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9

2020.10.08

공중급유기, 국장장관 미국 출장에 이용하면 전력공백에다 민항기 탑승의 4배 비용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0-07 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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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정경두 당시 국방부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1월15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정경두 당시 국방부장관(오른쪽)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양국은 매년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한미안보협의회(ROK-US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 일명 SCM 회의를 한다. 1968년부터 시작된 이 회의는 서울과 워싱턴에서 번갈아 가며 열리는데, 지난해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서울로 왔기 때문에 올해는 서욱 한국 국방부 장관이 워싱턴으로 갈 차례다. 

    지난해 11월 14일 한국에 왔던 에스퍼 장관은 VC-32 VIP 수송기를 타고 왔다. 미국의 국방부 장관에게는 유사 시 핵전쟁 지휘기로 쓰이는 E-4B, 일명 ‘둠스데이 플레인(the doomsday planes)’이 전용기로 배정되지만, 지난해 당시에는 보잉 757을 개조해 만든 20년 된 낡은 인원 수송기 VC-32를 타고 왔다.

    낡은 수송기 타고 온 美 국방부 장관

    에스퍼 장관이 E-4B가 아닌 VC-32를 타고 온 이유는 유사 시 워싱턴에서 국가 지도부를 태우고 출격하는 출격 대기 기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E-4B 4대를 운용 중인데, 이들은 1973~1975년 사이에 인도된 기체로 노후화가 심해 기체 정비 시간이 신조기에 비해 상당히 긴 편이다. 국방부 장관의 주요 해외 출장이 있었지만 핵전쟁 지휘기로서의 기본 임무가 장관의 해외 출장 일정보다 우선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에스퍼 장관은 E-4B가 아닌 VC-32를 탔던 것이다.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수많은 나라와 동맹 관계를 맺으며 활발한 대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그야말로 ‘항공기 대국’이다. 군과 민간에서도 정말 많은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고, 정부 기관에서도 장거리 출장용으로 대량의 항공기를 운용 중이다. 

    미 공군은 정부 관료의 해외 출장 지원을 위해 별도의 비행대를 두고 있다. 각급 부대에서도 별도의 크고 작은 요인 수송기를 운용 중이지만, 연방정부 관료의 해외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9대의 C-32 수송기와 28대의 C-40 수송기가 운용될 정도로 미국은 정부 수송기가 많은 나라다. 각 기관은 필요에 따라 미 공군에 공문을 넣어 항공기 지원을 요청하고, 해외 일정에 맞춰 관용기를 지원받아 사용한다. 에스퍼 장관이 지난해 타고 왔던 VC-32 역시 에스퍼 장관 전용기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수송기를 배정받아 사용했던 기체다. 



    정부 관료가 필요할 경우 지원받아 사용하는 정부 수송기는 우리 공군에도 있다.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2호기와 정부 전용기로 지정되어 있는 공군 3·5호기가 그것이다. 공군 1호기는 국내 민항사에서 임차한 보잉 747 기종이고, 공군 2호기는 장기간 1호기로 운용되던 737 기종이다. 

    3·5호기는 지난 2018년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쇼’를 할 때 취재단을 태우고 북한에 들어가 매스컴을 탔던 VCN-235 기체다. 이 기체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도입한 소형 수송기 CN-235에 좌석을 붙이고 도색을 바꾼 기체로 제대로 된 여객기 기반의 전용기보다는 탑승감이 좋지 않고 항속거리도 짧아 정부 요인의 해외 출장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국토가 넓은 것도 아니고 관료들의 해외 출장도 많지 않기 때문에 요인 수송기라는 항공기를 별도로 운용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어쩌다 정부 대표단이 해외를 방문할 때도 요인 수송기를 별도로 구하는 것보다 민항사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과 편의 등 모든 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제외한 관료들의 해외 방문 때는 항상 민항기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 ‘요인 수송기’가, 그것도 최고급 사양의 요인 수송기 등장이 예고돼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바로 서욱 국방부장관의 KC-330 시그너스다.

