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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21년째 한결같이 연구에 목숨 건 권철신 성균관대 교수

학기 중엔 ‘입실수도’ 방학 땐 ‘지옥 세미나’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학기 중엔 ‘입실수도’ 방학 땐 ‘지옥 세미나’

학기 중엔 ‘입실수도’ 방학 땐 ‘지옥 세미나’
하마터면 ‘오보(誤報)’할 뻔했다.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이 권철신(63·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뿐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3시간 남짓 권 교수와 인터뷰를 한 뒤 주차장으로 향하려는데, 그가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개발공학 석·박사 과정에 있는 제자 6명의 연구실로 안내했다. “저기, 저 끝자리가 박준호(47) 박사 자립니다. 책상 옆에 침대 보이죠? 그게 박 박사 침실이에요.”

권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니, 연구실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 교수님 말고 또 있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또라니요? 이 연구실에 기거하는 학생들과 다른 방에 있는 두 명의 학생까지 모두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입산수도(入山修道)’처럼 학문을 제대로 배우고 연구하기 위해 이른바 ‘입실수도(入室修道)’를 하고 있는 사람이 권 교수를 포함해 9명이나 된다. 이들은 토요일 오후 집에 갔다가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연구실로 되돌아온다.



권 교수의 침실은 연구실에 있는 소파다. 여름엔 얇은 이불을 덮고 겨울엔 슬리핑백이 이불 대용이다. 책상은 식탁 겸용. 그리 넓지 않은 연구실 한쪽에 놓인 냉장고에는 부인이 싸준 일주일치 반찬과 밥이 들어 있고, 냉장고 위엔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다. 영락없이 고향 떠나 학업에 열중하는 자취생의 모습이다.

권 교수가 이런 생활을 자처한 것은 198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 초빙교수로 3년간 다녀온 직후였다. 그것이 올해로 21년째. 그는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시간을 쪼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당장 출퇴근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줄이려고 연구실에서만 생활했다. 덤으로 생긴 시간은 ‘연구’에 쏟아부었다. ‘입실수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권 교수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며 입실수도를 권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도교수가 연구실에서 ‘숙식학(宿食學)’을 하자 일찍 귀가하기 힘들었던 제자들도 하나 둘 밤늦도록 연구에 몰두했고, 그 결과 연구실에서 잠자는 경우가 늘어났다. 제자들이 자연스럽게 권 교수의 ‘연구방식’에 동참한 것이다. 권 교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연구실 책상에서 이불 대신 슬리핑백을 이용해 잠을 청한다. 성균관대 학생들 사이에 이들은 ‘슬리핑백 연구집단’으로 불린다.

시간 아끼려고 연구실서 숙식… 제자들도 스승 뜻 좇아

학기 중엔 ‘입실수도’ 방학 땐 ‘지옥 세미나’

‘한계 돌파 지옥 세미나’ 모습.

권 교수의 남다른 교육방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4주일에 걸쳐 ‘하계집중세미나’를 연다. 이 세미나의 별칭은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한계 돌파 지옥 세미나’다. 군대생활보다 혹독하다고 해서 학생들 스스로 붙인 것이다. 올해로 21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세미나는 세계 학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연구과정이다.

7월30일 시작된 올해 ‘지옥 세미나’에서는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공기초와 심화 세미나를 비롯해 영어와 일어, 심신강화 훈련까지 소화해야 한다. 하루 16시간씩 초고강도 세미나에 참석하고 어학공부에 매달린 학생들의 몸은 그야말로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는다. 그러나 피곤하다고 곧장 잠자리에 들 수도 없다. 다음 날 예정된 세미나를 준비하려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떠야 한다.

세미나 기간에 학생들은 ‘미친 듯이’ 공부에 열중한다. 학기 중의 ‘입실수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지옥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게 이번 하계집중세미나에 참가한 학부 및 석·박사 과정 학생 12명의 공통된 느낌이다. ‘지옥행’을 불사하고도 세미나에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원 졸업자로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이혜정(28) 씨는 “과정은 지옥이 따로 없지만, 끝나고 나면 마치 천국에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학원 두 학기에 해당하는 과정을 한 달 남짓한 하계집중세미나를 통해 소화하고 나면 학생들 스스로 전문지식이 충전됐음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 맛에 이끌려 지옥코스를 감내한다는 것.

이들이 피땀 흘려 공부하는 개발공학이란,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 등 연구개발(R·D) 전략관리 시스템과 R·D 프로젝트 전개 시스템을 공학적으로 설계하는 학문이다. 기술자에게 포괄적인 경영지식을 주입하는 기술경영과는 ‘족보’가 다르다. 주먹구구식으로 정부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프로젝트 하나라도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시스템화해 높은 효율을 얻는 것이 개발공학의 목적이다.

권 교수는 그동안 연구개발공학 분야에서 154편의 논문을 발표해 세계 최다 연구성과를 기록했다.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연구에 매달린 결과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 개발공학 연구와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6월11일엔 한국교직원공제회(이사장 김평수)가 제정하고 교육인적자원부가 후원하는 ‘제3회 한국교육대상’의 대학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입실수도’와 지옥세미나 등 권 교수만의 독특한 교수법이 수상에 기여했다.

“사실 지옥세미나에 꼭 참가해야 할 사람은 각종 정책 입안자와 기업의 최고기술경영자(CTO)들입니다. 개발공학으로 무장하지 않은 국가와 기업은 성장과 발전이 더딥니다. 우리나라의 인재와 기술 발전은 ‘일류’인 데 반해 이들을 관리하는 기술경영자들은 ‘이류, 삼류’에 불과해요.”

권 교수는 “R·D 분야의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한 국가와 기업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국가와 기업 발전의 키(key)가 되는 R·D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퇴직을 몇 년 앞둔 권 교수는 연구실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자신이 교단을 떠나면 ‘입실수도’의 명맥이 계속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우리나라도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政經塾·일본 마쓰시타전기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우수한 정치가와 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해 1980년 설립. 22∼35세 젊은이들이 5년간 수업료 없이 생활비와 연구활동비를 지원받으며 정치와 경제를 현장 중심으로 공부하는 곳) 같은 기관이 뜻있는 인물에 의해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우수한 인재 양성이 국가와 기업의 초석이라 믿기에 혹독한 과정을 거쳐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는 권 교수의 소박한 꿈이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간동아 2007.08.14 598호 (p58~59)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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