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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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배달에 녹초, 보람은 크지요”

연말 사회복지사 24시 …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 보살피기 강행군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5-12-14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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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배달에 녹초, 보람은 크지요”

    “아버님, 많이드세요” 혼자 사는 선용구(82) 할아버지 댁을 방문한 사회복지사 문미정(오른쪽)·안혜성 씨.

    “우리는 행동하는 실천가로서 더욱 건강한 가족과 지역사회를 지향한다.”

    [AM 9:00] 12월7일 아침 9시,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본오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를 비롯 25명의 직원들은 짧은 구호와 함께 하루를 연다. 이들 중에는 올해로 3년차인 문미정(27) 팀장과 이제 꼭 1년 된 새내기 사회복지사 안혜성(24) 씨도 있다.

    지역사회 보호팀에 속한 두 사람이 맡은 일은 ‘사회복지의 꽃’이라 불리는 재가(在家)복지 업무. 여러 업무 중에서도 재가복지는 직접 현장을 찾는 일이 많다. 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찾아 상담하는 일부터 후원 물품을 받아 나눠주는 일, 자원봉사자 관리, 심지어는 승합차로 지원 가정에 밑반찬 나르는 일도 이들 몫이다. “(일에) 대중없어요. 농담 삼아 운전기사로 들어왔는지 사회복지사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는데 그만큼 자질구레한 일이 많아요.”(문미정)

    물품 받아오고, 밑반찬 나르고

    [AM 10:00]이날 아침에는 한 단체에서 빵을 지원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내일 있을 경로잔치를 준비하려 했던 혜성 씨는 계획을 바꿔 미정 씨를 따라나선다. “일정엔 없었지만 주신다는데 가야죠. 지원 하나가 아쉬운데요.”



    복지관에서 후원은 중요하다. 본오복지관의 경우, 전체 예산 중 정부 지원액은 40% 정도. 인건비를 채우기도 버거운 액수다. 나머지 운영비는 후원금과 자체 기금운영을 통해서 얻는다. 그 때문에 후원금 등 후원을 ‘따내는 일’도 사회복지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미정 씨는 “사회적으로 나눔이 강조되다 보니, 예전에 비해 기업체 후원이 증가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주로 안산시에서 제공한 12인승 승합차를 이용한다. 덩치가 커서 골목길에선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이들에겐 발과 다름없는 존재다.

    커다란 운전대를 잡은 미정 씨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지도를 보며 쉽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을 신기해하자, “복지사들은 사람 얼굴 기억하는 것과 지도 보고 길 찾는 것, 그리고 운전은 전부 잘한다”며 웃는다.

    이날 복지관에 빵을 제공하기로 한 단체는 안산의 ‘희망을 주는 사람들의 모임’. 모임의 회장인 이발사 김영배(54) 씨는 1월부터 얼마씩 돈을 모아 어려운 시설에 빵을 제공하고 있단다.

    혜성 씨가 후원으로 받은 커다란 빵 자루 두개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그는 “복지관에 남자직원이 적다 보니 웬만큼 힘쓰는 일은 혼자 해낼 수 있게 됐다”면서 씩씩하게 들고 나갔다.

    “사랑 배달에 녹초, 보람은 크지요”

    안산 본오복지관 지역사회보호팀의 안혜성, 문미정(오른쪽) 씨. 혜성 씨는 올해로 1년, 미정 씨는 3년 된 사회복지사다.

    실제로 사회복지사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본오복지관의 경우도 남성 사회복지사는 단 두 명뿐. 두 사람은 남성 사회복지사가 적은 이유로 낮은 임금을 꼽는다. “저희끼리 하는 말 중에 ‘복지사끼리 결혼하면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가 된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한데 사회복지사로 돈 벌긴 어렵잖아요.” (문미정) “사회복지사 하면 그저 ‘착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자선 사업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복지사들은 착하다는 소리 싫어해요.”(안혜성)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5년 사회복지 생활시설 종사자 인건비 지원기준’에 따르면, 사회복지 종사자의 보수는 공무원 8급 10호봉 대비 83% 정도다. 다른 분야에 비해 복지 분야의 보수는 박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두 사람이 근무하는 경기 지역 복지관의 경우는 형편이 나은 편이란다. 최근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에 따라 2005년부터 중앙에서 지원되었던 복지재정이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복지 예산이 낮게 책정된 일부 지역의 복지사들은 일터를 떠나거나 작년보다 낮은 임금으로 허덕이고 있다. “많은 복지사들이 서울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를 부러워해요. 서울은 복지 예산이 넉넉한 편이라,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이나 조건에서 차이가 나니까요.”(문미정)

    [AM 11:00] 빵을 받아온 두 사람은 지난주 담근 김장김치와 밑반찬을 지원 가정에 나르기 시작했다. 미정 씨와 혜성 씨는 이날 시각장애인 가정과 세 명의 독거노인을 찾아갔다. 지난주 담갔던 김장김치와 일주일분 밑반찬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다. “다리 통증은 괜찮으세요?” “어머님, 요즘도 교회에 자주 가시고요?” 짧은 대화 속에 가족 못지않은 살가움이 배어나온다.

    ‘착한 사람’ 아닌 ‘복지 전문가’ 소망

    이들이 도움을 주는 이들은 대부분 정부에서 지정한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 그러나 일부는 그조차 해당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한 예로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 외에도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많은데, 자식이 부양 능력이 있으면 대상에서 제외돼요. 그런데 정작 부양해야 할 자식은 연락도 없고요.”(안혜성)

    오후가 되면 아이들을 만난다. 복지관에서 시행하는 TCC 프로그램(triangle commu-nity care·지역사회 자원조직을 통한 방임아동 사례 관리 프로그램)도 미정 씨와 혜성 씨가 담당하는 일 중 하나다.

    TCC 프로그램은 가정에서 보살핌을 못 받는 아이들을 복지사나 자원봉사자가 찾아가 부모 대신 일정 부분 돌봐주는 서비스로, 오늘은 이 아이들 중 몇 명에게 피자를 나눠줘야 한다. “피자집을 하시는 후원자님이 매주 5판씩 무료로 주시는데, 아이들이 많으니까 한 사람당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을 수 있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피자가 결코 흔한 음식은 아니잖아요.”(안혜성)

    피자를 나눠주고 나면 하루 일정이 대강 끝난다. 오후 4시. 미정 씨와 혜성 씨는 경기 지역 사회복지사들의 연구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군포로 간다.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이 연구 모임은 현재 3개월째 되었다. 모임의 참가자들은 자신이 속한 복지관에서 다뤘던 사례를 발표하고, 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며 매뉴얼을 짠다. 오전, 오후 내내 고된 강행군에도 짬을 내 연구 모임까지 참여하는 이유를 물었다. 미정 씨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답했다.

    “월급은 적고, 잡다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복지사 하면 그저 ‘착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데, 저희는 그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전문인이에요. 저는 제가 하는 재가복지 업무를 좀더 전문화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이럴수록 공부를 거듭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전문 사회복지사로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는 실직적인 복지를 펼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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