    병력 수송 군용기 타고 가는 한국 국방부 장관

    서욱 국방부장관. [국방일보 제공]

    서욱 국방부장관. [국방일보 제공]

    KC-330은 군용기 명명법에서 공중급유기(tanKer)를 의미하는 K와 수송기(Cargo)를 의미하는 C를 합친 ‘KC’에 원형 모델인 A330의 숫자 ‘330’을 조합한 이름이다. 시그너스(Cygnus)는 백조자리라는 뜻으로 공군 인트라넷 공모를 통해 선정한 이 기종의 별칭이다. 유럽 에어버스에서 제작한 KC-330은 이름 그대로 공중급유와 수송 임무를 수행하는 다목적 항공기다. 원형인 A330 MRTT(MultiRole-Tanker/Transporter) 역시 이름 그대로 공중급유와 수송기 임무를 모두 수행하는 다목적 기체라는 의미다. A330 MRTT의 원형인 A330-200 기종은 에어버스가 개발한 장거리용 광동체(Wide-body) 쌍발 여객기로 국내외 항공사와 정부기관에 1450대 이상 납품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이코노미석으로만 좌석을 채울 경우 404명이 탑승할 수 있고 비교적 연비가 좋아 여객기는 물론 공중급유기와 수송기로도 활용되는 만능 기체다. 

    이 기체를 기반으로 개발된 KC-330을 기본 임무인 공중급유기로 운용할 경우 최대 111톤의 연료를 싣고 F-15K 전투기 10대에 공중급유를 할 수 있다. 수송기로 활용할 경우 최대 291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좌석을 설치해 운용할 수 있고, 화물기로 변신하면 군용 팔레트나 컨테이너를 최대 8대 실을 수 있다.
     
    KC-330은 KC-X 사업을 통해 지난 2018년부터 4대가 순차적으로 도입돼 2019년까지 김해의 제5공중기동비행단 예하 제261공중급유비행대대에 배치돼 운용되고 있다. 이 기체가 매스컴을 크게 타기 시작한 것은 올해 ‘이벤트’에 동원되면서부터이다. 

    이 기체는 지난 6월, 6‧25 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임무에 2대가 투입됐다. 1대는 미국의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에 가서 147구의 유해를 싣고 오는 임무를 맡았고, 다른 1대는 ‘진짜 수송’ 임무를 맡은 1번기가 성남 공군기지에 도착해 코로나 소독을 하는 동안 유해를 옮겨 실은 뒤 청와대가 세팅한 활주로 한 편의 ‘행사장’에 가서 유해를 내려놓는 퍼포먼스를 하는 데 사용됐다. 

    그 며칠 뒤에는 아크부대 17진을 태우고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공항으로 날아가 17진을 내려주고 16진을 국내로 복귀시켰으며, 7월에는 2대가 이라크로 날아가 현지 코로나19 확산으로 고립된 현지 교민과 근로자 290여 명을 태우고 국내로 돌아오는 임무를 수행했다. 

    우리 군이 인원‧화물 수송이 가능한 대형 공중급유기를 구매한 것은 기본 공중급유 임무 외에도 앞에서 소개한 장거리 해외 병력 수송이나 재외국민 긴급 소개 작전을 위함이다. 유사 시 병력 수송이나 재외국민 긴급 소개 작전은 빠른 의사 결정과 기체 동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민항사의 여객기를 임차해 투입하는 것보다 별도의 전용 기체를 보유하고 대기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인데, KC-330 도입을 통해 이러한 임무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우리 공군은 KC-330 기체 4대를 도입해 운용 중이다. 공군이 동일 기종 4대를 도입한 것은 부대를 편성하고 작전에 투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량을 채우기 위함이다. 공군 항공기는 작전 수행-출격 대기-교육 훈련-정비의 4개 사이클로 운용된다. 즉, 4대가 있어도 작전에 투입 중인 기체는 단 1대뿐이라는 이야기다. 

