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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동대문시장 사람들

노점상·지게꾼도 억대 ‘알부자’

하루 매출액 4백억원 ‘돈’을 잡아라…치열한 삶의 현장 동대문시장은 ‘25시’

노점상·지게꾼도 억대 ‘알부자’

노점상·지게꾼도 억대 ‘알부자’
매일매일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하루 매출액 400억원, 연간 매출규모 10조원으로 추산’되는 동대문시장. “돈이 모이는 곳이라 이곳 생리를 알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어느 상인의 말처럼, 돈을 좇아 모여든 날품팔이에서 거상까지 24시간 역동성과 활기를 뿜어내며 살아가는 곳이 바로 동대문시장이다. 특히 “서울시내에 나도는 현찰 중 3분의 1은 재래시장 몫”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전통 재래시장을 터전삼아 몇십년씩 살아온 사람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고 이채롭다.

일명 ‘문화비디오’로 불리는 포르노물 장수, 쥐약 복권 무좀약 등 날품팔이부터 밑천 없이 맨손으로 뛰어들어 수억~수십억 떼돈을 벌었다는 ‘나까마’, 자료장수, 백지어음 장수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청을 높이며 재래시장을 드나들고 있다. “매일 문화비디오만 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 이곳 상인 치고 O양 비디오 안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보통 빌리는데 5000원, 사는데 3만원씩 한다. 하다 못해 비닐봉투나 껌만 팔아도 월 100만원은 거뜬히 벌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고 종합시장의 한 상인은 귀띔해준다. 그의 말대로라면 흔히 일컫는 ‘껌값’을 결코 껌값으로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장 사람들의 진짜 주머니사정인 셈이다.

종합시장을 주무대로 뛰는 ‘나까마’는 원단제조업체와 점포 사이에 싼 값으로 물건을 중개하고 구전을 챙기는 사람이다. “보통 원단 1마당 10~20원 정도 구전을 먹는데 나까마를 통해 하루 8t 트럭 한 차 분량씩 물건을 받는 점포들도 적지 않다. 나까마 중에서도 수완 좋은 사람을 ‘왕발’이라고 하는데 80년대 전후해서 한창 원단수출이 잘 될 때 떼돈 번 왕발들이 많았다. 그땐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할 만큼 경기가 좋았다”고 한 상인은 회고한다.

상인들 사이에 입지전적 인물로 회자되는 전직 나까마 중에는 현재 종합시장 뒤편 먹자골목에 위치한 헬스 사우나 사장이 있다. 월 7만원의 회비를 내고 이곳을 이용하는 한 상인에 따르면 “사우나 사장은 50대인데 젊었을 때 맨손으로 시장에 들어와 나까마로 몇년 뛰다 지금의 사우나 건물을 샀다. 그때 시가가 3억원 내지 5억원이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2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종합시장이 문을 닫는 오후 6시경이면 사우나로 몰려가는 상인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대문시장 점포수만 해도 1만개 정도다. 거기다 점포당 딸린 사람만 평균 3명이다. 어림잡아 이중 90%는 사우나를 이용할 것이다.”

또다른 알부자로 손꼽히는 사람이 재래시장 주변에서 10년째 터잡고 그릇을 팔고 있는 40대 후반 아저씨다. 하루종일 거리에 앉아 그릇을 손보고 있는 그의 노점은 대략 50m 길이에, 풀어놓은 그릇만 해도 수만장은 될 듯하다. 뿐만 아니라 포대에 담긴 그릇들이 근처 창고를 채우고도 남아 건물과 건물 사이에 3층 높이로 잔뜩 쌓여 있다. 주인 아저씨는 말이 그릇 노점상이지 직원을 두 명이나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이다. “한 사람당 일당이 하루 5만원 꼴”이라는 주인 말대로라면 최소한 한달 동안 이들에게 지불되는 돈만 계산해도 300만원이다. 몇백원짜리 간장종지에서 몇천원에 이르는 차반을 팔며 “그동안 먹고 살 만큼 벌었지만 천직으로 알고 휴일도 없이 장사한다”는 주인 아저씨. 그는 또 “멜라민은 플라스틱과 달라 재활용이 안된다. 버릴 이등품 물건을 하루종일 거리에 앉아 본드칠하고 사포질하며 돈으로 만드는 셈이다. 노점상도 나름대로 운영의 묘가 있어야 돈도 번다”고 덧붙인다. 그는 근처 단골 사우나에 양복을 맡겨 두고 매일 일이 끝나면 이곳에 들른다. 저녁 7시 반경이면 말쑥한 신사차림으로 변한 그를 아내가 중형차를 몰고 퇴근시키러 온다.



이 외에 상인들 사이에 수십억 부자로 손꼽히는 노점상이 또 있다. 바로 의류 도매상가 근처에 터를 잡고 새벽장사를 하는 각종 의류노점상들이다. “이 사람들은 잘 나가면 한철에 1억원의 매상을 올리기도 한다”는 것이 노점상 사정에 밝은 상인의 귀띔이다.

