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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21) 후춘화(胡春華)

최연소 승진 퍼레이드‘리틀 후진타오’

27세 부청장급, 29세 청장급, 43세 장관급 올라 … 후 주석 신임 각별

최연소 승진 퍼레이드‘리틀 후진타오’

최연소 승진 퍼레이드‘리틀 후진타오’

후춘화(胡春華)

6세대 선두로 나선 리틀 후진타오(胡錦濤).’ 올해 4월 15일 열린 허베이(河北)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궈겅마오(郭庚茂) 성장 후임으로 대리성장에 임명된 후춘화(胡春華·45·사진) 전 허베이성 부서기를 일컫는 말이다.

2006년 11월 중국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에 취임한 후춘화는 2008년 4월1일 허베이성 부서기에 임명된 데 이어 보름 만에 대리성장에 올랐다. 이 초고속 승진으로 후 성장은 전국 31개 성장 가운데 가장 젊은 성장이 됐다.

사실 ‘최연소 기록’은 그의 장기 중 하나다. 1990년 2월 만 27세도 안 된 나이에 부청장급인 공청단 시짱(西藏)자치구 부서기에 올랐다. 1992년엔 만 29세 나이로 청장급인 시짱자치구 공청단 서기가 됐다. 1997년 12월엔 34세로 부부장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에 임명됐다. 직급상 모두 최연소 기록이었다. 2006년 11월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임명됐을 때도 최연소 부장(장관)급이었다.

후 성장이 태어난 후베이(湖北)성 우펑(五峰)현은 평균 해발고도 1500m의 산악지역으로 주변 모두가 소수민족인 투자(土家)족의 자치구역이다. 벽촌 중 벽촌으로 외부와는 사실상 단절된 채 사는 지역이다. 그 역시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무신은커녕 헝겊신도 없어 짚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4km와 6.5km 떨어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해진 짚신만 한 무더기다. 당시 그의 발바닥엔 동전 굵기의 굳은살이 항상 박혀 있었다.

벽촌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 … 고향서 베이징대 첫 입학생 기록



그러나 이런 궁벽한 생활은 그를 좌절시키기는커녕 그의 의지를 더욱 강인하게 해줬다. 학교 성적도 항상 1위였다. 대학 입시가 부활한 지 3년째이던 1979년 여름 그는 우펑현 수석으로 베이징(北京)대 중문과에 합격했다. 우펑현에서 베이징대 입학생이 처음 배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학비는 물론 베이징에 올라갈 여비조차 없었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대학 입학 직전 여름방학 내내 수력발전소 공사장에서 강모래를 옮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한 달 넘는 막노동으로 그가 번 돈은 100위안. 당시로선 큰돈이었다. 공사판에서 번 돈과 아버지가 친인척에게 꾼 돈으로 겨우 학비와 여비를 마련해 베이징에 올라왔다. 16세 어린 나이였던 그는 학교에서 키가 가장 작았다. 하지만 성적은 항상 수위를 유지해 졸업할 때 ‘우수졸업생’ 상장을 받았다.

탁월한 성적 때문에 당초 그는 베이징에 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갈 자리도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벽촌오지인 티베트 근무를 자원했다. 1983년 7월18일 졸업식에서 그는 다른 동료 졸업생 2명과 함께 티베트로 가는 소회를 발표했다.

“중국은 여러 민족이 사는 국가입니다.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은 전 국토의 60%에 이릅니다. 제 고향도 소수민족 자치지역입니다. 만약 개혁개방과 현대화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면 저 역시 현재 외부와 격리된 산간오지에서 밭을 갈고 농사를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족(漢族)의 현대화는 중화민족의 현대화도 아니요, 중국의 현대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자원한 티베트에서 19년 근무 … 구석구석 오가며 주민생활 챙겨

1983년 8월 티베트에 도착한 그는 공청단 시짱자치구위원회 조직부 간부에서 시작해 시짱청년보와 시짱호텔 근무를 거쳐 시짱자치구의 지방과 중앙에서 무려 19년을 근무했다. 보통 중앙의 요직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오지 근무 경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19년간 티베트의 7개 지급(地級) 시 가운데 6개를 현장 시찰했고 티베트의 75개 현·시 가운데 50개를 누비고 다녔다.

해발고도 3500~5000m에 이르는 시짱자치구 가운데서도 가장 오지는 바로 중국에서 유일하게 자동차 도로가 없는 모퉈(墨脫)현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 갔다 오는 데만 15일이 걸리는 이곳을 직접 방문해 현지인들의 생활을 살펴봤다.

