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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구본주 추모전

빨리 떠난 천재, 별이 되어 돌아오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빨리 떠난 천재, 별이 되어 돌아오다

빨리 떠난 천재, 별이 되어 돌아오다

갑오농민전쟁, 동(2004), 1994년에 처음 만들어졌던 것을 올해 다시 완성했다.

‘미술이 뭔지 모르겠다’거나 ‘좋은 미술이 뭘까’라는 회의적 질문에 부딪히면 구본주를 생각한다. 도대체 실용성도 없고,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는 그림들과 쇳덩이들, 그리고 음모와 비방이 난무하는 세계를 ‘미술’이라고 불러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 때 구본주의 삶과 작업은 미술이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구본주는 1967년 경기 포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조소과와 대학원을 나왔고,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3년 9월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2월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사비나 미술관과 가나아트갤러리, 덕원갤러리 세 곳에서 열리는 ‘구본주, 별이 되다’는 그의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전시다. 구본주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선후배들이 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그가 생전에 샐러리맨 아버지들을 별처럼 우러러보게 하겠다며 시작했던 작품 ‘별이 되다’를 후배 조각가들이 완성하여 설치했다. 형광안료와 폴리코트로 만든 1000개의 샐러리맨들 중 3개를 구본주가 만들었고, 997개를 후배들이 만들어 설치한 작품이 덕원갤러리 천장에서 별처럼 빛난다.

젊은 작가의 추모전이 이처럼 대규모로, 자발적 추진위원회에 의해 열린 까닭은 그가 요절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서른일곱 나이로 삶을 마감했지만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포천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돼지를 치다가 고3 때 서울로 올라와 ‘보무도 당당하게’ 홍익대에 입학했고, 대학시절부터는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80년대 현장 미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리얼리즘 조각에 천착해 ‘노동자’ 연작과 ‘갑오농민’을 만들었다. 변혁에 대한 사회적 욕망이 끓어오르던 시기에 진보 미술가였던 그는 95년과 99년에 열린 첫 번째, 두 번째 개인전의 제목을 마르크스 생산양식론 테제인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에서 따와 ‘존재와 의식’이라 붙였다.

빨리 떠난 천재, 별이 되어 돌아오다

미스터 리2(1995), 나무.

90년대에 들어선 뒤에도 현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여전했다. 단, 노동자 조각이 ‘관념적’이라는 비판(그것은 이제 매우 부당해 보인다) 때문인지, ‘도시인들에게 익숙한 사무직 노동자의 삶으로부터 실제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려 했기 때문인지, 93년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MBC 구상미술대전 공모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았던 ‘배대리의 여백’에서 나타난 ‘화이트칼라 노동자-샐러리맨’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2002년 열린 세 번째 개인전은 ‘우리시대의 표정: 아버지’로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가부장 남성의 이미지를 우화적이면서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제도권 미술계에서 보기에 불편한 작품들을 만드는 민중미술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는 말 그대로 ‘혁명’적이고 ‘단호’해서 날이 선 낫만큼이나 서늘하다. 노동자들이 서로 기대고 선 ‘파업’ 연작은 사용자의 눈에 불순해 보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구본주가 감동적인 것은 그의 작업이 이념과 구호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누구도 -재야든 제도권이든- 이를 부인하기 어려웠다.

흙과 나무, 쇠를 다루는 그의 솜씨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통쇠를 두드려 만든 작품들은 우선 어마어마한 노동력 때문에 놀랍고, 장인적 숙련도에 감탄한다. 쇠를 두드려 만든 손가락과 손안의 돌의 대비(‘유월’)는 그가 재료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손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음을 보여준다. ‘갑오농민’의 다리와 움켜쥔 발가락은 땅과 하나가 된 인간, ‘농민’ 바로 그것이다.

빨리 떠난 천재, 별이 되어 돌아오다

눈치밥 삼십년, 동(1999)

또한 만화처럼 인물을 극도로 길게 늘이거나 왜곡한 ‘미스터 리’ 등 일련의 남성 시리즈는 속도감과 동작으로 공간을 휘어잡는다. 동시에 허공을 향하는 긴박한 남자의 표정, 혹은 이제 놓아버릴 듯한 절망이 관객과 팽팽한 긴장을 이룬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인간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한 로댕의 후예(근대적 조각가)인 동시에 인물의 동작, 손가락과 표정을 통해(꺾인 목, 긴장된 팔, 속도감을 견디지 못해 퍼덕이는 양복 자락을 보라) 계급성을 드러낸 진보적인 리얼리즘 조각가이기도 했다. 그가 너무 일찍 가버렸다는 안타까움이야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나, 이미 그가 그 성취와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강렬한 초기 작부터 최근 작까지의 변천, 그리고 데드 마스크를 사비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문의 02-736-4371



주간동아 465호 (p82~8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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