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0

2000.11.23

아낌없이 다 베푸는 운곡천 ‘수달 애비’

경북 봉화 박원수씨…12년째 수달 지킴이 “행복합니다”

  • 입력2005-05-30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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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낌없이 다 베푸는 운곡천 ‘수달 애비’
    ○박원수

    1957년 경북 봉화군 법전면 출생. 봉화 춘양중 졸업

    1995년 한국수달보호회 창립

    10여년간의 수달 보호활동을 인정받아

    1997년 강원도 원주지방환경청으로부터 표창을,



    1998년 환경의 날 경북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수달이 어떻게 생겼을까? 답할 사람은 많다. 그 생태에 대해 ‘이론적 열변’을 토해낼 이도 적잖다. 하지만 멸종위기에 놓여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지는 수달을 정작 ‘어루만지는’ 이는 드물다.

    11월6일 경북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운곡천. 봉화군 명호-춘양면간 낙동강 지류 20여km를 잇는 국내 최대 수달 서식처로 알려진 이 하천에서 박원수씨(43)는 그런 ‘멀어짐’의 끝자락을 외롭게 부여잡고 있었다. ‘수달 애비.’ 12년째 수달만 좇은 그에게 붙은 별명이다.

    “기자 양반, 먼길 왔는데 아마 ‘다롱이’ 얼굴 못볼 것 같네요. 원체 수달이 낯가리는 동물이라….”

    다롱이는 현재 그가 돌보고 있는 암컷 새끼수달의 이름. 생후 5개월로 4kg 남짓한 다롱이는 지난 10월17일 봉화에 인접한 영주 남원천변에 탈진해 있다 다행히 학생들에게 발견돼 박씨에게 인계됐다. 운곡천 옆에 있는 작은 인공연못이 다롱이가 ‘입주’해 ‘거택보호’를 받고 있는 곳. 박씨가 직접 설계한 이 연못은 가로 12m, 세로 5m, 깊이 1.2m 크기. 연못 주위엔 수중-육지생활을 병행하는 수달의 습성에 맞춰 굴도 여러개 파놓았다. 사위에 둘러쳐진 쇠울타리는 수달의 이탈을 막고 들고양이 등으로부터 어린 수달을 보호하기 위한 것.

    “다롱이가 다 회복되긴 했지만 지금 하천에 놓아주면 죽어요. 수달이 원래 구역다툼이 심하거든요. 올 겨울 나고 내년 봄 ‘야성’을 완전히 되찾은 뒤 내보내야죠. 한번 사람 손을 타면 본능을 되찾는 데 오래 걸립니다.” 원래 서너 마리가 어울려 가족생활을 하다 1년쯤 자라야 독립하는 수달의 습성상 아직 다롱이는 ‘때가 안 됐다’는 얘기다.

    그의 공식 직함은 한국수달보호회(www.otter.co.kr)장. 하지만 남들처럼 번듯한 사무실 하나 없다. 운곡천에서 30m도 떨어지지 않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한국수달보호센터)은 12평 컨테이너 가건물. 이마저 지난 5월 봉화군이 박회장의 ‘업적’을 인정해 마련해준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하루 최대 식사량이 몸무게의 3분의 2에 이를 만큼 유난히 ‘식탐’을 일삼는 수달 먹이 대기에도 바쁘다. 다롱이‘밥값’만 3일에 10만원 꼴. 하지만 지원금이라곤 민간단체인 ‘멸종위기야생동식물보호협회’에서 나오는 월 50만원이 전부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박회장은 그래서 틈틈이 3만원짜리 막일과 일당 1만9500원 받는 공공근로로 급전을 마련해 인근 안동댐 어부들로부터 살아 있는 붕어와 잉어, 피라미를 사 모은다. 외상도 곧잘 한다.

    그의 이런 ‘수달 사랑’은 언제부터 비롯됐을까. 법전면이 고향인 그는 원래 전기공이었다. 철든 뒤 강원도 태백의 광업소와 서울의 아파트 공사장 등지를 돌며 전기 일을 해온 박회장은 고향에 들를 때마다 찾아보곤 하던 수달이 10여년 전부터 눈에 띄게 줄자 지난 89년부터 수달 분포도를 만들기 위해 수달이 있다는 하천만 헤집고 다녔다. IMF 사태 직후 개점휴업 상태의 개인사업마저 접은 그는 생업도 포기한 채 고향에 눌러앉아 수달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어릴 적엔 같이 목욕한다고 할 정도로 하천에 수달이 많았죠. 그런데 왜 이렇게 천연기념물(수달은 1982년 천연기념물 330호로 지정됐다)이 될 만큼 그 수가 줄었겠어요? 다 인간들이 수달 서식지를 마구잡이로 파괴한 결과입니다.”

