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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Art & the City

뉴욕 아시아 주간 굽타의 힘 인도미술 상한가 행진

뉴욕 아시아 주간 굽타의 힘 인도미술 상한가 행진

뉴욕 아시아 주간 굽타의 힘 인도미술 상한가 행진

수보드 굽타의 유화작품 ‘Steal 2’

‘뉴욕의 가을’은 센트럴파크 근처에서 낭만적으로 물들기도 하지만, 실은 경매장에서 치열하게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미술품 경매회사들은 봄가을에 주요 세일을 하는데 각종 경매기록은 가을 세일에서 많이 세워지기 때문이죠. 이번 가을 세일은 아시아 주간으로 시작한다는 소식에 빠른 걸음으로 맨해튼 5번가와 49가 사이에 있는 크리스티 경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시아 주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은 인도를 비롯한 남부아시아 지역 미술의 세일이었습니다. 모두 세 개의 세일이 진행된 고미술 분야의 경우 293점의 작품 중 157점이 낙찰됐고, 낙찰총액은 1414만6688달러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습니다. 바로 이어진 인도와 남부아시아의 근현대 미술에서는 모두 126점이 선보인 가운데 84점이 낙찰됐고, 낙찰총액은 1263만4375달러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 열린 세일이나 올해 초 런던에서 열린 세일보다 200만 달러 이상 성장한 액수이니, 인도 근현대 미술에 대한 세계인들의 수요가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제가 이렇게 숫자를 나열한 이유는 이번 세일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 메릴린치 매각, AIG의 미국정부 구제금융 신청 등 세계를 강타한 금융불안과 때마침 겹쳤기 때문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세일에 숨가빴을 인도미술 스페셜리스트인 디판자나 클라인 씨에게 세일 결과에 만족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만족이요? 세일이 끝나면 결과보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죠.(웃음) 경기침체에도 저희는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컬렉터들은 경기에 그다지 좌우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도미술의 특징은 지역적 특성이 강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성이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국적에 상관없이 작품에 공감하게 되는데,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데 인도 작가들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번 인도 근현대 미술 세일의 슈퍼스타는 누구일까요? 1964년생, 인도의 작은 마을 비하르(Bihar) 출신인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를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번 세일에 내놓은 4점이 모두 낙찰된 것은 물론 유화작품 Steal 2(2007)가 낙찰가 116만5500달러로 근현대 부문에서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조각작품 Miter(2007)도 예상액을 웃도는 102만2500달러로 낙찰됐습니다.

뉴욕 아시아 주간 굽타의 힘 인도미술 상한가 행진

조각작품 ‘Miter’(왼) 와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인도미술 스페셜리스트인 디판자나 클라인 씨.

이제 작품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두 작품은 멀리서도 번쩍번쩍 광이 납니다. 가까이서 보면 모두 스테인리스스틸 주방용품을 소재로 했다는 걸 알게 되죠. Steal 2가 이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Miter는 실제 오브제들을 치밀하게 붙여놓았죠. 인도에서는 스테인리스스틸 주방용품이 식구 많은 중산층의 상징이자, 신혼부부의 변변치 않은 혼수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원히 녹슬지 않을 중산층의 실용주의는 하류층에게는 빛나는 꿈입니다. 음식을 가득 담을 수 있는 가능성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스테인리스스틸 그릇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텅 비어 있어 금방이라도 쨍강쨍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질 것 같습니다.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 경제의 양극단을 보여주는 듯하네요. 고속성장과 그에 따른 소비지상주의, 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극빈층의 굶주림. 극사실주의적 화면에서도 굽타는 푸른색 물감을 광택 나는 그릇들 위로 일부러 줄줄 흐르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현실 사이로 피 흘리는 또 다른 현실이 보입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조각작품도 자세히 보면 오브제들이 여기저기 서로 긁혀 흠집이 가득합니다.



뉴욕 아시아 주간 굽타의 힘 인도미술 상한가 행진

MBC 아나운서·‘서늘한 미인’ ‘예술가의 방’ 저자· 뉴욕 크리스티 대학원 예술학 석사과정 중

인도인들에게 부엌은 성소(聖所)입니다. 자신이 믿는 신을 모시는 곳이자, 신을 위한 제기를 보관하는 곳이기에 집 안 어느 곳보다 성스러운 마음으로 출입한다고 합니다. 부엌에서 신을 벗어야 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굽타는 마치 도매상처럼 그릇가게에서 한꺼번에 대량구매한 스테인리스스틸 그릇으로 오늘날의 성소를 재현합니다. 어쩌면 화려한 발리우드(인도영화), 산업화·세계화에 걸맞은, 새로운 신이 안주하기에는 편안한 곳일지도 모르겠군요. 인도인들은 새로운 성소에서 어떤 기도를 올릴까요?

그 흔한 스테인리스스틸 그릇 때문에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세요? 성속을 넘나들며 인도 가정의 살림살이부터 이젠 비슷해진 세계화의 풍경, 사회계층 간 갈등 그리고 인도의 고유한 지역성이 세계미술시장에서 어떻게 소비될 수 있는지까지…. 굽타의 작품 앞에 서면 더 멀리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굽타의 힘이고 오늘날 인도미술의 공통분모입니다. 뉴욕의 가을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주간동아 2008.09.30 654호 (p78~79)

  •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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