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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고난의 땅’ 아프간을 가다

마을은 폐허, 도로변은 지뢰밭

카불 ~ 차라카르 90km 곳곳에 전란의 흔적 …가족 잃은 주민들 슬픔과 분노의 나날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마을은 폐허, 도로변은 지뢰밭

마을은 폐허, 도로변은 지뢰밭

내전으로 파괴된 카불 시내 A지구

1960∼70년대 베트남전 당시 미군 공습은 하노이를 비롯한 베트남 북부를 ‘석기시대’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프간도 마찬가지다. 아프간 곳곳이 마치 화산재에 덮였다 발굴된 폼페이 유적처럼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허물어져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아프간에서 전란의 흔적은 금세 눈에 띈다. 카불에서 바그람 공항을 거쳐 판슈르 계곡 바로 밑의 북부지역 중심도시 차라카르에 이르는 90km 도로는 23년 내전 동안 밀고 밀렸던 전투의 치열한 흔적을 보여준다.

수도 카불 자체가 전란의 피해지다. 특히 카불 시내 동남쪽 A지구와 서남쪽 B지구는 1990년대 전반기 내전 과정에서 철저히 파괴된 곳.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물러나고 1992년 봄 친소 모하마드 나지볼라 정권이 무자헤딘의 공격으로 붕괴된 뒤에도 아프간엔 평화의 여신이 미소를 보내지 않았다. 타지크계의 마수드 장군, 우즈베크계의 도스툼 장군, 하자라계의 마자리 장군이 카불을 3등분해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였다. 이들은 1980년대 내내 옛 소련군을 상대로 함께 싸워온 사이였지만, 소련군이 물러난 힘의 공백을 저마다 메우겠다고 무자비한 전투를 벌였다. 한 블록이라도 더 세력을 넓히려 마구잡이 포격전을 벌여 숱한 비전투원(시민)을 희생시켰다.

마을은 폐허, 도로변은 지뢰밭
카불은 내전이 벌어지기 전엔 아름다운 도시였다. 외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전반기 4년에 걸친 내전은 카불을 폐허로 만들었다. 1979년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으로 시작된 10년 내전이 지방을 황폐화했다면, 1990년대 전반기 제2의 내전은 카불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카불의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은 1996년 9월 탈레반 세력이 카불을 장악한 뒤 겨우 그쳤다.

카불을 벗어나 북쪽으로 바그람 공항을 거쳐 판슈르 계곡으로 이어지는 군사적 요충지 차라카르까지의 90km 도로변 곳곳의 마을들도 전란에 파괴돼 텅 빈 유령의 마을로 변했다. 이 지역은 탈레반군과 마수드 장군이 이끈 북부동맹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격전지다. 마수드 장군은 탈레반군에 맞서 북부동맹을 지킨 용장. 그러나 9·11 테러사태 직전 아랍권 TV 기자를 사칭한 자살공격조에 목숨을 잃었다.

필자는 차라카르에서 우연히 마수드 장군의 전속 사진사였던 유세프 야네사르(31)를 만나 그의 암살에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이 9.11 테러사태에 때맞춰 보낸 자객에 마수드가 당했다”고 주장했다.



차라카르로 이어지는 도로 곳곳엔 마수드 장군의 분투를 증언하듯, 파괴된 채 버려진 탈레반군 탱크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프간이 지닌 또 하나의 고민은 지뢰와 불발탄(UXO) 제거문제다. 내전을 거치며 각 파벌들이 저마다 지뢰를 심는 바람에 현재 700만~800만개의 지뢰가 땅속에 묻혀 있다. 한마디로 아프간은 세계적인 지뢰위험 국가다. 게다가 10·7 공습 뒤 미 공군이 뿌려댄 집속탄(Cluster Bomb) 가운데 상당수가 터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바그람 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변 밭엔 대인지뢰는 물론 대전차지뢰, 집속탄 등이 마구 널렸거나 묻혀 있어 현지인들조차 매우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이었다.

마을은 폐허, 도로변은 지뢰밭
현재 이 지역은 독일의 재정 지원을 받는 MDC(Mine Action Program)와 이탈리아로부터 지원받는 할로 트러스트(Halo Trust) 등 두 지뢰제거 단체가 이웃해 지뢰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MDC는 특수훈련된 개를 동원해 지뢰를 찾아낸다. 그러나 워낙 지뢰가 많고 매설지도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MDC 현장 책임자 자몬 카타리단(40)은 “지금은 도로 양쪽 5m에 심어놓은 지뢰를 찾는 데 힘쓸 뿐 도로변 밭에 뿌려진 지뢰는 찾을 엄두도 못 낸다”며 지뢰제거 작업이 한두 해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상기시켰다. 유엔개발프로그램(UNDP)이 지난해 6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의 지뢰밭은 7억2400만m2로 이중 절반 가까운 3억4400만m2의 땅에 지뢰가 많이 묻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뢰들을 치워 그런대로 농경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2000년 한 해 동안 아프간에선 MDC를 비롯한 여러 지뢰제거 단체가 1만3500개의 대인지뢰, 636개의 대전차지뢰, 그리고 30만개의 불발탄을 찾아내 폭파시켰다.

바그람 공항에서 차라카르로 이어지는 도로변엔 지름 10m가 넘는 거대한 웅덩이도 여기저기 보였다. 미군이 탈레반군 진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흔적이다. 특이한 것은 탄두가 떨어진 웅덩이 한가운데가 쇠꼬챙이로 찌른 듯 깊숙이 팬 모습이었다. 차라카르 도로변에도 많은 탱크들이 파괴된 채 버려져 있었다. 어떤 탱크 1대는 미군 공습으로 파괴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도로를 절반쯤 차지하고 있어 차량들이 조심스레 비켜가야 했다. 그 파괴된 전차 속에서는 아프간인 2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쇳조각을 뜯어내 고물로 팔면 우리 돈으로 2000원쯤 번다는 얘기였다.

인구 10만의 도시 차라카르는 타지크족이 다수로 9·11 테러사태가 있기 전까지 북부동맹의 최전선 거점도시였다. 1997년에 한 달 가량, 98년엔 단 사흘 동안 탈레반군이 차라카르를 점령했지만, 마수드 장군의 반격으로 탈레반군은 곧 물러났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차라카르에선 한바탕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바람이 불었다. 군 초소를 순시중이던 북부동맹군의 한 간부는 “탈레반이 물러나면서 부모를 비롯한 내 가족을 모두 죽였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복수를 다짐하는 그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예전에 부모와 함께 살았다며 그가 가리키는 집의 담벼락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간동아 321호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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