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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때 지었는데 왜?” 제각각 안전 기준 ‘목동’ 뿔났다

희비 엇갈린 신시가지 단지 “정권 바뀌어야 재건축되나”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비슷한 때 지었는데 왜?” 제각각 안전 기준 ‘목동’ 뿔났다



“오래된 배관이 만날 말썽이에요. 지난해 우리 집 바닥 배관이 터지는 바람에 아주 골치 아팠다니까요. 아랫집 천장까지 물이 새 수리했는데, 1000만 원 이상 들었지 뭡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배관 때문에 여러 번 골치를 썩었어요. 이런데도 재건축이 안 된다니….”

8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 내리쬐는 햇빛 속에서 목동신시가지의 상징인 ‘나무 목(木)’ 자 마크가 아파트 외벽에 선명하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살고 있는 70대 A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A씨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니 “직접 좀 보라”며 마룻바닥에 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검은 얼룩을 가리켰다. 큰돈 들여 수리한 배관에서 다시 물이 새는지 목재 바닥마감재 대여섯 군데가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A씨는 “목동신시가지 단지를 조성할 때 입주해 여태까지 살고 있다. 장성한 자식들도 여기서 다 키웠다. 30년 이상 한 집에 산 사람을 투기꾼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집값을 잡겠다는 나라의 뜻은 알겠지만 그저 ‘재건축하지 절대 하지 마라’는 식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 [조영철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 [조영철 기자]

“30년간 한 집 살았는데…”

11단지는 1988년 10월 준공된 1595가구 규모의 아파트다. 정부가 1980년대 서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울 서부 핵심지역으로 조성한 목동신시가지의 일부다. 서울지하철 2호선 양천구청역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하고 계남근린공원이 왕복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신시가지 단지의 서쪽 끝에 자리해 법정동 기준으론 신정동이다. 인근 주민들은 ‘앞 단지’ 1~7단지에 대비해 ‘뒤 단지’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파리공원’과 이대목동병원 사이에 형성된 학원가와의 거리는 앞 단지보다 멀지만 계남근린공원 등 녹지가 가깝고 아이 키우기에 좋다는 평이다.

최근 이곳 주민들은 재건축사업을 추진했으나 3월 31일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탈락했다. 1차 정밀안전진단 통과 후 여세를 몰아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좌절된 것이다. 아파트 재건축은 1~2차 정밀안전진단 통과 후 조합설립→사업시행→관리처분인가 등을 거쳐 진행된다. 이 중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토안전관리원이 전담하는 2차 정밀안전진단이 높은 ‘허들’이다. 국토교통부(국토부) 고시에 따른 ‘재건축 안전진단 평가’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구조안전성(50%)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재건축 평가에서 구조안정성 비율을 대폭 높였다(박근혜 정부 당시 20%). 구조안정성이 낮아 당장 재건축이 시급한 단지만 허가하겠다는 취지이나 불만도 만만찮다. 마감 및 설비노후도(25%), 주거환경(15%), 비용 편익(10%) 등 안전 진단의 다른 요소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날 만난 주민들도 △주차 공간 부족 △소방 설비 미비 △잦은 배관 고장 등 주거환경의 열악함을 호소했다.



한 주민은 “같은 신시가지 아파트인 6단지(1986년 11월 준공)는 (2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고 11단지는 떨어졌다. 준공 시기도 비슷한데 어느 한쪽만 당장 재건축해야 한다는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6단지는 지난해 6월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실시한 2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 목동신시가지 전체 14개 단지 중 현재까지 2차 정밀안전진단을 넘어선 유일한 사례다. 9, 11단지는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고배를 마셨고 나머지 11개 단지는 재건축 ‘숨고르기’ 중이다. 서울에서 재건축사업을 진행해본 한 주민 대표는 “같은 부모가 낳은 자식도 생김새와 성격이 제각각이듯 준공 시기가 비슷하다고 구조안전성이 같을 수는 없다”며 “그동안 단지 내 보수공사 기록을 얼마나 꼼꼼히 보관했는지 여부, 대대적 공사를 한 적이 없어 안전도가 낮다고 평가받는 것 등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2단지 아파트에 재건축 1차 정밀안전진단 통과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위). 8월 10일 오후 2시쯤 찾은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 낮이지만 단지 내 주차공간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조영철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2단지 아파트에 재건축 1차 정밀안전진단 통과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위). 8월 10일 오후 2시쯤 찾은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11단지 아파트. 낮이지만 단지 내 주차공간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조영철 기자]

