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7

2000.06.08

실사구시 하려면 ‘몽니’는 끝내야지…

생존이 최우선, 슬슬 버티며 ‘내 몫 키우기’ …자민련 내부도 사실상 입장정리

  • 입력2005-12-08 1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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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사구시 하려면 ‘몽니’는 끝내야지…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사실에 근거하여 진리나 진상을 탐구하는 일, 또는 그런 학문 태도’.

    그러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JP)가 말하는 실사구시는 뜻이 좀 다른 듯하다. JP는 5월25일 자민련 의원 연찬회에서 “한마디로 우리가 택할 길은 실사구시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공리공론이나 관념에 빠지지 말고, 실질적 상황에서 ‘가장 이거다’라고 하는 것을 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꽤나 거창한 듯하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자민련)가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정치 행위가 무엇인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JP가 느닷없이 ‘실사구시론’을 꺼냈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JP의 정치철학은 불리한 처지에서도 상황 전개에 편승해 항상 정치 실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그 이상 넘어간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80년의 봄’ 이후 신민주공화당 창당→3당 합당(민자당 창당)→김영삼 정권 성립→민자당 탈당(자민련 창당)→DJP 연합→김대중 정권 성립→DJP 공조 파기선언→16대 총선 참패→실사구시론 제창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수순이 모두 그렇다.

    이 모든 과정에서 JP는 한번도 집권 주체가 되지 못했고, 그가 이끄는 당도 원내 제3, 4당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는 여권 울타리 안에서 맴돌았고, 때론 과도한 ‘권력의 파이’를 나눠 가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수 정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 절묘한 변신을 해왔다.

    자민련의 한 고위 당직자는 ‘실사구시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보고 총선 때 말한대로 야당 하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만 17석 의석 가지고 무슨 야당을 하느냐. 우리 중 20석도 못 건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야당 할 힘도 없다. 지금 상태로라면 원내교섭단체도 되지 않는데 무슨 야당이냐. 어찌 되었든 살고 봐야 되는 것 아니냐. JP의 심정도 아마 이랬을 것이다.”



    5월25일 자민련 의원 연찬회에서 드러난 JP의 심경도 사실 그랬다. 그는 “말을 바꿨다고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17명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느냐”면서 “국정 책임은 시민연대나 논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있는 것”이라고 말해 비판적인 여론 동향에 상관없이 DJP 재공조를 추진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정치적 생존을 위한 길이라면 시중의 여론 따위는 무시하고 나가겠다는 ‘실익 지상주의’를 표방한 셈이다.

    그렇다면 JP가 “DJP 공조 불가”에서 ‘재공조’로 입장을 바꾸는 동안 막후에서는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사실 총선 후 한달 반 동안 DJP 사이에 벌어진 일은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이 줄기차게 JP의 청구동 집을 노크한 것밖에 없다. 선거가 끝나고 나흘만인 4월17일 청구동을 방문한 한실장은 JP로부터 “뭣하러 왔어”하는 꾸지람만 듣고 거의 문전박대 당하다시피 했지만, 그 이후로 계속 JP와의 회동에 공을 들여왔다. 어차피 정국 주도력을 얻기 위해서는 자민련 17석의 도움이 절실했고, 자민련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JP의 몽니를 풀어주는 것이 선결 과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와중에 JP가 “김대통령이 완전히 나를 짓밟으려 했다” “공조는 하지 않는다” 등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였지만, 청와대는 JP가 정말로 ‘딴 맘’을 먹은 것으로는 보지 않았던 듯하다. 민주당 한 핵심 관계자의 얘기. “집권 초부터 우리는 JP를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좌표를 분명하게 설정했다. 지역구도에 따른 한계가 분명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각제 개헌 여부는 별 문제다. JP가 이상한 소리 했다고 해서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JP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라. JP가 정치 경력으로 따지면 저 밑에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공조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JP를 붙잡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 이총재의 포용력을 문제삼는 분위기도 있는 모양이지만 어차피 이총재는 JP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한실장이 이한동총재의 총리 지명을 위해 JP를 방문한 5월20일 이전에 나왔던 JP의 발언은 ‘파이 키우기’의 과정으로 해석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다시 말해 재공조의 전제 조건으로 자민련이 얻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를 최대한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불편한 심사를 직설적인 화법으로 표출한 셈이다.

    청와대로서도 JP의 이런 속내를 알고 ‘진사(陳謝) 작전’으로 나갔던 것.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낮추는 것은 4월 중순부터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다만 박태준 전총리의 부동산 명의신탁 문제만 터지지 않았으면 밀고 당기는 조정기간이 한참 더 오래 갔겠지만, 박 전총리의 경질이 JP로 하여금 더 이상 몽니만 부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자민련의 한 중진의원은 “청와대는 DJP 재공조로 우리에게 나눠줄 지분에 대해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충청권에서 8석을 가져간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말한다. 이 의원은 또 “지금까지 자민련에서 8명이 입각했는데 최소한 3, 4석은 돼야지”라며 “그 정도는 별 어려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상자기사 참조).

    DJP 재공조와 관련해 이제 남은 것은 김대통령과 JP의 청와대 회동, 그리고 합당 문제다. 청와대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DJP 회동을 추진한다는 입장이고, 자민련 내부 분위기도 이에 굳이 반대하는 기류는 없다. 그러나 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JP가 내각제 문제를 거론할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 의석수가 133석이나 되고, 총선 이후 이회창총재의 구심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터라 설혹 김대통령이 이에 동의한다고 해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도에서의 JP는 DJP 회동의 조건으로 내각제가 거론된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뭘 모르는 소리”라고 힐난했다는 후문이다. 자민련의 한 고위 인사도 “우리 국민이 대통령은 내 손으로 직접 뽑아야 한다는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정치권 주도의 내각제 개헌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당 문제는 민주당 분위기와 자민련 분위기가 여전히 엇갈리고 있어 뭐라 단정하기가 어려운 상태. 민주당은 DJP 회동 결과가 자연스럽게 양당의 합당으로 옮겨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민련의 교섭단체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어차피 총선의 민의가 양당제 정착으로 나타난 만큼 자민련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주당의 판단이다.

    합당 후 JP 총재설도 나온다. 그러나 자민련은 여전히 ‘교섭단체 등록 후 후일 도모’의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JP만 하더라도 최근 한 인터뷰를 통해 “드골은 ‘프랑스가 나를 버렸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안한다. 내가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해 ‘독자적 구상’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모색에도 불구하고 ‘JP의 힘’이 상당 부분 약화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듯하다. 우선 충청권의 대표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실사구시’를 추구한데 따른 명분의 상처도 깊다. JP가 좋아하는 말의 하나가 ‘국민을 호랑이로 알아라’는 미국 트루먼 전대통령의 말. 지금 JP는 정말로 국민을 호랑이로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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