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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사교육이 미쳤다

초교 4학년이면 늦다?!

3학년부터 대입 레이스 시작, 하루 12시간 집중 수학학원 성행, 예체능 경쟁도 살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초교 4학년이면 늦다?!

초교 4학년이면 늦다?!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학원 셔틀버스들. 동아일보

새 학기를 앞두고 학부모들의 마음은 더욱 분주하다. 이유는 바로 학원 선정 때문이다. 아이를 어느 학원에 보낼지 고심하며 지난겨울부터 학원 탐방에 열을 올린 학부모들은 새롭게 시작되는 학습 플랜에 아이보다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부모의 정보력이 곧 아이의 성적’이라는 믿음이 공고화하면서 사교육 시장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교내 대회 입상을 위해 수백만 원짜리 과외를 받고, 하루 12시간 수업하는 수학학원은 자리가 없어 못 보내는 게 우리나라 사교육의 현실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초중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약 18조2000억 원이며, 참여율은 67%에 달한다.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6시간. 얼핏 그다지 무리한 수준은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는 엄연히 평균 수치일 뿐, 서울 대치동·목동·중계동 등 ‘사교육 공화국’이라 부르는 곳에서의 사교육 의존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먼저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선행의 필수화’다. 선행 나이도 점점 낮아져 요즘은 초교 입학과 동시에 선행을 준비한다고 보면 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주부 A씨는 “큰아이(현재 중3) 때만 해도   3년 선행이 기본이었는데, 요즘은 5~6년을 앞서가는 아이들이 있다. 특히 수학은 초교 3, 4학년 때부터 중학교 수준을 시작해 6학년 전에 중학교 과정을 마스터하고, 좀 더 한다는 아이는 고등학교 과정까지 들어간다. 영어는 중학교 때까지 다 끝내놔야 고등학교 가서는 진짜 중요한 과목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대학 입시를 위한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초교 3, 4학년 때부터 대입을 준비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수학학원 두 곳 기본, 문제 못 풀면 안 보내

요즘 대치동 학원가에서 가장 큰 이슈는 수학과 과학이다. 그 배경에는 영재학교·과학고·자율형사립고(자사고) 같은 특수목적고(특목고) 진학이 있다. ‘일반고 나와서는 대학 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사고와 특목고의 대학 진학률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경우 학교 내신이 대입과 직결되는 구조다. 서울과학고의 경우 2016년 대학 입시에서 재학생 절반 이상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이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학과 과학을 선행 중인 초교생의 경우 “영재학교·과학고를 목표로 한다”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일명 ‘수올·물올·화올’이라 부르는 수학·물리·화학 올림피아드대회를 위해 초교 고학년 때부터 경시대회 전문학원에 다닌다. 주부 A씨는 “대치동에서 문 닫고 새벽 2, 3시까지 하는 학원이 다 그런 곳”이라며 “영재학교나 과학고가 아니어도 수학과 과학을 못 하면 대학 가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 초교 때부터 수학, 과학 학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학원비는 중학생 기준 수학학원은 주 2회 월 60만 원대고, 과학은 주 1회 월 30만 원 정도. 특히 수학학원은 보통 2개 이상 보낸다. 학교 진도를 위한 보습학원 개념의 학원과 ‘사고력 수학’이라는 고난도 문제를 다루는 학원을 병행하는 것. 여기에서 좀 더 잘한다 싶은 아이는 선행 위주의 경시대회 학원을 추가한다. 반포동에 사는 한 학부모는 “주변에 수학학원만 4군데 보내는 엄마가 있다. 어디가 좋다는 소문만 들리면 어떻게 해서든 아이 스케줄을 조정해 보내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수학 한 과목에 드는 비용만 200만 원에 달하는 셈이다.
그룹 과외도 여전히 성행 중이다. 엄마들 실력은 팀을 얼마나 잘 꾸리느냐로도 판가름 난다. 유명 강사를 붙였을 경우 그룹당 과외비는 월 1000만 원 정도로, 인당 200만~250만 원가량 든다. 유명 강사는 대부분 학원 소속으로, 학원가에서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면 과외 러브콜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하루 6~12시간씩 집중하는 수학학원이 유행이다. 보통 사고력 수학을 내세우는 학원들이다. 과연 아이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은 만족도가 높은 편. 더욱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학원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수학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어떻게든 학원에 보내려고 안달이다. 한 사립초교 3학년생을 둔 학부모 B씨는 최근까지 자신의 아이가 다녔던 수학학원을 소개하며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 4시부터 학원에 가면 밤 10시까지 못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업은  2시간이지만 이후 미션 문제가 10개 정도 주어지는데, 이 중 하나라도 패스하지 못하면 집에 올 수 없다. 보통 교사 두세 명이 채점하고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사이 엄마들은 도시락을 준비해 와 학원에 맡긴다.



