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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발렌타인의 사회학

酒黨 울리고 웃긴 ‘양주의 추억’

1970년대 ‘조니 워커’ 눈으로 먹던 술 … 권력자와 스타 마케팅 통해 위스키 성공 신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酒黨 울리고 웃긴 ‘양주의 추억’

酒黨 울리고 웃긴 ‘양주의 추억’
보통 사람들에게 ‘양주의 추억’은 1970년대 ‘단스’(그릇장이라는 뜻의 일본말)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빨간색 조니 워커로부터 시작한다. 해외 관광이 불가능하던 시절, ‘조니 워커’는 외국을 다녀온 친지나 지인이 큰맘 먹고 사다준 선물이거나 뇌물이었다. 조니 워커는 나름의 권력 과시였으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취할 만한 재산이었다.

‘조니 워커’의 모던한 사각 병도 눈을 혹하게 했지만, 모자를 쓰고 긴 장화를 신은 영국 신사가 지팡이를 들고 힘차게 걸어가는 그 유명한 라벨 ‘스트라이딩 맨(Striding Man)’은 보통 사람들에겐 서양 문화를 이유 없이 동경하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실제로 100년이 된 ‘조니 워커’의 패키지와 라벨 디자인은 지금도 ‘명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조니 워커는 70년대의 땀과 피를 상징하는 술이다. 위스키, 곧 증류주 ‘spirit’에 성스럽다는 뜻이 있으므로 한국의 조니 워커에 새마을 정신이 담겨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해외 여행은 물론 양주 수입도 금지된 시절이었으므로 집집마다 한 병씩 갖고 있던 조니 워커는 십중팔구 월남전에서 돌아온 병사들이나 중동에서 일한 건설 노동자들의 남루한 가방에서 나온 것이었다.

대한제국 시절 외교관들에 의해 최초 소개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주보, 즉 PX를 통해 미군들이 가장 많이 마시던 서양 술, 즉 조니 워커를 사와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도깨비시장’ 같은 남대문 밀수 시장에 내다 팔았다. 중동 건설 노동자들도 귀국 때 공항 면세점에서 다량의 조니 워커를 사왔다. 조니 워커는 79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할 때 마지막 만찬장에 있었던 술이 ‘시바스 리갈’이었음이 알려지기 전까지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위스키이자 서양 술이었다.

그러나 조니 워커가 우리나라 최초의 양주는 아니었으며, 유일한 위스키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니 워커가 인기를 끌었다는 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호박색의 독주 맛에 빠져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위스키는 대한제국 시절 서구 열강의 외교관들에 의해 소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군 매점을 통해 위스키가 시중에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폭발적 수요에 50년대에는 소주에 색소를 섞은 ‘짝퉁 위스키’인 ‘도라지 위스키’가 인기를 얻었다(이종기, ‘술, 술을 알면 세상이 즐겁다’).

70년대 경제개발 시기, 경제인들은 접대할 곳이 많아졌고, 접대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조니 워커가 ‘접대용’으로는 부담스러웠으므로-오늘날 보통 룸살롱 접대에서 발렌타인 17 대신 국내산 브랜드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76년 이런 수요에 맞춰 나온 것이 백화양조의 ‘조지 드레이크’였다. 78년엔 베리나인이 나와 84년까지 위스키 시장을 독식했는데, ‘조지 드레이크’와 ‘베리나인’은 모두 원액 함량 100% 위스키가 아니라 수입한 위스키 원액에 주정을 섞은 기타 재제주였다. 당시 베리나인의 맛이나 패키지가 발렌타인을 모방했다 하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발렌타인을 선호하는 데는 무의식적 친근함도 작용했을 수 있다.

酒黨 울리고 웃긴 ‘양주의 추억’

우리나라 최초의 위스키 ‘조지 드레이크.

우리나라에서 처음 원액 함량 100% 위스키가 개발된 것은 84년이었다. 86년과 88년 아시아경기대회 및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당시 위스키 3사인 베리나인, 진로 위스키, 오비 씨그램에 ‘국제 규격에 맞는’ 위스키를 개발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6년 주령의 스탠더드급 진로 ‘vip’, 씨그램의 ‘패스포트’와 ‘섬싱스페셜’ 등이었고 진로와 오비(두산)는 운명의 위스키 전쟁을 시작한다.

94년 진로는 12년 이상, 프리미엄급인 ‘임페리얼 12’를 내놓았다. 96년 씨그램은 ‘윈저 프리미어’로 추격하는데, 양사는 당시 700㎖ 한 병이던 세계적 관행을 무시하고 500㎖병을 개발했다. 프리미엄급 양주 가격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스키의 향과 맛을 즐기기보다 ‘취하기 위해’ 스트레이트로 많은 양을 빨리 마시고, ‘폭탄주’를 좋아한다는 것에 착안했다. 그래서 향은 강하지 않고 첫맛이 부드러우면서 목넘김이 좋은 위스키를 블렌딩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한국적 위스키 개발 시대’를 맞은 것이다.

