‘예술’이 될 수 없다. 예술은 ‘틀에 박힌 형식이나 방식’이란 정의의 ‘공식’이 아니라 작가의 창의적 감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믿고 있는 공식이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성공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을 ‘대박 드라마’의 공식이라 믿고 이에 맞춰 제작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성공한 드라마의 장점을 모방한 ‘짝퉁 드라마’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짝퉁 드라마’가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걸 보면, 드라마 창작의 주체보다는 감상의 주체인 시청자가 훨씬 현명한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의 영역에서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공식을 애써 찾아내고 싶은 욕망은 문화산업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드라마의 특수성 때문이다.

    드라마는 영상예술인 동시에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산업이기도 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길이 있다면 제작자는 당연히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대박 드라마’의 성공사례를 분석하고 그것을 모방하거나 변주하려는 욕망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른바 ‘대박 드라마’의 공식이라 불리는 요소들은 성공한 드라마의 공통분모일 뿐이며, 대부분 드라마의 기본 요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박 드라마’의 공통분모를 추려보면 △매력적인 등장인물의 창조 △탄탄한 구조 △구조의 참신함으로 요약된다. ‘막장 드라마’ 논란에 휩싸였던 ‘꽃보다 남자’와 막장 드라마의 폐해를 극복한 ‘착한 드라마’로 평가받았던 ‘찬란한 유산’(SBS)의 상반된 성공요인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들이 판이한 성격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보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의 창조’가 기인한 바가 크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 분)와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이승기 분)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많은 인물로 주목받았다. 기존 드라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던,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재벌 2세들과 구준표, 선우환이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사랑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순수함과 귀여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 사랑하는 여자에게 미운 짓만 골라 하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모성 본능을 자극하면서 여성 시청자의 환상을 충족시켜준 것이다.

    ‘대박 드라마’ 공식? … 그런 건 없다!

    ‘막장 드라마’로 불린 ‘아내의 유혹’은 서사구조의 참신함 덕에 높은 시청률을 지킬 수 있었다.

    능력 있고 완벽한 재벌 2세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어수룩한 매력의 훈남으로 거듭 태어난 구준표와 선우환이 있었기에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구혜선 분)와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한효주 분)이 틀에 박힌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해가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이 가능했다.

    긴장감 잃으면 블록버스터도 흥행 참패

    ‘선덕여왕’(MBC)이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면서 대박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미실(고현정 분)이라는 당대 최고 여성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골품제가 엄격한 신라사회에서 출신 성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왕이 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미실은 황후가 되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간직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진흥왕 시절부터 3대에 걸쳐 황실을 좌지우지하던 미실이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덕만 공주(이요원 분)와 정치적 대립각을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지만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한반도 최초의 여왕 자리에 오른 선덕여왕이 마음을 끄는 인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것도 미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선덕여왕’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대박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화랑세기’ 속 여걸 미실을 드라마적 상상력으로 재현, 신라사회를 쥐락펴락한 뛰어난 여성 정치인으로 형상화하면서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한 것이 큰 몫을 했다.

    대박 드라마의 또 다른 공통분모, 탄탄한 구조와 구조의 참신함을 살펴보자. SBS의 ‘로비스트’ ‘카인과 아벨’ ‘태양을 삼켜라’는 최근 몇 년 사이 방영된,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대표적 드라마다. 막대한 물량 투입에도 이들이 대박 드라마가 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짐작 가능한 서사구조에서 비롯된 극적 긴장감의 상실 때문이다.

    유년 시절의 정신적 외상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서사구조의 도식성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시도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의 상투성까지 겹쳐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매력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2003년 최고의 화제작이자 대박 드라마, ‘올인’의 작가와 감독이 다시 의기투합한 ‘태양을 삼켜라’는 비록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올인’의 ‘짝퉁 드라마’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했다.

    소재와 내용에서 ‘자기복제’라는 또 다른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 그래서 대박 드라마 ‘공식’의 폐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탄탄하지 못한 구조가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참패 원인이 되듯 구조의 참신함은 도덕적, 윤리적인 비난을 받는 막장 드라마를 대박 드라마로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09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아내의 유혹’(SBS)은 당초 예정돼 있었던 것인지 의심되는 ‘복수 3부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일일연속극으로는 보기 드문 빠른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불륜과 살인, 복수를 내세우되 시청자들이 그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사건을 전개시킨 이 드라마의 서사구조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만했다.

    내용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소소한 가족의 일상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일일연속극의 기본 틀을 파괴한 ‘아내의 유혹’은 일단 서사구조의 참신함에서 높은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박 드라마’ 공식? … 그런 건 없다!

    대박드라마에 ‘공식’은 없다. 기본기와 ‘내공’만 갖춰진다면 예기치 못한 성공을 낳기도 한다. 현재 방영 중인 ‘미남이시네요’ ‘아이리스’와 10월1일 종영한 ‘태양을 삼켜라’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극적 긴장감 떨어져가는 ‘아이리스’

    한국형 첩보액션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방영 초기부터 대박 드라마로 일컬어진 ‘아이리스’(KBS2) 역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할 중반부 이후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가안전국 요원들의 첩보활동,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그린 이 드라마가 화려한 액션 장면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매력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음모·복수·사랑·우정’ 등의 요소가 개연성 없이 뒤섞이면서 이야기 전개의 추동력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NSS 요원 김현준(이병헌 분)이 북측의 고위급 인사를 암살하는 장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1회의 내용이 4회에서 반복적으로 설명된 점과,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눈 김현준과 최승희(김태희 분)가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는 상황에서 과도할 만큼 자주 회상 장면을 사용해 이야기 전개의 발목을 잡은 것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김현준이 북한의 특수공작원 김선화(김소연 분)에게 자신이 왜 대한민국에서 버림받고 북한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됐는지 설명하는 8회의 장면은 단순한 줄거리 요약에 불과할 정도로 답답해 보였다. 한국형 첩보액션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 같았던 ‘아이리스’가 중반 이후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는 이처럼 극적 긴장감을 느낄 수 없는 진부한 서사구조와 과도한 회상 장면 때문이다.

    특히 김현준이 일본 여행 중 최승희에게 키스로 사탕을 전달하는 장면은 한두 번 보면 가슴 떨리게 하는 명장면임이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등장하니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진다. 다른 블록버스터 드라마에서 공식처럼 반복해온, 극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볼거리 중심으로 구성하는 해외 로케이션 장면도 ‘아이리스’가 진정한 대박 드라마가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강조하건대 진정한 대박 드라마가 되려 한다면 공식의 함정을 피해 ‘매력적인 등장인물의 창조와 탄탄한 구조 혹은 구조의 참신함’이라는 드라마의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쪽대본’이 난무할 만큼 열악한 제작환경이라 해도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서사구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 만약 제작 여건의 열악함을 핑계로 드라마의 기본기를 무시한다면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당대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한 드라마라면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대박 드라마 공식의 함정을 피하는 것, 그것이 곧 대박 드라마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