    공군의 KC-330 4대 가운데 1대는 요즘 거의 ‘동네북’이 된 동해와 제주남방해역 방공식별구역 초계 임무 지원에 투입된다.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적성국 항공기가 접근했을 때 F-15K나 KF-16이 출격해 대응해야 하는데, 독도나 이어도 인근 상공에서 안정적으로 작전하려면 공중급유기의 급유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1대는 출격 대기 상태로 유지된다. 작전이 길어질 경우 이미 출격한 1대와 교대해주어야 하고, 유사 시 해외에서 재외국민 긴급 소개 작전이 필요해지면 즉각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공군의 KC-330 전력에는 ‘여유 전력’이라는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군 내부에서는 공중급유기 추가 도입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 공백 유발, 혈세 낭비 우려 낳는 선택

    KC-330 시그너스. [국방부 제공]

    KC-330 시그너스. [국방부 제공]

    그런데도 국방부는 가뜩이나 부족한 공중급유기를 무려 5일이나 빼내 국방부장관의 해외 출장 용도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9월 중순, 한 매체에 “다음 달 서욱 국방부 장관의 한·미 안보협의회(SCM) 참석 출장 때 KC-330을 투입할 계획이며, 서 장관의 출장에 KC-330 활용이 결정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도 국방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공편 이용에 제약이 있어 불가피하게 KC-330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이번 SCM은 10월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며, 서 장관은 12일 출국해 15일 이후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SCM 일정이 결정된 8월에 민항기 항공권을 예매했다면 아무 문제없이 워싱턴에 다녀올 수 있었다. 

    국내 항공사들이 지난 4월 인천-워싱턴D.C(덜레스) 노선 운휴 조치를 취했던 것은 맞지만, 이 조치는 6월 초 모두 해제됐다. 대한항공은 수·금·일 주3회 인천-덜레스 직항 노선을 투입하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인천-뉴욕(JFK) 노선을 주 1회 운항 중이다. 아메리카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인천-덜레스 노선을 운항 중이며, 일부 항공편은 일정이 불과 일주일 남은 현재 시점에도 좌석이 일부 남아 있다. 

    공무원 여비 규정과 기획재정부 예산집행 지침에 따르면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장관급)은 해외 항공편을 이용할 때 일등석을 이용할 수 있다. 공무원 실‧국장급은 비즈니스석을, 이하 직급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할 수 있다. 두 달 전 예약할 경우 국내 항공사 기준으로 일등석은 왕복 1500만 원선, 비즈니스석은 800만 원선, 이코노미석은 300만 원선이다. SCM 대표단은 통상 장관과 합참의장, 실·국장급 간부 등 10여 명으로 구성되며, 여기에 수행원이 20~30여 명 따라 붙는다. 40여 명 정도로 구성되는 대표단이 민항기를 이용할 경우 왕복 여비는 약 2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민항기 대신 공군 KC-330을 타고 가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 운용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에어버스에서 밝힌 A330 기종의 시간당 유지비는 2만5000달러 수준이다. 인천에서 덜레스까지는 직항 기준으로 14시간이 소요되므로 KC-330의 왕복 비용은 70만 달러, 한화 8억1230만 원이 들어간다. 단순 계산으로 민항기를 이용할 때보다 4배가 더 들어가는 것이다. 

    민항기 좌석이 충분히 있는데 굳이 4배의 비용을 더 쓰면서, 그것도 전력 공백을 유발하면서까지 공군 작전용 공중급유기를 전용기처럼 차출해 쓰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만한 처사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경기 불황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힘겹게 세금을 내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나, 야근과 출동에 시달리면서도 예산이 없어 수당이 뭉텅이로 잘리고 진급도 밀린 일선 군 간부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나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는 말이 있다. 위(魏)나라 장군 오기(吳起)가 부하가 종기로 고생하자 직접 고름을 빨아 낫게 해준데서 생긴 말로 부하와 백성을 극진히 아끼는 것이 장수(將帥)된 자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가르침을 주는 말이다.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에, 해외 정상이나 타고 다니는 전용기를 타고 가 레드카펫을 밟는 ‘폼 나는’ 장면을 생각하기 전에,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히 혈세를 납부해 그 돈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국민들, 박봉에 수당까지 깎여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휘하 간부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일국의 국방 수장된 자의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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