우리나라 슈퍼프리미엄급 위스키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윈저 17을 마스터 블렌딩한 이종기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은 “한국에서 위스키 개발의 원칙은 두 가지다. 맛은 부드러워야 하고 패키지는 고급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발렌타인 17’ 60~70% 한국과 일본서 소비

우리나라 위스키 시장은 분화, 다양화하기보다 더 부드러운 쪽과 더 고급스러운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누가 먼저 고급 시장을 선점하는가가 승패를 결정한다. ‘패스포트’를 믿고 있다 진로가 먼저 프리미엄급 ‘임페리얼 12’를 내놓는 바람에 쓴잔을 마신 씨그램은 진로가 ‘임페리얼 15’를 개발한다는 정보에 2000년 서둘러 ‘윈저 17’을 런칭했다. 진로는 2003년에야 ‘임페리얼 17’을 내놓았는데, 아직도 12년에서는 임페리얼 클래식이, 17년에서는 윈저 17이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국내 위스키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임페리얼 12’는 96년 프리미엄 위스키 판매량 세계 3위, 국내 위스키 시장 점유율 1위 등 국내외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2005년 하반기 양사는 거의 동시에 21년을 내놓았다.

페르노리카 로얄살루트 브랜드 매니저인 이도훈 씨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면서 불경기 중에도 최고가 위스키 시장은 최고급 호텔 바를 중심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내셔널 브랜드 위스키는 91년에야 공식적인 수입이 가능해졌지만 이미 79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 ‘시바스 리갈 12’의 인지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발렌타인 30’이 시중의 화제가 된 상황이었다.

한 주류 전문가는 “조니 워커와 시바스 리갈, 발렌타인은 그 자체로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위스키에 속한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추종자들은 세간에 인기 있던 조니 워커가 미군, 특히 흑인들이 많이 마시는 술이라는 점 때문에 꺼리면서 더 중후한 향의 시바스 리갈을 선호했던 것으로 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이전 통치자들과의 차별을 위해 일본에서 유행하던 최고가의 발렌타인 30을 마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酒黨 울리고 웃긴 ‘양주의 추억’

‘로얄살루트’ 위스키 숙성소.

한 정치인은 “발렌타인은 12, 17(시바스 리갈은 18) 등으로 숫자가 병에 박혀 나오니 가격 차이를 바로 알 수 있다. 접대하는 쪽은 확실하게 생색을 내고, 접대받는 쪽도 12가 아닌 17이 나오면 더 기분이 좋은 것이 발렌타인”이라고 말한다.

국내 위스키 성공 신화에는 권위적인 정치 문화와 권력자에 의한 일종의 스타 마케팅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발렌타인이 한국, 그리고 일본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팔려나가는 발렌타인 17 중 60~70%가 한국과 일본에서 소비”(유호성, 진로JBS)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국 시장의 반응에 ‘감동’한 발렌타인사는 폭탄주를 위한 ‘발렌타인 마스터즈’와 푸른색 도자기병에 금테를 두른 ‘발렌타인 21’을 개발했다.

1827년 농부 조지 발렌타인이 에든버러에 낸 식료품점에서 기원한 위스키 발렌타인은 다른 스카치 위스키와 달리 숙성한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한 뒤 다시 재숙성(marrying)해서 매우 부드러운 맛을 갖는다. 그래서 독주에 약한 일본인들이 먼저 발렌타인을 선호했고, 위스키에 물을 타서 마시는 ‘미즈와리’도 만들어냈다.

酒黨 울리고 웃긴 ‘양주의 추억’

최근 선보인 21년급 위스키 임페리얼 21’.

이에 비하면 세계 판매량 1위를 지키고 있는 조니 워커는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미국적이고 강렬한 향을 가져 한국의 주당들에겐 다소 저항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음식이 서구화하고, 취하기보다 위스키의 향과 맛을 음미하려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이탄(보리를 건조시킬 때 쓰는 석탄) 냄새가 강한 조니 워커 마니아들이 다시 늘어나고 아일랜드산 싱글 몰트(한곳의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만 숙성) 팬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감정 교류, 개인 취향 아닌 공동체 기호

결국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어떤 위스키를 선택하는가는 개인이 결정한 맛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적 음주 문화에 의해서였다. 막걸리가 보여주듯 2차 산업사회까지 술은 작업장의 ‘음식’이었지만, 사회가 고도로 분업화하고 일과 사생활이 분명하게 나뉘어지면 술은 사생활의 영역으로 숨어야 한다.(박재환, ‘술의사회학’) 분업화한 사회에서 누군가 술에 취하면, 전체의 ‘효율적’인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근대화의 물결 속에 작업장과 사적 영역은 갑자기 분리되었고, 작업장에서 감정적 커뮤니케이션은 금지되었는데, 음주는 쉽게 두 영역을 하나로 뒤섞는 매체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빨리 감정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짧은 시간에 취하기를 원했다. 최근까지 술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기호였고, 창조적 일탈의 기회가 됐다. 작위적인 절주 ‘캠페인’은 현 체제를 유지하는 강압적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스카치 위스키의 발전을 초래한 미국의 금주령(1920~33) 시대를 비롯하여 역사상 수많은 금주법들이 결국 폐기된 것은 술을 통한 감정적 일탈을 금지하자, 폭력과 엽기적 범죄가 늘어나 사회의 존립을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영원한 사랑의 속삭임’이라는 발렌타인 광고 문구보다 이태백의 시구가 술의 진실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가.

만고의 시름을 씻어내리려, 연거푸 삼백 항아리의 술을 마신다.(장진주, 이태백)





주간동아 2005.12.27 516호 (p36~38)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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