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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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는 어디서 출발했나

  • 입력2005-06-03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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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요즘 영화 속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최근 개봉됐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더 셀’ ‘왓쳐’ ‘식스팩’ ‘아메리칸 사이코’ 등은 모두 광기 어린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영화다.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살인행각으로 사람들을 기절 직전에 몰아넣는 그들은 연쇄살인범이 되기 전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스릴러 영화는 이 연쇄살인범들의 과거사를 처음부터 명확히 밝히진 않는다(긴장감 유발 작전). 심지어는 은근슬쩍 이들의 과거를 봉인한 채 서둘러 엔드 크레디트를 올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연쇄살인범의 과거를 회상이나 대화 등을 통해 알려주게 마련이다. 연쇄살인범이 된 이유 중 가장 흔한 사연은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의 반작용이다. 영화 초반에 이미 FBI 비밀 요원의 손에 붙잡힌 ‘더 셀’의 연쇄살인범 칼 스타거는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맞았던 기억이 있다. 이상한 종교의식과 불운한 가정사의 희생양인 그는 어린 시절 세례 당시 겪었던 ‘표백의 이미지’를 활용해 연쇄살인의 대가가 된다. 스릴러 영화의 원전 격인 ‘사이코’의 연쇄살인범 노먼 베이츠도 이런 불운한 가정사의 희생양이다. 그는 칼 스타거와 달리 어머니의 지나친 보호 때문에 정신병적 광기를 키운 경우다. 심각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인 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 엄마 역을 대신한다. 공포 영화 캐릭터 중에도 불운한 가정사 때문에 괴물이 되어버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더러운 줄무늬 셔츠와 중절모로 치장한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는 정신병자들에게 강간당한 수녀의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진 뒤 괴물이 된 케이스. 한국영화 ‘텔 미 썸딩’의 채수연도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불운한 기억 때문에 연쇄살인범이 된 케이스였다.

    ‘광기’는 어디서 출발했나
    정신병적 집착에 의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캐릭터도 많다. 집착의 대상은 여러 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지독한 집착 때문에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인간 수집 자체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라디오 스타를 광적으로 사랑했던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의 엘빈이나 순애보적 연애소설에 몰입한 ‘미저리’의 연속 영아 살해범 애니는 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 인간의 뼈를 수집하는 게 취미인 ‘본 콜렉터’의 연쇄살인범이나 아름다운 백인 여성을 수집하는 게 취미인 ‘식스팩’과 ‘썸머 오브 샘’의 연쇄살인범 등은 후자에 속한다. ‘양들의 침묵’의 버팔로 빌은 어떨까. 그는 여성의 살가죽에 집착하는 남자다. 그의 이상한 집착증은 다분히 동성애적 혐의가 짙다. 여성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그를 광기 어린 연쇄살인범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연쇄살인범들이 언제나 잔혹한 사건에 어울리는 이유를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 ‘퍼니 게임’의 그들은 제목처럼 단순히 게임을 즐기기 위해 살인행각을 벌였으며,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의 헨리 리 루카스와 ‘텍사스 살인마’의 살인마 가족은 그저 심심하다는 이유로(하찮은 이유는 있다. 물건을 샀는데 값을 안 깎아 준다거나 자신을 보고 웃었다거나 등) 낄낄거리며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은 물론 이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텍사스 살인마’의 그들은 인간을 소시지의 재료 정도로 생각하는데, 영화 마지막에서 가족이 모여 하는 말이 걸작이다. “대체 사람들이 왜 우리를 뒤쫓는 거지?” 연쇄살인범이라고 모두 음울한 얼굴에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은 월스트리트의 유능한 CEO로 아르마니나 베르사체 같은 명품만 입고, 최고급 레스토랑을 찾는다. 이 멋진 남자는 그러나 친구가 자기 것보다 디자인과 재질이 뛰어난 명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도끼로 그를 내리친다. 취미 삼아, 혹은 단순한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소비에 중독된 세대에 바쳐진 엽기적인 현실보고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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