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그림 읽어주는 남자

그림 속으로 들어간 선비들

양팽손 ‘산수도’

  •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그림 속으로 들어간 선비들

그림 속으로 들어간 선비들

‘산수도’, 양팽손, 종이에 먹, 88.2×46.7cm,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도는 산과 물을 그린 그림입니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하고 구도도 복잡해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쓱 훑어보는 식으로 감상하면 감흥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옛 화가들은 직업화가와 문인화가로 구분했습니다. 장승업 같은 직업화가는 재량과 기능이 뛰어난 반면, 그림에 담기는 개념과 철학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반면 선비 출신 문인화가는 기능은 좀 떨어져도 그림에 담는 자신의 철학에 큰 의미를 두곤 했습니다.
문인화가는 대부분 관료 신분이라 여행을 하고 싶어도 좀처럼 기회가 없었습니다. 바쁜 현대인이 아름다운 풍경이나 관광명소 사진을 보며 떠나고 싶은 욕구를 달래듯, 조선시대 문인 역시 명산을 묘사한 산수도를 방 안에 걸어두고 짬이 날 때마다 상상 속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산수도를 유심히 보다 어느새 그림 속으로 훌쩍 들어가버립니다. 산수도 위쪽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낮은 평지가 이어집니다. 이 평지를 통해 감상자는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림 하단부에서 상단부까지 갈 지(之) 자 모양으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여행길에 오릅니다. 물론 중간에 배도 타고, 말도 보고, 정자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면서 산수화 속에 표현된 풍경들을 구경하고 체험합니다. 그러다 그림 상단부에 다다르면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엄청난 자연의 위용에 감탄하다 다시 내려옵니다. 30~40분 동안 그림 속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정말 제대로 여행을 한 것처럼 말이죠.  
양팽손의 ‘산수도’ 속 여행은 하단부 오른쪽에 자리한 작은 정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정자를 지나 왼쪽으로 가니 작은 초가집과 큰 기와집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평지여서 쉽게 걸어왔는데, 그 위로는 뭉게구름 모양의 엄청난 기암괴석들이 놓여 있어 이제부터 힘든 여정이 펼쳐집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르니 거대한 낙락장송 두 그루가 서 있고, 오른쪽 강가에 나룻배 한 척이 한가롭게 머물러 있습니다. 뱃사공은 노를 젓고, 사람들은 뱃놀이를 즐깁니다. 낙락장송 왼쪽으로 초가집 서너 채와 큰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에 올라 주연이라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자에서 잠시 쉬다 다시 산을 오르려 하니 높은 절벽이 나옵니다. 또다시 힘들게 산을 오르니 소나무 두 그루가 있고 선비들이 모여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끝자락입니다. 화면 위에 병풍처럼 펼쳐진 대자연은 신비이자 감탄의 대상입니다. 다시 내려가려 하니 아쉽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그림 하단부에 이리저리 뻗은 나뭇가지들은 마치 바닷게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표현됐습니다. 화면은 3단 또는 4단으로 구성돼 있고 뭉게구름 모양의 절벽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화면 맨 위에 있는 산들은 예리한 바늘로 꽂은 듯 섬세하게 표현됐습니다. 조선 전기 산수도의 특징이 잘 나타난 그림으로, 다른 작품을 감상할 때 중요한 참고사항이 됩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이 그림을 그린 이에 대한 설명이 있어 조선 전기 관료이자 학자, 화가였던 양팽손(1480~1545)의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광조의 친구였던 양팽손은 기묘사화(1519)에 연루돼 벼슬을 잃고, 1521년 낙향해 1545년 죽을 때까지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이 산수도는 양팽손이 운둔생활을 하는 동안 그린 것입니다. 







주간동아 2016.01.27 1023호 (p78~78)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