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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 디지털 혁명

한물 간 ‘땡땡이 옷’ 닷컴으로 부활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 너도나도 물방울무늬 선보여…국내시장서도 부쩍 “눈에 띄네”

한물 간 ‘땡땡이 옷’ 닷컴으로 부활

한물 간 ‘땡땡이 옷’ 닷컴으로 부활
“나잡아봐라~”하고 달려가는 여자와 그 뒤를 쫓는 남자. 결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여자는 늠름한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행복해한다.

엄앵란 신성일 등의 청춘스타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60, 70년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 당시 여주인공들이 즐겨 입었던 옷은 단연 물방울무늬 원피스였다. ‘땡땡이’로 불리기도 했던 물방울무늬는 80년대 초반까지 여성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가 ‘촌스럽다’는 이유로 외면당해 한동안 거리에서 사라졌다. 그런 물방울무늬가 새 천년을 맞아 새로운 패션트렌드로 부활하고 있다.

올 여름 컬렉션 대유행 예고

물방울무늬를 패션용어로는 ‘도트 프린트’라고 한다. 도트(dot)란 ‘점’을 말하는 것으로 인터넷 주소를 뜻하는 ‘~.com’(닷컴)이라고 할 때의 그 ‘점’이 바로 도트다. 작은 것은 점이고 좀 큰 것은 물방울무늬인데, 올 봄부터 여름까지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이 도트 프린트를 이용한 의상을 일제히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물결이 패션업계에도 몰아친 것일까. 세루티, 프라다, 돌체&가바나, 랄프 로렌,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등의 디자이너들은 올 여름 컬렉션에 크고 작은 물방울무늬가 새겨진 원피스와 웃옷, 소품들을 선보였다. 프라다의 경우 핀 도트(작은 점) 무늬의 블라우스와 스커트 등으로 복고적이면서 성숙된 여성미를 표현했고, 안나 몰리날리의 경우 시폰 소재에 오렌지 그린 옐로 등으로 도트 무늬를 넣은 투피스를 선보였다.

우리나라 브랜드와 동대문 등 보세시장에서도 원피스와 블라우스, 팬츠, 스커트, 가방에까지 도트 프린트가 사용된 상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올해 유행하는 물방울무늬는 색상이 훨씬 다양하고, 점들이 모여 원을 형성하거나 선과 어우러져 기하학적 도형을 만들어 내는 등 예전보다 훨씬 다채로운 것이 특징. 대부분 컴퓨터그래픽으로 디자인한 정교한 물방울무늬를 적용했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A라인 원피스에 목 부분은 네모나게 파인 디자인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연상시킨다.

인터넷이 현대인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면서 패션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물방울무늬는 오늘날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는 복고주의와 로맨티시즘의 산물이다.

19세기 말 폴카 댄스가 유럽에서 유행하면서 처음 등장한 물방울무늬는 1950년대 ‘티니 위니 옐로 폴카 도트 비키니’라는 노래 제목의 팝송이 나올 만큼 크게 유행했고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온 영화 ‘프리티 우먼’ 때문에 80년대 후반에도 한동안 성행했다.

물방울무늬는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남녀 모두가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방울 패턴은 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가장 흔한 기하학적 모티브로 영원, 유일, 생명의 주기, 자연세계의 상징이다. 별과 달, 해 등이 모두 둥근 형태이기 때문에 원은 곧 우주를 연상시킨다. 또한 원은 흔히 여성의 에로티시즘(sex symbol)과 연관이 있다. 물방울무늬는 여성의 유방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갖게 해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막연한 쾌감에 빠지게 한다는 것. 즐겁고 명랑한, 그리고 여성적인 이미지의 물방울무늬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는 데 주력하는 새 천년의 패션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패션연구소 패션기획팀 서정미과장은 “다양한 색채와 패턴물을 이용한 로맨틱한 패션의 유행은 검정 회색 등의 무채색과 솔리드가 유행하던 세기말과는 크게 대비되는 현상”이라면서 “새 천년이 시작된 데 따른 기대심리와 낙관론이 패션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주위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패션 등 다른 면에서 상쇄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기계적인 사무기기인 컴퓨터가 액세서리나 놀이기구처럼 아름다운 색상과 모양으로 바뀌고 있듯, 패션을 통해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귀엽고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꽃무늬, 물방울무늬와 함께 컬러도 화려해졌다. 핑크 옐로 그린 오렌지 등 파스텔톤 컬러와 화이트 레드 블루 등 다양한 컬러가 거리를 물들이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지난 시즌 모든 장식이나 디테일이 절제됐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장식들이 즐겨 채용되고 있다. 스팽글, 비즈, 크리스털 등의 장식이 상의 하의 가릴 것 없이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사용되면서 패션의 ‘페미니즘’ 경향이 두드러졌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성(性)의 구분이 없는 실용적인 의상들과 스포츠웨어가 유행했다면 이제 패션은 다시 여성스러운 것으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복에서 두드러진 프린트물의 유행은 지난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거리는 온통 호랑이와 뱀무늬의 물결이었다. 조이너스 디자인실장 전미향씨는 “세기말의 사람들은 차가운 테크노 사회가 주는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연과 본능의 세계에서 풀어보고자 했고 이것이 야성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동물성 프린트의 유행으로 나타났다. 봄부터 시작된 플라워 프린트, 도트 프린트 등과 밝은 컬러의 유행은 공격적이고 강렬한 이미지의 애니멀 프린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다소의 촌스러움까지 감수하는 복고적 경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옷에다 이런 무늬를 만들기 위해 일일이 손으로 디자인하고 물감으로 염색했지만 이제 패션디자인에도 컴퓨터 작업은 필수다. 컴퓨터그래픽의 발달로 예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화여대 장식미술과 김혜연교수(복식디자인)는 “소비자의 욕구와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하고 개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또한 제품의 생산가를 낮추고 품질의 균일화를 이루기 위해서 패션디자인에도 컴퓨터작업이 늘고 있다. 이제 컴퓨터는 바늘과 실, 또는 가위처럼 의상 디자인에 필수품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날로 발전해 가는 테크놀로지와 ‘촌스러운’ 물방울무늬의 만남은,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오감(五感)을 잠시나마 즐겁게 한다.



주간동아 2000.06.01 236호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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