학원 수업 따라가기 위해 등장한 ‘새끼 과외’

초교 4학년이면 늦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위). 영재학교·과학고 입시를 중점으로 하는 학원들이 성업 중이다. 동아일보 동아일보

또 다른 학부모 C씨도 비슷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중학교 2학년인 아이를 서초동 집 근처 학원에 보낸다는 C씨는 “수학 단원별 개별 학습 지도가 가능한 소규모 학원인데, 아이가 도형을 중점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해서 보내기 시작했다. 원장 선생님이 일대일로 개념 정리를 해주면 보조 교사 네다섯 명이 문제풀이만 중점적으로 해준다. 문제를 다 맞히지 못하면 집에 안 보낸다. 처음에는 아이가 밥도 못 먹는 게 걱정이 돼 아이 좀 보내달라고 학원에 전화를 했더니, 원장 선생님이 안 그러면 진도를 뺄 수 없다며 이런 전화는 자제해달라고 하더라”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영어는 수학에 비해 훨씬 이른 시기부터 사교육이 시작돼 중학생 때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그 첫 시작점은 영어유치원이다. 실제로 사립초교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영어유치원 출신이다. 사립초교의 경우 입학과 동시에 영어 수준을 가르는 평가가 행해지고, 그 결과에 따라 영어수업 반 배정이 진행된다. 서울 한 사립초교 학부모 D씨는 “입학 때 정해진 레벨이 졸업 때까지 그대로 간다고 보면 된다. 하위 클래스 아이들이 상위 클래스를 뛰어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들은 더욱 앞서 나가기 마련이다. 결국 시작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영어유치원을 안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초동에서 유학원을 운영 중인 최모 씨는 “이 동네 경우 초교생은 영어유치원 3년(5~7세)은 기본이고, 과외든 학원이든 거의 전부가 영어 사교육을 받는다. 비용은 제각각인데 대치동 보습학원은 주 2~3회 월 30만~40만 원 선이고, 영어유치원 출신들은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다니는데 그 비용이 월 70만~80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
영어유치원 출신 아이들은 대치동에서 ‘빅3’라 부르는 영어 학원에 주로 다닌다(빅3는 수시로 바뀐다). 빅3에 들어가려면 레벨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하고, 수업 내용은 원어민과 회화를 포함한 토론 위주 학습이 주를 이룬다. 수업 교재도 미국 교과서를 사용한다. 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2.1’ ‘3.2’ 등으로 레벨이 나뉘는데 2.1은 미국 학교 기준 2학년 1학기, 3.2는 3학년 2학기인 셈이다. 수준이 너무 높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의 경우 ‘새끼 과외’를 받기도 한다. 최씨는 “빅3 학원의 경우 숙제가 너무 많고 어려워서 그걸 따로 봐주는 선생을 붙이는 엄마들도 있다. 사교육을 위한 또 다른 사교육인 셈이다. 특히 초교생 엄마들이 영어 욕심이 많은데 주변에 보면 토플 100점은 기본인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어 잘하는 아이들 비중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2018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적용된다. 강남지역에 특정되는 얘기일 수 있으나 이미 중학생 사이에서 영어 변별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반포동 소재 한 중학교 학부모인 E씨는 “입학 후 반 배치용 학력평가를 실시하는데 영어는 1개 이상 틀리면 하위 반에 배정되고, 말하기 평가에서도 조금 더듬었다 싶으면 점수가 확 깎인다”고 설명했다.
교내 대회가 사교육 촉발제로 작용한 지도 이미 오래됐다. 초교생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교내 대회는 일명 ‘과탐토’라 부르는 전국 과학탐구토론대회다. 교육청에서 주제가 내려오면 보통 3명이 팀을 이루고 대치동 학원 강사를 붙여 300만~400만 원 상당의 과외를 시작한다. 부담하는 금액이 인당 100만 원이 넘는 셈이다. 강사비에 따라 수상 내용이 달라진다는 게 통설이다. 주부 A씨는 “초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 연계되는 대회여서 엄마들이 가장 많이 탐을 낸다. 대치동 학원 선생을 중심으로 팀이 꾸려지면 대학 실험실을 빌려 아이들과 직접 실험하고, 보고서 작성에도 깊이 개입하는데, 학원 강사가 추론한 내용을 역으로 아이들에게 주입해 토론에 임하게 하는 식이다. 수상작 보고서를 보면 하드커버만 없을 뿐 웬만한 대학논문 뺨친다”며 혀를 내둘렀다.





교내 대회 수상하려면 고액 과외 필수

초교 4학년이면 늦다?!

