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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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벽에 막힌 비극적 러브스토리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미스트리스’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8-08-04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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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의 벽에 막힌 비극적 러브스토리

    ‘미스트리스’의 두 주인공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와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의 격정적인 러브신.

    보통 연애과정에서 열정은 가장 짧게 지속되는 감정이다. 이 감정을 위해 심지어 연인들은 목숨까지 바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열정은 증오로 끝난다. 그렇다면 거꾸로 증오에서 시작해 열정으로 번진 연애담은 어떠한가.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누구의 인정을 바라지도 않았던, 10년이란 세월 동안 산전수전을 함께한 연인들. 카트린 브레야의 ‘늙은 정부(미스트리스)’는 바로 열정과 광기, 사랑과 증오를 반복해온 한 귀족청년과 무희의 비극적인 연애 연대기다.

    1835년 프랑스 파리,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는 사교계의 ‘꽃미남’으로 뭇 여성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정부는 10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온 스페인 출신 무희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 마리니는 벨리니의 영국인 남편과 결투를 벌여 사경을 헤맸는가 하면, 알제리까지 가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을 함께해왔다. 그리고 이제 둘은 서로에 대한 연민과 무심하게 살을 섞는 나날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귀족청년과 무희 10년간 사랑과 증오 반복

    어렵사리 귀족처녀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키다)를 유혹한 마리니는 그녀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마침내 벨리니에게 이별을 고한다. 결혼식 전날 에르망갸드의 할머니 앞에서 벨리니와의 관계를 털어놓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청년. 꽃 같은 청년에게 매혹된 할머니의 호의 덕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벨리니를 피해 해안가 마을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행복한 나날도 잠시, 벨리니가 마리니를 찾아오면서 부부의 행복은 위태로워지는데….

    1835년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호사스런 저택에서 두 귀족이 커피와 케이크를 맛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나치게 길다 싶을 정도로 묘사된 이 첫 장면과 함께 “1835년 2월 파리, 악마적 후작부인과 호색가 발몽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즐겨 읽던 시절”이란 자막을 곰곰이 되새겨보자. 영화 ‘위험한 관계’가 정성 들여 아침 화장을 시작하는 두 귀족의 일상으로 시작됐다면, ‘미스트리스’는 이러한 귀족의 일상을 ‘먹는다’는 좀더 직접적인 욕망의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즉 ‘위험한 관계’와 ‘미스트리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샴쌍둥이처럼 상통하며, 프랑스 귀족사회에 은밀한 냉소를 보낸다.



    이 영화에서 성욕과 식욕의 관계처럼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벨리니와 마리니를 묶는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마리니에게 적대감을 표현하던 벨리니는 그의 진심을 깨닫자, 아이스크림을 핥았던 그 혀로 남편과의 결투에서 사경을 헤매는 마리니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핥는다. 그야말로 둘의 관계는 타액, 혈액, 정액이 뒤섞인 삶 그 자체다.

    그렇기에 마리니에게 벨리니가 아무리 늙은 정부라 할지라도, 두 사람은 정숙하고 고귀한 에르망갸드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세월의 두께와 절절 끓어넘치는 정한을 공유하고 있다. 벨리니는 부유한 영국인 남편을 버리고 고급 창녀가 됐고, 마리니는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을 사랑해온 벨리니를 삶에서 떼어낼 수 없다.

    극단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명성이 높은 카트린 브레야 감독은 이번에는 벌거벗은 알몸 대신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상류사회의 표면을 응시함으로써, 그들의 속물성과 그들이 사랑이라 불렀던 감정들이 얼마나 쉽게 타락하고 변질될 수 있는지에 대해 건조한 시선을 보낸다. 사실 이야기야 흔하디흔한 치정담이지만, 감독은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방식으로 인물들의 복합적인 심리변화와 순간적인 감정의 뉘앙스를 정교하게 잡아낸다.

    특히 영화는 독특하게도 에르망갸드 할머니 앞에서 마리니의 시선으로 벨리니와의 관계를 회상하는 액자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미 과거가 돼버린 그들의 관계는, 그러나 현재에도 펄펄 끓는 열정의 우물 자체다. 비록 현재의 마리니는 벨리니를 제쳐두고 뭇 여자를 희롱하며 벨리니의 집을 들락날락하지만, 알제리에 살던 시절 마리니와 벨리니는 자신의 아이가 전갈에 물려 죽자 아이의 주검 앞에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억지로라도 사랑을 나누려 했던 과거가 있다. 밑바닥의 슬픔을 내동댕이치며 절규하는 감정들이 사막 한가운데서 샘솟는 유전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차라리 그 총으로 나를 쏘라고 절규하는 벨리니의 처절함은 상류사회의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진정성의 힘으로 마리니의 마음을 꿰뚫는다. 그들은 한때 같은 감정의 우물을 나눠 썼던 것이다.

    아르젠토의 퇴폐적 아름다움 연기 신들린 듯

    신분의 벽에 막힌 비극적 러브스토리

    마리니와 결혼하는 귀족처녀 에르망갸드는 늘 흰색 옷을 입고 있다. 그녀의 옷 색깔처럼 이들의 결혼생활도 무채색에 가깝다.

    브레야 감독은 마리니와 벨리니 커플의 애증 연쇄반응을 사막, 전갈, 불꽃, 호랑이의 깔개 등 시각적 이미지로 도드라지게 만든다. 이에 반해 늘 흰색 옷을 입는 에르망갸드와 마리니의 결혼생활은 무채색에 가깝다. 최대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자제하고, 단순한 화면짜기와 시적인 이미지만으로도 감독은 은밀한 관계에 내포된 오래된 기억과 팽팽한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조율한다.

    영화에서 이 모든 걸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이탈리아 호러의 거장 아리오 아르젠토의 딸인 아시아 아르젠토의 눈빛과 몸짓이다. 고혹적이고 격정적인 팜므파탈의 아우라를 내뿜는 그녀는 벨리니를 신들린 듯 연기한다. 여기에 이지적인 느낌의 록산느 메스키다와 그리스 조각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후아드 에이트 아투의 연기도 근사하다. 단언컨대 감독이기에 앞서 한 여성으로서 브레야는 후아드 에이트 아투라는 유약한 미소년에게 매혹된 것이 틀림없다. 남자 주인공을 잡아내는 카메라의 클로즈업이 심상치 않게 미학적이다.

    결국 세월이 여전사를 길들인 것일까. 전투적이고 도발적이었던 카트린 브레야의 급진성은 이제 정통 사극의 세계에서 좀더 차분하고 지긋해진 것 같다. 그가 천착했던 성과 계급의 문제는 ‘로망스 X’ ‘팻걸’에서 여성들의 직설적인 성적 오디세이 형식으로 탐구돼왔지만, 이제는 거울 앞에 돌아온 누이처럼 강도와 비유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보너스. 이 영화는 브레야 감독이 고백했지만, 로렌초 로토의 ‘젊은 남자의 초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지옥의 해부’의 여주인공 아미라 카사르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영화를 찬찬히 보면서 둘 모두를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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