    그의 말대로 얼마 전만 해도 수달이 살던 영주 남원천에서조차 수달이 자취를 감췄다. 잦은 하천개발과 수해복구공사, 하천변 도로-교량개설 등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수달 서식환경이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고 박회장은 덧붙인다. 그가 나름대로 ‘한국행정-도로망도’ 위에 색색의 스티커를 붙여 만든 ‘전국 수달 분포도’에도 ‘수달 멸종위기 하천’으로 분류돼 녹색 스티커가 붙는 지점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안타까움의 징표이기도 하다.

    “정작 탈진한 수달을 발견한 사람들도 뭘 몰라요. 물에 넣어온 수달은 십중팔구 3일을 못 넘기고 죽어버립니다. 하긴 어디로 연락해야 좋을지 몰라 발견한 사람이 대충 돌보는 탓도 있죠.”

    그는 120여 마리로 추정되는 운곡천 수달마저 행여 더 줄어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회장이 이제껏 돌본 수달은 달미, 보은이 등 열두 마리. 하지만 그의 지극 정성에도 아랑곳없이 살아서 자연으로 돌아간 것은 다섯 마리뿐. 지난해 8월 밀렵꾼의 공기총에 맞아 얼굴이 반쪽이나 날아간 수달을 영주에서 발견, 20여일간 정성껏 치료해 놓아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현재 보호센터에 딸린 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박회장은 주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취재 중 기자에게 먹어보라며 권한 그의 ‘주식량’도 건빵. 밤엔 바닥에 깐 스티로폼 위에 은박지를 한겹 더 깔고 대충 잠을 청한다.

    경제적 곤란 못잖게 그가 감내해야 하는 또다른 어려움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 ‘수달에 미쳐 가정도 돌보지 않는 놈’ ‘수달 잡아 팔면 밥벌이는 될 것’이라는 등 주위의 온갖 시기와 멸시를 수없이 겪었다.

    사실 가정을 알뜰히 보살피지 못한 건 그에게도 아픔이다. 수달 문제로 빈번히 다투다 여덟살 아래인 아내와는 이미 10년 전 헤어졌다. 19, 17, 14세인 세 딸도 박씨가 지난 7월 운곡천으로 아예 거처를 옮기면서 그의 노모(76)가 돌보고 있다.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그의 집은 집주인이 외지로 나가며 처분하지 않고 놓아둔 것을 주인 허락 하에 수리해 거처로 사용중이다. 집 전화도 요금을 못내 ‘결번’이 된 지 오래 됐다. “삐리릭!”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빠, 이번 목요일(11월9일) 집에 올 수 있어?” 중학교 1학년인 막내딸 희연이 보낸 문자 메시지. 그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수달이 우리보다 더 좋으냐”며 아버지를 원망하던 딸들도 이젠 그를 많이 이해해준다.

    가정뿐 아니라 박회장은 사실 자신에게도 태무심하다. 풍치로 앞니가 서너개 빠졌지만 “이 해넣을 돈 있으면 수달 먹이 사줄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야 어떻게든 살잖아요. 도와줄 다른 사람이라도 있죠. 하지만 수달을 돌봐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인간은 한 개인의 생존문제에 직면할 뿐이지만 수달은 종족보존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수달뿐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아직도 그의 이런 ‘수달 사랑’을 백안시하고 있다. 운곡천을 수달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그의 요청은 운곡천 일대에 위락시설을 조성하려는 봉화군의 개발논리에 밀려 아직 성사되지 않은 상태.

    “우선 봉화와 충남 일대, 경남 산청, 강원도 등 수달이 비교적 많이 서식하는 4개 지역에라도 정부가 앞장서 수달보호구역을 지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나마 최근 충주 제천 단양 경주 홍천 등지 수달보호회 회원들이 수달 지킴이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다소 위안은 됩니다.”

    5시간에 걸친 취재시간 내내 기자는 다롱이는 물론 운곡천의 다른 수달과도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변함없을 박회장의 수달 사랑만은 그의 팔 군데군데 흉터로 남은, 수달에게 물린 상처만큼이나 또렷이 각인됐다.

    “죽을 때까지 수달을 돌볼 것”이라 힘주어 말하는 그는 어쩌면 자신의 말마따나 전생에 수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락처:018-525-4933.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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