“세입자 이미 내보냈다”

규제 일변도이던 재건축 정책에 잠시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7월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단지에서 2년 이상 실거주해야 분양 신청을 허용하기로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 규정을 철회했다. 지난해 6·17 부동산대책 일환으로 정부 여당이 예고한 ‘재건축 투기 규제’가 백지화된 것이다. 2년 실거주 요건이 무위에 그친 후 재건축이 활성화되고 전세난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다만 이날 현장 반응은 “그렇지 않다”였다.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는 “(재건축 실거주 2년) 규제가 없던 일이 되긴 했지만 이미 집 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들어와 사는 경우가 적잖다. 갑자기 집을 다시 세놓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전세 물량이 크게 늘진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천년만년 계속될 것은 아니지 않나. 주민 상당수는 ‘정권이 바뀌어야 재건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듯하다. 그래서 ‘매물 잠김’ 현상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실거주 2년 조건 백지화 후 현재(8월 12일)까지 11단지 아파트의 전세 계약 건수는 12건(23평형 5건, 29평형 7건)이다. 그 전 한 달(6월 12일~7월 11일) 동안 12건(23평형 6건, 29평형 6건)이 계약된 것과 같았다. 매매는 23평형 6월 24일(12억3000만 원), 29평형 6월 25일(15억7000만 원)을 마지막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주민들과 부동산 관계자들은 서울시 차원의 규제도 거래 둔화에 한몫했다고 입을 모았다. 4월 21일 서울시는 양천구 목동·신정동 일대 신시가지 14개 단지와 강남구 압구정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성동구 성수동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7 보궐선거 후보 시절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공약했다. 취임 후 5월 26일엔 “재건축을 정상화해 2025년까지 서울 시내 24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다만 “(취임 후) 재건축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일부 단지에서 시장 교란 행위가 감지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고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에 효과가 있는 재개발사업부터 규제를 완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주민은 “재건축 추진에 힘을 실어달라고 오 시장을 찍었는데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 실망이 크다”고 불만을 표했다.

목동신시가지 단지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2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6단지의 상황은 어떨까. 6단지는 목동 학원가와 명문으로 불리는 양정중고, 한가람고가 가깝다. 중고생 자녀를 둔 세입자가 선호하는 단지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살았다는 한 주민은 “다른 단지 주민들은 ‘6단지는 2차 (정밀안전진단) 통과해 좋겠다’고 하는데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며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풀 생각이 없고, 믿고 뽑은 오 시장도 재건축 추진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나. (재건축 추진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듣긴 했지만 진척이 너무 느려 답답하다”고 말했다.

6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지난달 도시계획업체를 선정했다. 3~4개월가량 걸린다는 정비계획 수립을 지구단위계획 고시 전 미리 준비하려 한다”며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하루빨리 고시했으면 한다. 우리 단지 소유주는 대부분 오랫동안 같은 동네에 살았다. 기왕에 진행된 재건축사업이 속히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구단위계획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각 건축물 용도와 용적률 등을 망라한 일종의 도시정비 아웃라인이다.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돼야 토지이용계획 등 재건축·재개발의 후속 단계가 이뤄질 수 있다. 목동 지구단위계획의 경우 신시가지 1~14단지 모두 해당되는 사안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6단지 아파트. [조영철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6단지 아파트. [조영철 기자]

규제 위한 규제

재건축·재개발 전문가인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재건축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돼도 입주까지 10년 넘게 걸린다. 자신과 가족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중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해야 한다. 특히 까다로운 2차 정밀안전진단 통과가 관건”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현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기조는 ‘규제를 위한 규제’로 보인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등 서울 시내 노후 아파트는 1988년 내진설계 의무 적용 규정이 도입되기 전 지었다. 당장 무너질 정도로 취약하진 않아도 지진이 발생하면 위험하지 않겠나. 정부가 재건축을 권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럼에도 비슷한 시기 준공된 노후 단지의 정밀안전진단 결과가 제각각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현행 안전 기준의 모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만일 재건축 규제가 조금씩 풀린다면 1980년대 지은 목동지역 아파트가 대표적 수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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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02호 (p18~20)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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