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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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부터 청포도 재배 입 안에 퍼지는 분명한 ‘신맛’

  • 아트옥션 대표·고려대 강사

    입력2007-10-29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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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로마부터 청포도 재배 입 안에 퍼지는 분명한 ‘신맛’
    마르케(Marche)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 동해안에 자리한 지역이다. 산악과 해안이 발달한 지형으로 보나 반도에 자리잡은 위치로 보나 우리나라의 강원도와 비슷하다. 로마 교황령의 변방지란 어원을 가진 데다, 와인과 관광 면에서만 보더라도 마르케는 인근 지방인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에밀리아로마냐 또는 아부르초에 가려 있다. 이런 불리한 형국을 극복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와인이다.

    마르케의 또 다른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재배했다는 청포도 품종 베르디키오(Verdicchio)다. ‘푸르다’는 뜻의 ‘베르데’에서 비롯된 말로 어원처럼 포도에 푸른빛이 돈다. 이 베르디키오의 고향이 바로 마르케다. 베르디키오는 신맛이 강한 편이라 상쾌한 화이트와인을 만들 수 있고, 스파클링 와인인 스푸만테 양조에도 쓰인다. 분명한 신맛으로 해산물에 잘 어울리며 다양한 스타일의 맛을 선사한다.

    양조장에 따라서는 베르디키오를 늦게 수확해 산도를 낮추고 당도를 높여 매력적인 화이트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굽이굽이 펼쳐진 언덕에 아침마다 눈처럼 떠도는 물안개도 와인 양조에 활용된다. 물안개 속에서 잘 생성되는 보트리티스균은 베르디키오의 껍질을 갉아 수분을 짜내는 효과를 내는데, 양조장은 이런 균에 감염된 포도알을 골라 아로마가 풍성한 와인을 만든다. 또한 포도를 제때 따서 곧바로 양조하지 않고, 별실에서 건조시켜 특유의 너트 향이 풍부한 파시토(Passito)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해산물과 잘 어울려 … 10~15년 숙성력 탁월

    화이트와인의 숙성력은 포도의 산도가 결정한다. 베르디키오는 이런 면에서 숙성력이 좋은 와인이다. 빈티지가 좋기만 하면 10년, 15년 정도는 얼마든지 묵힐 수 있다. 이런 숙성력을 가진 와인은 이 지방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다.



    점심나절에 시켜 먹은 1995년, 97년산 베르디키오도 숙성력이 빼어났다. 몇 년 되지 않은 ‘어린’ 베르디키오에서는 매운 향기, 풀 향기, 복숭아 향기, 시트러스 향이 느껴지며 뒷맛은 약간 쓴맛을 가진 아몬드 맛이 난다. 잘 숙성된 베르디키오는 날카로우면서도 둥근 질감이 부드럽게 입 안을 감싸고, 묵은내 속에 잘 익은 사과즙 향기가 감돈다.

    베르디키오는 원산지에 따라 두 가지, 즉 베르디키오 데이 카스텔로 디 예지와 베르디키오 디 마텔리카로 나뉜다. 다소 긴 이름의 전자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후자는 생산 면적이 좁다. 마을을 관통하는 에지노 강에서 이름이 유래한 중세 마을 예지(Jesi)에서 베르디키오를 양조하는 몬테스키아보(Monte Schiavo)는 양조장 위치대로 전자를 생산한다.

    그 와인을 수확 연도별로 시음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의 와인을 차례로 마셨다. 10년 가까이 묵은 98년 빈티지를 한 모금 입에 넣어보고 뱉었는데, 혓바닥에 화이트와인의 생명인 산미가 남았다. 산도가 갓 출시된 일반 화이트와인과 다를 게 없었다.

    마르케 와인을 세계적 와인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애쓰는 지역 양조협회(Assivip)의 잔카를로 로시는 “마르케는 미술의 라파엘로, 음악의 로시니, 교육의 몬테소리가 태어난 곳이며 베르디키오는 마르케의 산과 바다가 잉태한 자연스런 와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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