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3

2009.04.28

“훔쳐간 내 자전거 돌려주세요!”

도난 ‘자출족’의 ‘공공의 적으로부터 자전거 지키는 요령’

  • 지웅 ‘자출사’ 회원·CBS TV제작부장 woong@cbs.co.kr

    입력2009-04-24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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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훔쳐간 내 자전거 돌려주세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 포스터(작은사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믿어지지가 않아 멍해 있다가 다시 그 주변을 헤맨다. 어디 갔을까. 수백 대의 자전거 속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던 ‘빛나는’ 자전거. 여기 거치대에 꼭꼭 묶어놓았던 내 자전거가, 사라졌다.

    4월4일 서울 한복판, 수백명이 오가는 상가·학원 지역에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알톤 RCT 감마 검은색. 바로 넉 달 전에 구입한 자전거. 옆에 더 비싼 자전거, 반짝반짝한 새 자전거들이 태연자약 서 있는데, 내 자전거만 없어진 것이다.

    주말에 한 번씩 바깥바람이나 쐬려고 자전거를 타는, 이른바 ‘레저족’과는 자전거를 대하는 자세가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이다. 우리에게 자전거는 몸의 한 부분과 같다. 레저도 아니고 멋도 아니고, 마음 같아선 안방까지 함께 끌고 들어가고 싶은 무엇이다.

    신발은 한 켤레쯤 잃어버려도 그뿐이라 할 수 있을 듯한데, 자전거는 그게 안 된다. 하긴 매일 30km씩 신고 뛰는 신발이 있을 리 없다. 자출족에게 자전거는 대개 한 켤레뿐인 신발이며, 자가용이자 애마이며, 친구이며, 때로는 애인이다. 그런데 ‘도둑놈’들이 이걸 훔치는 것이다. 아, 죽일 놈들이다.

    자전거 도둑도 명백한 범죄자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유명한 영화 ‘자전거 도둑’(1948)에서 브루노의 아버지는 유일한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고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자전거 도둑이 된다. 내 자전거도 그렇게, ‘생계형 도둑’에게 넘어갔다면 그나마 아픔이 덜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자출족’이 그런 면에서 ‘생계형 자전거 이용자’라 할 만하지만, 도둑들은 그저 남의 자전거를 훔쳐다 팔아먹는 인간들일 뿐이다. ‘아마추어’에 가까운 청소년 도둑도 있고, 인터넷 중고장터를 무대로 활약하는 프리랜서도 있고, 전문 장물아비와 연결된 도둑 집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딱 한 번, 집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 밖에 묶어놓은 자전거가 반드시 없어지고,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 사가지고 나오는 틈에 내 자전거는 연기처럼 날아가버린다.

    이제는 ‘재수가 없으면’ 자전거를 도둑맞는 게 아니라, ‘재수가 좋으면’ 비교적 오랜 기간 도둑맞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판국이다. 훔칠 만한 자전거가 어디 있는지, 경찰이 순찰 돌듯 주요 포스트를 돌며 살피는 ‘도둑팀’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도 여러 팀이 동시에 진행하는 ‘순찰’이다.

    그렇게 무려 21대의 자전거를 도둑맞은 대구의 양은영 씨는 2006년 ‘자전거 등록번호판 달기’ 온라인 입법 청원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안타깝다. 아직도 입법은 요원한 것처럼 보이고 오늘도 도둑들은 열심히 돌아다닌다.

    실제로 자전거 도둑 문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맞닥뜨리는 난제다. 주위의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자전거를 가져본 사람 중에서 도둑맞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그들의 요령을 배우면 된다. 그 요령은 이런 것이다.

    “훔쳐간 내 자전거 돌려주세요!”

    독일 뮌스터 시내 열차역 근처의 자전거 주차시설. 1999년 완공 (위). 최근 문을 연 서울 영등포 구청 내 자전거 보관시설(아래).

    1. 팔아도 돈이 안 되는, 다 낡은 싸구려 자전거를 탄다.

    2. 자전거에서 잠시도 손을 떼지 않는다. 자전거와 함께가 아니라면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다. 다행히도 아직은 주인을 때려눕히고 자전거를 뺏어가는, 자전거 ‘강도’는 많지 않은 것 같다.

    3. 자전거를 집 안에서만 탄다(바퀴가 없는 실내 자전거를 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체로 이해하기 쉬운 요령이긴 한데, 문제는 2번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일은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며 화장실에도 가야 하는데, 이런 일을 자전거에서 손 떼지 않고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을 떼도 남이 들고 가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 잠금장치가 생겨났다. 가장 많이 쓰이는 와이어 로크에서부터 체인 로크, U자형 로크, 4관절 로크 그리고 도난경보기까지 수백 가지 제품이 나와 있지만 완벽한 제품은 없다.

    웬만한 와이어 로크는 아무런 도구 없이도(!) 요령만 익히면 10초면 부술 수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대형 커터 같은 것은 없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대만 L사의 4관절 로크도 국내 철물점에서 살 수 있는 1500원짜리 쇠톱으로 30분이면 잘라낼 수 있으며,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 중 최고의 강도를 자랑한다는 독일 A사의 20만원대 강철 체인 로크도 유압 커터 앞에서는 5분을 견디기 힘들다.

    따라서 완벽한 방범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몸 가까이 자전거를 두는 방법밖에 없다. 잠금장치 사용과 관련한 요령은 이런 것이다.

    1. 잠금장치는 2만원대 이상의 튼튼한 제품을 사용한다. 2개를 함께 사용하면 좀더 안전하다.

    2. 잠금장치는 기둥이나 나무, 거치대 등 이동 불가능한 것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잠금장치가 튼튼해도 통째로 들고 갈 수 있다.

    3. 와이어 로크처럼 고리 모양으로 묶는 잠금장치는 한 번만 감지 말고 두 번 겹쳐서 감는다. 웬만해선 부서지지 않는다.

    4. 앞바퀴보다는 뒷바퀴에, 그리고 바퀴보다는 프레임에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편이 좋다. 잠금장치가 설치된 바퀴 하나만 빼두고 훔쳐가는 도둑도 있다(앞바퀴가 뒷바퀴보다 훨씬 빠르게 뺄 수 있다. 10초 안쪽이다).

    자전거 등록제·전용 주차장 설치 시급

    자전거 도둑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2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전거 등록제’의 시행이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차주와 차대번호를 등록하고 자전거마다 번호판을 부착하는 방식이다. 중국과 일본 등에서 시행하는 이 제도는 훔친 자전거의 거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절도를 줄이고, 도난 또는 분실당한 자전거도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했지만 아직 전면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유인(有人) 또는 자동 자전거 주차장의 설치다. 주차한 자전거의 관리를 사람 또는 체계화한 자동 시스템이 맡는 체제를 말한다. 일본, 유럽 등의 자전거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용화한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자전거 도둑 걱정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막막하다. 눈앞의 헛것처럼 ‘감마’가 아른거린다. 자전거는 도둑맞았고 출근은 해야 한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 깊은 상실감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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