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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MBC, 날개는 없나

잇따른 사고 최문순 사장 체제 최악의 위기 … 발탁한 국장급 중 4명 교체 실패 증명(?)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추락하는 MBC, 날개는 없나

추락하는 MBC, 날개는 없나

10월4일 국회 문화관광위의 MBC 현황 보고장에 앉아 있는 최문순 사장의 착잡한 모습이 현재의 MBC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최문순호’의 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연구팀에 대한 ‘PD수첩’ 제작진의 ‘협박’ 취재 파문으로 MBC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한 간부가 내뱉은 말이다. 화난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과 시청자들의 MBC 프로그램 외면으로 MBC 내부에서마저 “이러다 회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니 이 간부의 말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최문순 사장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MBC 내부 관계자들은 “최 사장 체제는 처음부터 실패를 예고하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문순 사장 체제의 참담한 결과는 최 사장 스스로 ‘발탁’했던 방송 제작 관련 핵심 국장 5명의 상황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최 사장은 2월25일 취임 직후 실무 사령탑인 국장급 인사에서 전체 21명 가운데 10명을 자신과 입사 연도(1984년)가 같거나 늦은 사람들로 진용을 갖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러나 전체 국장의 43%인 9명을 노조 간부 출신에서 발탁, ‘코드 인사’라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이러다 회사 망하는 것 아니냐”

9개월이 지난 현재 최 사장이 임명한 핵심 제작국장 5명 중 4명이 이미 교체됐다. 여기에 ‘PD수첩’ 파문으로 담당 PD 2명이 대기발령을 받으면서 담당 국장인 최진용 시사교양국장도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신용진 보도국장, 정일윤 보도제작국장, 이은규 드라마국장, 김영희 예능국장 등 최 사장에 의해 발탁된 국장급 간부들이 모두 바뀌게 된다. 이 가운데 정일윤 국장만 보도국장으로 수평이동했다. “국장급은 능력과 평판, 개혁 마인드를 갖춘 인물로 과감히 세대교체했다”는 발탁 당시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비윤리적인 함정 취재, 황우석 교수팀 연구 결과에 대한 검증에 나선 ‘PD수첩’에 대한 옹호 방송과 뒤이은 사과 방송에서 보이는 좌충우돌, 안일한 내부 검증 시스템…. MBC 내부의 문제점이 언론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인터넷에서는 이미 ‘MBC 죽이기’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누리꾼들은 ‘PD수첩’의 광고를 끌어내렸고, MBC의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데스크’ 시청률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MBC 내부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최 사장 체제에 비판적인 관계자들은 “최근의 방송 사고는 최 사장의 리더십이 빚은 예고된 인재”라고 주장한다. 특히 인사의 실패를 언급하는 사람이 많다. 한 관계자는 “최 사장이 취임 이후 행한 개혁 조치라는 게 임금 삭감과 간부의 연소화가 대표적인데, 최 사장 인사가 실패했다는 것은 최 사장이 취임 직후 발탁한 제작 관련 핵심 국장급 간부 5명의 처지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전직 임원도 최 사장의 발탁 인사에 대해 “한창 일할 나이의 간부들은 국장급으로 발탁돼 현장을 떠났고, 현장에 복귀한 과거의 국장급 간부들에게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아 실제 현장에서 뛸 만한 사람들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 임원은 “‘느낌표’를 연출해 호평을 받았던 김영희 전 예능국장만 해도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지 10일 만에 최연소 국장으로 발탁됐는데, 결국 ‘상주 참사’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현업에 복귀했지만 옛날처럼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최 사장은 취임 이후 ‘One MBC, Worldwide MBC’를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MBC 내부에서는 최 사장 취임 이후 적어도 ‘One MBC’ 부분에서는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자, PD, 행정·기술 파트 등 각 부문의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풀어나가지 못함으로써 ‘하나 된 MBC’는 공허한 슬로건이 됐다는 주장이다. 인사 실패에 이어 조직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MBC 정체성 잃은 것이 최근 위기 초래”

특히 보도국 쪽에서는 최 사장 취임 이후 PD 쪽 목소리가 커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12월7일 저녁 뉴스데스크에서 방영된 ‘PD수첩 중단’ 사고만 해도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래는 ‘PD수첩 폐지’로 방송하기로 했으나 시사교양국 쪽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으로 완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중견 기자는 “12월4일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 단호히 ‘PD수첩’ 중단을 결정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나마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발표한 것은 시사교양국 쪽 눈치를 본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보도국 기자들 가운데에는 ‘PD수첩’ 파문 이후 시사교양국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한 중견 기자는 “‘PD수첩’ 파문은 취재에 관한 체계적인 훈련이나 노하우가 없는 PD들이 시사 프로그램에 올인하다 생긴 예고된 사고”라면서 “처음 뉴스데스크가 ‘PD수첩’을 옹호하는 듯한 보도를 한 것은 ‘시사교양국 쪽이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은 결과였다’는 얘기도 있다”고 흥분했다.

