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2001.11.29

‘수능 증후군’ 방치하면 큰일나요

우울증-술-약물복용 등 위험천만 …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치료제’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1-24 14: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수능 증후군’ 방치하면 큰일나요
    이러다 무슨 일 터지는 게 아닐까….”올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정신과와 내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수능 점수 ‘폭락’에 대한 수험생들의 반응들이 신체적 이상 증세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 실제 각 의료기관에는 심각한 우울증이나 ‘술병’을 호소하는 수험생과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매년 되풀이되는 ‘수능 증후군’이 ‘평소보다 말이 없어졌다’는 수준을 넘어 대인기피증에 걸리거나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단계로 발전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관련 전문의들은 평소 모범생으로 지내온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런 정신과적 이상 증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평소 술 경험이 전혀 없던 학생들이 갑작스런 폭주로 피를 토하는 ‘말로리 와이즈 증후군’도 확산되는 추세라는 것. 전문의들은 이들의 증세가 심각해 논술이나 면접고사를 포기하는 학생까지 속출하고 있다고 전한다.

    모의고사 성적이 380점대를 웃돌던 김모군(18)은 11월7일 수능 시험장을 나온 후 부쩍 말수가 줄고 도무지 식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가 부모에게 한 말은 “80점이 떨어졌다. 모든 게 다 싫다”는 것뿐. 김군 부모는 아들의 성적 하락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부부싸움을 벌였고, 종래에는 “어렵게 나올 걸 뻔히 알면서 그 따위로 공부했냐”며 김군을 질타했다. 그날 밤 술에 취해 귀가한 김군은 “네가 미쳤구나”라는 부모의 말에 유리창을 깨고 “죽어버릴 거야”라며 집을 나가버렸다. 김군이 발견된 것은 병원 응급실. 집 인근 독서실에서 부탄가스를 마시고 환각 상태에서 손목을 칼로 그어 자해를 한 것이다.

    ‘수능 증후군’ 방치하면 큰일나요
    오산정신병원 정찬호 과장(정신과 전문의)은 “수능 이후 김군과 같은 상위권 학생들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지만 이들은 예전의 수험생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느냐’는 극심한 피해의식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빚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피해의식이 원인인 우울증은 심한 ‘가학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 이런 공격적 성향이 자신에게 향하면 자포자기와 약물 복용, 폭주, 자해, 자살과 같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밖으로 향할 경우 폭행이나 기물 파괴 등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게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한편 학교 성적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이모군(18)은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술을 갑자기 마셨다 피를 토하고 응급실에 실려간 경우. 동반 하락이라고는 하지만 40점의 성적 하락은 이군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못 마시는 술을 연이어 마시던 이군은 결국 식도 파열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세란병원 이종경 내과 부장은 “평소 입시 스트레스로 식도궤양에 걸려 있던 수험생이 갑작스럽게 술을 마실 경우 약해진 식도 혈관이 구토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는 현상(말로리 와이즈 증후군)이 일어난다”며 “파열된 혈관이 정맥인 경우 쉽게 치료가 되지만 동맥인 경우는 심각한 상황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정도로 심하다고는 하지만 올해의 수능 증후군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따뜻한 배려와 이해심이 필요충분 조건. 수험생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H한의원 박영미 원장은 “증세가 발견되면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짧은 편지나 포옹 등 애정 표현을 자주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 될 것”이라며 “자녀의 생각이나 의견을 세심하게 경청하고 인정해 주는 이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