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3

2005.02.22

이름 내건 발레단 … 제2 인생 ‘날갯짓

  • ‘all of dance’ PAC 대표 choumkun@yahoo.co.kr

    입력2005-02-18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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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내건 발레단 … 제2 인생 ‘날갯짓
    발레리나들이 공연 준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노년의 선생과 그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튜튜 차림 발레리나들의 그림. 이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드가의 ‘발레수업’이다.

    드가는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해 당시에는 흔치 않은 각도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주제를 중앙보다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놓아 독특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들을 나는 참 좋아했다. 한창 춤을 배우던 시절, 배낭여행을 하다 드가의 ‘아라베스크’가 찍힌 겨울용 티셔츠를 구입해 한동안 즐겨 입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드가의 그림을 보면 당시의 발레리나들은 지금보다 많이 통통했던 것 같다. 오늘날의 발레리나들은 하나같이 바람만 불어도 곧 부러질 것 같은 몸매를 하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딱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들이 무대에서 발끝으로 날아갈 듯이 춤출 때, 바람개비처럼 회전할 때, 파트너 발레리노의 머리 위로 높이 치켜올려져 사랑의 느낌을 표현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의 ‘부러질 듯한 몸매’는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이 치러낸 고된 훈련의 대가다.

    지난주 공연 준비로 한창인 어느 연습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4마리 백조의 춤, 백조와 왕자의 2인무, 흑조와 왕자의 2인무, 에스메랄다, 돈키호테 파드되 등 계속되는 연습의 열기로 난방을 하지 않은 공간이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던 곳. 그곳은 얼마 전 오랫동안 몸담았던 국립발레단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한 발레리노 이원국의 연습실이었다.

    거울 앞 의자에 앉아 연신 ‘브라보’ ‘굿’을 외치며 연습을 지도하고 있던 이원국은 ‘백조의 호수’ 3막에 나오는 스패니시 춤을 추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서자 ‘교수’에서 ‘무용수’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띠며 나이 어린 무용수들과 함께 춤추는 이원국을 보며 그의 스무 살 시절이 떠올랐다. 필자는 이원국과 같은 대학 동기다. 대학 시절 그의 일상은 온통 발레뿐이었다. 스무 살에 발레를 시작한 그는 뒤늦은 시작을 보충하기 위해서인지 수업이 끝난 뒤에도 늘 연습실에 남아 연습을 했고, 다른 학과 공부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발레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단기간에 솔리스트로 발탁돼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고, 한 번이라도 그의 춤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의 팬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그가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던 시절, 사람들은 그의 정확한 테크닉과 진짜 왕자가 된 듯한 표현력에 끝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의 발레리노는 이원국 전과 이원국 후로 나뉜다’는 말을 들을 만큼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가 이제는 자기 이름을 내건 발레단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한다. 제2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이원국은 정말 보통 사람과 다른 예술가다. 예술가의 삶은 고되고 힘든 긴 여정인데, 울타리를 벗어나 야생으로 나온 그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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