최연소 승진 퍼레이드‘리틀 후진타오’

티베트 시짱자치구의 초원. 후춘화 성장은 무려 19년간 시짱자치구에 근무했으며 한족임에도 티베트어가 능통하다.

사람들은 그를 ‘완전한 티베트인’이라고 부른다. 혈통만 한족이지 티베트어에 능통하고 티베트 춤을 잘 추며 칭커주(靑·#53883;酒)로 불리는 티베트 술도 잘 마신다. 이처럼 오지에서 묻혀 살던 그는 2006년 말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발탁되면서 중앙정계로 진출했다.

그가 티베트에서 중앙정계로 진출해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후 주석과 그의 인연은 후 주석이 1988년 시짱자치구 서기로 옮기면서부터다. 후 주석은 당시 시짱자치구 공청단 부서기이던 그를 눈여겨봤고, 침착하고 총명하면서도 일처리 능력이 뛰어난 그를 점찍어뒀다.

1992년 10월 시짱자치구 서기를 그만두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올라간 후 주석은 직접 전화를 걸어 시짱자치구의 공청단 서기에 후춘화를 앉힐 것을 부탁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후춘화는 그해 12월 공청단 시짱자치구 서기로 발탁됐다. 최근의 초고속 승진도 후 주석과의 인연 덕분이다.

그는 6세대로 분류되지만 사실 5세대로 분류되는 리커창(李克强)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나 리위안차오(李源潮) 정치국 위원 겸 중앙조직부 부장과 보시라이(薄熙來) 정치국 위원 겸 충칭(重慶)시 서기와 대학 졸업이나 사회 입문 시기는 별 차이가 없다. 리위안차오와 보시라이 위원은 각각 77학번이고 리커창 상무위원 역시 78학번으로 79학번인 그와 1, 2년 차이다. 이는 문화대혁명 기간 폐지됐던 대학입시가 77년부터 부활했기 때문이다.

후 성장의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은 이명박 한국 대통령과 비슷하고, 사회 입문 뒤의 경력은 후진타오 주석과 흡사하다. 산간 오지인 티베트와 공청단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나 성격도 비슷하다. 후 성장은 “후 주석과 함께 근무한 31개월 동안 총명하고 능력 있는 일처리 솜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6세대 선두주자로는 그와 함께 저우창(周强) 후난(湖南) 성장과 쑨정차이(孫政才) 국무원 농업부장 등이 있다. ‘후진타오의 분신’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는 그가 2022년 6세대 지도부가 출범할 때 어떤 자리에 오를지 주목된다.

후춘화 프로필

·한족(漢族)
·1963년 4월생
·후베이(湖北)성 우펑(五峰)현 출생
·1983년 4월 공산당 입당
·1983년 7월 베이징(北京)대 중문과 졸업

1983. 8~1985. 1 중국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공청단)


 시짱(西藏)자치구위원회 조직부 간부
1985. 1~1985. 11 시짱청년보 근무
1985. 11~1986. 8 시짱호텔 당위(黨委)위원, 인사부 부주임
1986. 8~1987. 8 시짱호텔 당위 부서기, 인사부 경리
1987. 8~1990. 2 공청단 시짱자치구위원회 부서기(처장급)
1990. 2~1992. 3 공청단 시짱자치구위원회 부서기(부청장급)
1992. 3~1992. 12 시짱자치구 린즈(林芝)지구 행정공서(行政公署)


 부전원(副專員·부주임)
1992. 12~1995. 7 공청단 시짱자치구위원회 서기
1995. 7~1997. 11 시짱자치구 난산 지위(南山地委) 부서기,


 행정공서 전원(專員·주임 해당)
1996. 9~1997. 7 중앙당교 훈련부에서 연수
1997. 11~1997. 12 시짱자치구 난산 지위 부서기
1997. 12~2001. 7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겸 전국청년 부주석
1996. 9~1999. 7 중앙당교 연구생원 재직연구생반에서 세계경제 전공
2001. 7~2003. 11 시짱자치구 당위 상위 비서장 겸


 자치구 직속기관 공위(工委) 서기
2003. 11~2005. 3 시짱자치구 당위 부서기, 자치구 상무부주석
2005. 3~2005. 7 시짱자치구 당위 상무부서기, 자치구 상무부주석
2005. 7~2005. 11 시짱자치구 당위 상무부서기, 자치구 상무부주석,


 자치구 당교 교장
2005. 11~2006. 10 시짱자치구 당위 상무부서기, 자치구 당교 교장
2006. 11~2008. 3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2008. 3~2008. 4 허베이(河北)성 성위 위원,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부서기
2008. 4~현재 허베이성 부서기, 대리성장


 제17기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주간동아 2008.05.13 635호 (p56~58)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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