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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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can-do 정신 존경, 쓴소리도 마다 않을 것”

“규제 완화와 개방이 한국 경제 살리는 길 … 경쟁의 고통 있겠지만 많은 사람 혜택”

  •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8-01-23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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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can-do 정신 존경, 쓴소리도 마다 않을 것”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완쪽)과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엘든 공동위원장이 1월5일 두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소속이지만 유일하게 사무실을 지키지 않는 ‘막강 인사’가 있다. 인수위 산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데이비드 엘든(64·사진) 공동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공동위원장에 임명된 지 열흘 만인 1월4일 방한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 관계자들을 만나 향후 활동 계획 등을 상의한 뒤 8일 출국했다. 한 달 일정으로 중국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돌며 외자유치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는 인수위 사무실에 머물지 않고 출국한 데 대해 “내 임무 가운데 하나가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라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게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른 눈의 이 은발 신사는 지난 연말 정가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외국인이 인수위 요직에 발탁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이 당선인의 역점 사업을 다룰 특별기구의 공동 수장을 맡았기 때문.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과 함께 위원장을 맡은 엘든 위원장은 현재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Dubai International Financial Centre) 회장을 맡고 있는 글로벌 금융 전문가다. 국제 컨설팅 전문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고문, 노블그룹 회장, 홍콩 MTR 이사로 활동하며 전 세계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그가 한국의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요직을 맡은 배경이 흥미롭다.

    1992년 처음 서울을 방문한 뒤 정기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그는 2002년 서울시가 주관한 서울국제경제자문회의(SIBAC) 총회 의장을 맡으면서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당선인과 연을 맺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교유하며 이 당선인의 개방적 금융 마인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1월5일 이 당선인이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큰 도움을 달라”며 국가경쟁력 강화 및 외자유치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당부하자, 엘든 위원장은 “외국인으로서 다른 나라와 한국의 일처리 차이점을 설명하고 한국만의 독특한 점이 무엇인지 말해주겠다. 그것이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 당선인에 대해 우호적 시각을 견지하며 “이 당선인은 시장 개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의 비전과 추동력, ‘캔두(can-do)’ 정신을 존중한다. 그도 나를 존중하며, 내가 그를 기쁘게 하는 말만 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다른 견해가 있으면 그것을 그에게 전달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실용주의를 모토로 △성장률 연 7%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진입을 뜻하는 ‘747 공약’을 내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금융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1월9일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당선인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금융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엘든 위원장을 이 맥락에서 활용하겠다는 뜻도 갖고 있다.

    엘든 위원장은 이 당선인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까. 엘든 위원장은 여러 차례 ‘규제 완화’와 ‘개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국 경제를 위한 긴급 처방으로 제시했다. 이런 처방이 한국의 경쟁력 강화와 금융 및 산업 선진국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 엘든 위원장과의 수차례에 걸친 e메일 인터뷰와 추가 취재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짚어봤다.

    “중국 다음의 아시아 투자처에 한국 포함돼야”

    -외국인이 인수위에서 주요 임무를 맡은 건 이례적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반(反)외국인 정서가 짙다.

    “많은 나라가 자국민을 통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이해할 만한 일이다. 내가 어떤 가치 있는 것을 한국에 가져다줄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한국인이 많다고 본다. 내가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또 내 의견만 중요한 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달라. 다만 나는 여러 나라에서 일하며 살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얻은 나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한국에 전달하고 싶다. 한국민을 등지는 게 아니라 한국민과 협력해서 일하는 데 목표를 두고 싶다.”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유가 식고 있는 외국 투자 열기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나.

    “한 사람을 임명했다고 투자 열기가 완전히 되살아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인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를 원한다면 그들을 진심으로 환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가 성장한 대부분의 나라는 경제를 개방하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했다. 따라서 외국인 투자가 하락한다는 것은 경제성장이 느려진다는 의미다. 규제 철폐가 전적으로 바람직한 조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규제를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으로 하고, 정말로 ‘공정한 장(場)’을 창출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외자 유치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갖고 있나.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은 중국을 지켜봐왔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다른 아시아 투자처를 찾을 때 한국이 거기에 포함돼야 한다. 투자자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 환경이 개방되고 투명한지, 경제활동이 활발한지,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는지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는 한국이 그런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국가경쟁력강화특위는 이런 측면들을 살펴볼 것이다. 한국에 대한 투자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을 모색할 것이다.”

    -‘경쟁력’이라는 말에 포인트를 둔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이다. 한국은 금융 등 국제경쟁력에서 뒤처진 부문이 많다. 그런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경쟁 그 자체다. 경쟁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삼성과 LG가 자신들이 선택한 시장에서 하룻밤 사이에 성공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고통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가.

    “고통은 여러 형태로 올 수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또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뒤처져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해도 대다수에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금융산업 개혁이 투자 유치와 금융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제조업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나.

    “개방과 경쟁력 시스템은 제조업체가 돈과 서비스를 더 값싸고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경제는 농업, 제조업을 거쳐 서비스업 분야로 진화해 간다. 서비스 경제는 성공적인 금융센터를 포함할 테고,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도 줄어들 것이다.”

    -이 당선인은 한국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의 금융 허브 모델은 어디인가.

    “한국이 독창적인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창조’는 다른 금융센터에서 최상의 경험들을 취해야만 가능하다. 두바이가 특별한 비교대상이 된다고 본다.”

    -한국이 두바이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떤 요소들인가.

    “두바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아주 많다. 물론 두바이와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차이점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두바이가 ‘아주, 아주’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바이는 왕실 비전과 리더십에 의해 개발되고 있고, 인구 140만명 가운데 80~85%가 외국인이다.

    두바이가 성공한 것은 경제가 열려 있고, 투명하고 다양한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또한 물류 허브로서 입지를 굳힌 뒤 금융 허브로 눈을 돌려 추진했다. 두바이에 진출한 금융기관에는 세율 0%에 가까운 세제 혜택을 줬다. 그뿐 아니라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규제 당국이 있었다.”

    “물류·금융 허브 두바이에서 배울 교훈 많아”

    엘든 위원장은 이 당선인과 출신 배경이나 성장과정, 성격, 일처리 방식, 비전 등이 비슷하다. 스코틀랜드 시골의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하급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가 케냐에서 전사한 탓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어 왕립군사학교를 중퇴한 뒤 잡일을 치다꺼리하는 직원으로 시작해 세계적 은행의 CEO가 됐다. 즉, 19세 때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중동 홍콩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한 끝에 2003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올해의 홍콩 사업가’로도 선정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35세에 현대건설 사장이 된 뒤 대통령에 오른 이 당선인도 엘든의 이런 성장배경에 동류의식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엘든 위원장에겐 2남1녀가 있으며, 모두 마케팅과 PR 분야에서 일한다. 장남(30)과 딸(25)은 홍콩에, 차남(28)은 베이징에 산다. 두 아들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만다린), 딸은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하다. 아내는 페루 출신으로 남아프리카계이며, 이들은 1973년 두바이에서 처음 만나 2년 뒤 결혼했다.

    만나면 주로 스페인어로 대화한다는 이 가족은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여러 도시를 삶의 근거로 삼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의 전형이다. 엘든 위원장의 개방적 사고의 뿌리 또한 가족이 아닐까.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세계를 주유하고 있는 엘든 위원장은 한국 투자유치 활동을 벌인 뒤 2월 대통령 취임식 때 다시 방한할 예정이다. 그가 돌아와 펴놓을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그리고 새 정부에서 그가 맡을 다음 역할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때는 서울의 사무실을 지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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