엄마들이 주축이 돼 꾸려지는 스포츠클럽은 아이들 체육활동은 물론, 사교육 정보 교환의 장으로도 활용된다. 스포츠동아

예체능도 아이들에겐 더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교내 대회 준비를 위해 추가로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한 사립초교에서는 피아노 방과후 교사가 교내 기악 대회를 앞두고 특정 아이를 과외로 가르쳐 엄마들 사이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해당 학교 한 학부모는 “전통적으로 가을에 피아노 대회가 열리는데, 욕심 있는 아이들은 여름부터 곡 하나를 지정해 과외를 받으며 죽어라 그 곡만 판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선생에 피아노 반주 선생까지 붙여야 하는데, 악기를 하는 아이는 대부분 교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대회를 앞두고 밤새 바이올린 연습을 시키다 1000만 원짜리 현을 부러뜨렸다’며 울상 짓는 엄마도 봤다”고 말했다. 회당 레슨 비용은 최소 8만 원에서 10만 원 선. 과외비는 현금 거래가 불문율이다. 이 학부모는 “아이를 교내 오케스트라에 넣으려고 ‘막장 드라마’ 찍는 엄마들이 한둘이 아니다. 온갖 음해와 험담에 촌지까지 오간다. 어떻게든 아이를 단원으로 만들려고 경쟁률 낮은 마림바, 심벌즈 등 타악기를 극비리에 배워 오디션에 뽑히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이토록 교내 오케스트라에 목을 매는 이유는 선후배 라인을 비롯해 중고교 입학을 위한 스펙으로 꾸준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영이나 스케이트 같은 운동에서도 사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초교 입학 후 수준별로 그룹을 나눠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상위권에 들기 위해 개인 교습을 따로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사립초교 학부모 D씨는 “경기 과천 스케이트장에 개인적으로 일주일에 3번씩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결국 그런 아이들은 200만 원 넘는 선수용 ‘금날’ 스케이트화를 신게 되더라. 뭐든 톱클래스에 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시키는 거다. 선수복 맞추는 데 드는 비용도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러 명이 소속된 스포츠클럽 활동은 성인 사교모임 뺨친다. 보통 남자아이 따로, 여자아이 따로 뭉치는데, 이런 모임은 초교 입학과 동시에 발 빠르게 조직된다. 이때 모임에 끼지 못하면 자리가 나기 전까지는 들어가기 힘들다고 한다. 남자아이들은 보통 축구·농구교실을 중심으로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스키캠프를 함께 다닌다. 스키캠프는 당일치기로 일주일에 한 번, 4주에 걸쳐 보내는데 갈 때마다 2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여자아이들도 기초체력을 키우려는 욕심으로 운동모임을 조직하는데, 대체로 학교 체육수업과 연계되는 뜀틀, 줄넘기 등을 배운다고 한다.
스포츠클럽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생일 파티 멤버가 된다. 스포츠센터에서 장소 제공부터 레크리에이션까지 도맡아 해주기 때문에 엄마 처지에선 편하게 생일파티를 할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인 딸과 초교 3학년인 아들 모두 스포츠클럽 활동을 한다는 한 학부모는 “이 모임에 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들도 유대관계가 좋다. 큰아이는 중학생이라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금요일 밤 10시에 운동을 시키는데 공부 부담이 커져서 출석률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엄마들 간 인맥관리를 위해 돈만 내고 관계를 유지하는 엄마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학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초교 4학년이면 늦다?!

영재학교나 과학고를 목표로 사교육에 매진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동아일보

중학생 때부터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이력을 위한 사교육도 동원된다. 영어스피치대회, 영어독후감대회, 인문독서토론대회 등 교내 대회 수상 경력 등이 중요한 이력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교내 임원으로 활동한 경력을 만들기 위해 학기 초만 되면 회장선거 준비용 스피치 과외가 성행한다. 주부 E씨는 “지난 학기에 중2인 딸이 회장선거에 나온 친구를 도와 선거 포스터를 만들어준 적이 있는데 날마다 선거 유세를 위해 스피치 강사가 집으로 왔다고 하더라. 선거에 나온 또 다른 친구 2명도 그 친구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독서 이력을 늘리기 위해 부모는 일종의 꼼수도 불사한다. 책 내용만 정리한 요약본을 만들어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아이에게 읽히는 것. 독서 이력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전략적으로 자신의 진로와 연관된 책 리스트만 올리는 경우도 많다. 주부 E씨는 “주변에 흉부외과 의사가 꿈인 아이가 있는데, 학생부에는 의학 관련 책만 쭉 올려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더라. 그걸 잘 만들어주는 학교가 일명 명문학교이고, 대학 입시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초동의 한 자사고는 학생부 세부특기사항란에 과목마다 선생님들이 500자씩 빽빽하게 써준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면 그 아이의 학생부는 자그마치 25장이 넘는다. ‘자소서(자기소개서), 학생부로 대학 간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학생부가 대학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다 보니 최근에는 인터넷 사이트 NEIS(교육인적자원부 지원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서 아이의 학생부 내용을 조회한 뒤 이의를 제기하는 학부모도 종종 있다. 또한 학생부 관리 비법을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도 활성화돼 있다.
이쯤 되면 과연 아이들이 사교육을 견뎌내는 게 가능할까 싶은데, 막상 사교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은 ‘괜한 걱정’이라고 반박한다. 요즘은 아이들 스스로 질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 어려서부터 온갖 사교육에 노출된 아이들로선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대치동에서 10년 동안 영어 강사로 활동한 김모 씨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조금도 딴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가 농담을 하면 바로 얼굴색이 바뀌고 아예 책상에 엎드린다”고 말했다.
문제는 돈이 있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것. ‘강남거지’(아이 교육 때문에 강남에서 살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경우), ‘성골친구’(강남에서 나고 자라 어려서부터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란 친구)라는 신조어들은 사교육의 추한 민낯과 천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을 타계할 명확한 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인터뷰 |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 “선행해서 대학 가면 다시 의·치대 준비, 안 되면 대치동 강사”