상가마다 24시간 눈에 띄는 사람들이 운반조(일명 지게꾼)인데 이들의 벌이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재래시장 주변에선 새벽 6시부터 오후 4, 5시까지 등에 짐을 지고 바삐 계단을 오르는 지게꾼들을 만날 수 있다. 종합시장을 중심으로 자체 조합을 결성하고 있는 지게꾼들은 줄잡아 120명에 이른다. 이들은 30~50명씩 뭉쳐 3개 조합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름 대신 1호 2호 식의 번호로 불린다.

지게 하나에 매겨진 권리금은 3000만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지게꾼 일년이면 본전을 뽑는다”는 것이 통설이다. 물건 한짐(통상 원단 3롤)을 지고 상가 3층까지 가는데 받는 기본요금은 2000원. 한층씩 층수가 더해질 때마다 500원의 ‘할증료’가 붙는다. “비수기인 봄-여름철은 월 200만~300만원을 벌지만 가을 겨울철은 400만~500만원을 거뜬히 넘긴다. 올해 28세인 한 지게꾼은 하루벌이만 40만원이다”고 한 점포 사장이 일러준다.

새벽에 원단을 싣고 도착하는 화물차를 상대로 용달과 오토바이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지게꾼 벌이를 웃돈다고 한다. “지게꾼 중에 백구두에 양복을 빼입고 아들이 운전하는 중형승용차로 출퇴근하는 60대 노인이 있다. 그 사람은 혜화동에 5층짜리 건물을 가진 알부자로 소문나 있다. 평생 지게를 지면서 번 돈인데 지금도 등짐을 안 지면 못 산다는 사람이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짐값을 깎거나 잔소리 많은 사람의 짐은 절대 져주지 않는다”고 단골 고객인 점포 직원이 알려준다.

또다른 일흔여덟살 지게꾼은 휴가 때도 집안에 앉아 새끼를 꼴 만큼 일을 안하면 괜시리 몸이 아파온다고 한다. 그 지게꾼을 잘 아는 한 상인은 “신림동 150평짜리 집에서 노부부만 산다. 최근, 집이 낡아 팔려 해도 덩치가 커서 안 팔린다고 고민할 만큼 돈을 벌었다. 지금도 점심은 맥주 한 캔으로 떼우는 게 습관이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계모임이 수없이 많다. 그중 매월 몇백만원에서 1000만원을 붓는 계도 수두룩하다”는 상인의 얘기처럼 재래시장은 아직도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돈이 돈다. 따라서 어음할인(일명 ‘와리깡’)이나 백지어음 장사로 큰돈을 버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 도는 어음은 쉽게 말해 상장어음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에서 정식으로 할인받을 수 없다. 때문에 당장 현찰이 급한 사람들이 필요한 액수의 5% 이상을 할인받고 현찰로 바꿔간다. 나이 들어 자식한테 장사를 물려준 수십 수백억 재산의 퇴역 상인들 중에 ‘와리깡’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인들은 “와리깡 장사를 하다 IMF 때 날벼락 맞은 사람들이 많아 요즘은 어음 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시장은 보통 원단이나 제품 외상값을 수천만원씩 깔아놓고 장사한다. 외상값을 어음으로 받았다가 부도내고 야반도주한 사람들 때문에 휴지조각으로 만든 사람이 적지 않다. 또 와리깡 장사하다 수억 날린 사람도 있다.”

한편 백지어음 장사는 말 그대로 현찰이 필요한 상인들을 상대로 백지어음을 장당 150만원에 팔아 수입을 올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백지어음은 3개월 안에 현찰로 바꾸지 못하면 십중팔구 부도난다. 양심 있는 사람은 보통 그 안에 돈을 갚는데 안그러는 경우도 흔히 있다. 물정 모르고 도는 백지어음에 잘못 걸려들면 수억씩 날리고 신세 망치는 상인도 있다.”

심지어 부도난 법인명을 도용하거나 유령회사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도 시장을 무대로 암암리에 살아간다. 일명 ‘자료장사’라 불리는 가짜 세금계산서는 종이에 기재될 금액의 6, 7%를 커미션으로 받는다. “한번에 몇천만~몇억씩 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수수료 수입만 해도 엄청나다”는 것이 상인들의 귀띔이다.

현재 의류제조업체 에스케이피를 운영하는 박석규사장은 IMF 초기에 속옷제조업으로 동대문시장에 뛰어들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96년 당시 우리나라 속옷시장 규모가 1조4000억원이었는데 이중 약 6000억원 규모가 동대문과 남대문 속옷시장 매출규모였다. 전국을 상대하는 신평화시장 1층 속옷 도매상을 예로 들면 보통 점포 한 개로 100억원대를 번 재산가가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 얘기다”고 전한다.

떼돈을 벌기도 하고 수억원을 사기당하기도 하며 모든 게 돈으로 말해지는 곳이 바로 동대문시장의 생리다. “교통사고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지만 시장에선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는 게 동대문시장 상인들 사이에선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주간동아 2000.06.08 237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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