◆ 2005년 MBC 대국민 사과 방송 일지



추락하는 MBC, 날개는 없나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월5일 서울 여의도동 MBC 사옥 앞에서 ‘PD수첩’의 황우석 교수팀 취재 과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PD수첩’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중견 기자는 “PD들이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과 같은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제공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사내 발언권이나 파워가 커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는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MBC의 경우 ‘느낌표’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교양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시사교양국 PD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내부에서는 ‘PD수첩’에 대한 동정론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취재 과정의 잘못을 가지고 경쟁 언론이 ‘MBC 죽이기’에 나선 것은 심한 것 아니냐”는 것. 이들은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은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라고 주장한다.

물론 MBC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공영방송’ MBC만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KBS와 SBS 사이에서 고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던 것. 경쟁 방송사의 한 간부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KBS에 뒤지고,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민영방송 SBS에 뒤지면서 MBC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도 최근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간부는 이어 “MBC 내부적으로 보면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데, 이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사장 이하 MBC 전 구성원들의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추락하는 MBC, 날개는 없나

올 MBC의 ‘뜨는’ 드라마였던 ‘굳세어라 금순아’(왼쪽)와 ‘내 이름은 김삼순’.

최 사장은 이번 ‘PD수첩’ 파문에서 드러났듯 조직 장악력에서 한계를 보여왔다. ‘PD수첩’ 파문만 해도 그렇다. 취재 과정의 문제점을 사전에 몰랐다고 해도 스스로 영을 세우지 못한 책임이 있고, 사전에 알았다면 더 큰 문제다. 한 관계자는 “최 사장도 시사교양국 쪽에 ‘취재 과정의 문제는 없느냐’고 묻긴 했지만 충분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더 큰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PD수첩’의 취재 과정에 관한 문제가 사전에 걸러지지 못한 것은 MBC만의 독특한 시스템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사람도 있다. 한 관계자는 “88년 방송 민주화 투쟁을 통해 확보한 방송 자율성이라는 대원칙 때문에 ‘PD수첩’의 경우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사전에 방송 콘텐츠에 대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국 민주화 시대가 됐음에도 여전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나 통할 법한 방송 자율화만을 고수하다 자체적인 사전 심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반면 최 사장 체제에 ‘호의적’인 관계자들은 “과거 방송 독과점 시대부터 누적돼온 무사안일, 오만 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생긴 사고”라는 입장이다. 올해 계속된 방송사고가 최 사장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중견 기자는 “김영삼 정권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부실 시공 감독 소홀 등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 사장에 대해 ‘개혁만 앞세운다’는 등의 비판을 하는데, 실제 최 사장이 한 중요한 개혁 조치는 ‘주인 없는 회사여서인지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한 임금 삭감이 거의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최 사장이 취임 이후 심혈을 기울였던 분야는 오히려 ‘개혁’보다는 방송 프로그램의 경쟁력 높이기였다고 한다. MBC에 ‘뜨는’ 드라마가 없는 것은 스타급 드라마 PD나 방송 작가들이 MBC를 떠나기 때문이라고 판단, 이들과 다시 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 내년부터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만한 토대를 만들어놓았다는 것.

MBC는 올해 들어 ‘내 이름은 김삼순’ ‘굳세어라 금순아’ 등 외에는 이른바 ‘뜨는’ 드라마가 없었다. 대신 ‘내 이름은 김삼순’ 연출자뿐 아니라 ‘대장금’ ‘다모’ 등 과거 인기 드라마를 연출했던 PD들이 모두 MBC를 떠났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거액을 받고 외주 제작사에 스카우트돼 경쟁 방송사에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최 사장도 인기 드라마를 만든 PD에 대해서는 ‘특별 격려’를 했지만 거액을 베팅하는 외주 제작사와는 게임이 안 됐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또 광고 수입이 아닌 분야에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했다는 게 최 사장 측근의 설명이다. ‘Worldwide MBC’ 차원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외국에 수출하고 해외 방송국과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는 것. 이를 위해 글로벌사업본부를 발족하고 일본과 중국에 지사를 설립, 프로그램 수출 등에서 나름대로 성과도 거두었다는 것.

그렇다고는 해도 결과론적으로 최문순호는 취임 1년도 안 돼 곳곳에서 새고 있다. 최 사장은 12월7일 임원회의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년 2월 주총에서 재신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데스크에서도 광고 취소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시간은 점점 최 사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5.12.20 515호 (p48~50)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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