초교 4학년이면 늦다?!

박해윤 기자

영재학교·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초교 3, 4학년 때부터 경주마처럼 달려온 아이들은 목표 달성 후 그보다 더 치열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재학교·과학고 학생들의 심각한 사교육 실태를 진단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포럼을 개최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내 수학사교육포럼의 최수일 대표(사진)는 그 이유에 대해 “영재학교·과학고의 무리한 대학 과목 선행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국 8개 영재학교는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AP(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 선이수제도) 등 심화 선택 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일반고교 교육과정을 초압축적으로 줄여서 운영하고 있다. 과학고도 올해부터 AP를 시행하는데, 그중 서울과학고를 보면 수학 기본 필수 과목이 네 과목(수학Ⅰ, 수학Ⅱ, 수학Ⅲ, 수학Ⅳ)으로, 이는 일반계 고교 수학 교육과정 30단위를 압축해 절반인 15단위로 편성한 것이다. 결국 재학생은 선행학습, 추후학습, 대비학습을 위해 주말마다 기숙사에서 나와 곧장 서울 대치동 학원으로 이동한다.
“과학고나 영재학교는 유일하게 내신으로 대학 가는 학교이다 보니 교사들 권한이 엄청납니다. 학교 커리큘럼을 따라가야만 대학에 잘 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3~4년을 앞선 대학 과정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학원에 다니지 않고서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주중에 수학, 과학 교사가 수업 관련 유인물을 내주면 그걸 휴대전화로 찍어서 학원에 바로 보내요. 그러다 금요일 오후 기숙사에서 나오면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는 학원 차를 타고 바로 학원으로 가죠. 주말에도 대부분 학원에 갑니다.”
최수일 대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학교 간 경쟁을 원인으로 꼽는다. 최 대표는 “서로 자기네 학교가 훌륭한 학교처럼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과학고와 영재학교가 총 28곳인데 이들의 경쟁을 국가에서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영재학교의 선행학습은 순효과보다 역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나친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자퇴하는 아이도 늘고 있다.
“학교에 남아 있더라도 장기 결석하는 아이가 많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아이들은 심리치료를 받기도 합니다. 학교 보건실도 늘 아이들로 북적입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다는 증거죠.”
그럼에도 학교가 AP 등을 실행하는 이유는 대학 과정을 빠른 시일 내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포함한 국내 5개 과학기술대는 영재학교와 협약을 체결해 36학점까지 AP 학점을 인정해 빠르면 1년 반 앞서 조기 졸업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 종합대에 진학하는 경우다. 서울대는 영재학교 출신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지 않는데, 영재학교 출신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울대에 진학해 2년 정도 이뤄지는 교양과정 강의나 실험실습은 고교 시절 이미 다 선행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맘껏 노는 시간으로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과학기술대를 조기 졸업하면 남들보다 앞서 사회에 나가 인턴십을 하거나 해외 교환학생으로 나가고 연구소에서 학문 탐구에 매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졸업 후 사회 진출 보장이 안 되고 있어요. 이공계 연구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연구소도 너무 적고, 국가 예산 자체를 이공계 쪽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이 아이들은 대학을 빨리 졸업해서 남은 시간에 의대나 치대 재입학을 준비하고, 그도 아니면 상당 부분 대치동 학원 강사로 취업합니다. 아무리 수학을 잘한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취업을 하기는 매우 힘든 실정이에요. 수학을 깊이 있게 배운 것이 아니라 방대하게만 배웠기 때문입니다.”
최수일 대표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가장 큰 맹점으로 ‘즐겁지 않다’는 것을 꼽았다. 이는 교육의 목적성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그는 “영재학교에는 진정한 영재가 없다. 수학에 치를 떠는 아이들만 있을 뿐이다.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국가적 차원의 제동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6.03.02 1027호 (p30~34)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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