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5

2000.05.25

누군가 당신의 이메일을 엿본다면…

뉴욕타임스 “직장 38%서 검열”…사생활 ‘발가벗기기’ 또다른 방법 ‘충격’

  • 입력2005-11-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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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당신의 이메일을 엿본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밤새 자신에게 온 이메일(e-mail)을 체크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메일을 통해 친구들과 잡담을 주고받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되었다. 때로 이메일은 혼자만의 고민을 상담하는 통로로, 또는 사내 연애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이 이처럼 매일 주고받는 이메일을 누군가가 엿보고 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다름 아닌 당신의 직장상사라면?

    이 으스스한 상상은 미국에서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자사 직원들의 이메일을 검열하는 회사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직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과 이메일을 검열하는 회사의 비율은 38%에 이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이런 추세라면 2, 3년 안에 거의 모든 회사 관리자들이 직원들의 이메일을 엿보고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회사의 관리자가 직원들의 이메일을 검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슈퍼스카우트’(Super Scout)나 ‘엑스브이메일’(xVmail) 등의 검열 전문 소프트웨어들은 회사 구성원들이 근무시간 중에 검색하는 인터넷 사이트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주고받는 모든 이메일의 내용까지 관리자에게 곧바로 보내준다. 이 소프트웨어들은 하루에 가장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은 직원들, 그리고 용량이 큰 메일로 회사의 컴퓨터 시스템에 과부하를 준 직원들의 명단을 일목요연한 도표로 그려주기도 한다. 관리자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어떤 직원이 인터넷을 통해 주식투자를 하며, 어떤 직원이 친구들과 지저분한 성적 농담을 주고받는지, 또 어떤 직원이 다른 직장으로의 전직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과거에는 관리자가 직원들의 모든 이메일을 검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6개월 동안 검열 전문 소프트웨어들은 속속 신기술을 선보였다. 검열 소프트웨어에 몇 가지의 단어들, 회사나 직장 상사의 이름, 인종차별, 성희롱 등에 연관된 단어들을 입력해 두면 이 단어들이 포함된 이메일들이 자동으로 검색되어 관리자의 컴퓨터로 보내진다. 또한 직원이 회사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기만 하면 어떤 장소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더라도 검열 소프트웨어의 감시를 피할 수 없다.

    회사가 직원의 이메일을 검열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이 너무 큰 용량의 이메일을 주고받는 바람에 회사의 컴퓨터 서버가 종종 다운된다는 점이다. 특히 인터넷 세일즈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판매회사들에 컴퓨터 서버의 다운은 판매 손실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관리자들이 이메일을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회사의 기밀을 유출하는 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슈퍼스카우트로 직원들의 인터넷 사용명세를 검열하는 장난감 판매회사 ‘리트비크’의 매니저 앤드루 퀸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주고받는 이메일 중 최소한 50%는 회사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이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 이용자 개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사생활 노출, 예를 들면 자신의 신상명세가 모르는 사이에 판매전문회사로 빠져나간 경험을 누구나 한 두 번 이상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와 이메일 검열은 다른 문제다. 이메일을 엿보는 주체는 막연한 그 누군가가 아니라 매일 회사에서 얼굴을 마주치며 승진이나 해고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직장 상사인 것이다. 더구나 이메일의 내용 역시 개인신상명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밀한 사생활 아닌가.

    미국의 법은 기업의 이메일 검열에 대해 별다른 방어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편을 들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몇몇 주에서는 회사가 직원들 몰래 이메일을 검열하는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가 ‘공개적으로’ 이메일을 검열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미 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이메일은 봉해진 편지가 아니라 누구나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엽서와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수신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메일의 내용을 본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 한술 더 떠서 고용주가 피고용인의 이메일을 검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아무런 경고 없이 이 약속을 어겨도 현재의 법으로는 고용주를 처벌할 수 없다.

    회사가 이메일을 근거로 직원을 해고할 수도 있다는 데에까지 이르면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몇 년 전, 펜실베이니아주(州)의 필스버리사는 너무 많은 양의 이메일을 주고받는다는 이유로 마이클 스미스라는 직원을 해고했다. 회사가 직원의 이메일에 대해 상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일을 기억한 스미스는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필스버리사를 법원에 제소했다. 법원의 판결은 의외였다. 법원은 스미스가 회사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메일의 내용을 ‘완전한 사생활’로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스미스는 패소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는 이메일의 내용을 문제삼아 스물 세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직원들의 무더기 해고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평소에 직원들의 이메일을 모두 검열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만 인사부에 근무하는 이들 스물 세 명은 회사의 기밀과 관련된 사실을 유출하려 했거나 ‘부적절한’ 내용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사례는 회사의 기밀뿐만 아니라 성적인 농담, 또 인종차별적인 내용의 이메일을 주고받아도 충분한 해고 사유가 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은 자신의 일상이 5000개의 카메라에 의해 24시간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 살아간다. 인터넷 상에서는 어떤 프라이버시도 가질 수 없는 ‘제로 프라이버시’(Zero Privacy)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또 하나의 트루먼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고 있는 인터넷은 바로 조지 오웰이 예언한 ‘빅 브러더’의 또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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