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8

2020.07.17

서울 강남 ‘학교 품은 아파트’, “전세 1,2억 올라도 물량 태부족” 〈르포〉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07-13 15: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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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둘러보니 세입자와 전문가들 “세금 올리면 세입자 부담 가중”, “정부·다주택자 싸움에 세입자 등 터진다” 목소리
    서울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상가 부동산 유리벽에 붙어 있는 전·월세 매물표. [동아DB]

    서울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상가 부동산 유리벽에 붙어 있는 전·월세 매물표. [동아DB]

    “아직은 전세 물건이 몇 개 있긴 한데, 앞으로가 문제죠. 지난 연말부터 세입자를 내보내고 본인들이 들어와서 살겠다는 집주인이 늘고 있어요. 안 그래도 귀하던 전세가 더 귀해지게 생겼어요. 요즘은 역세권보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를 최고로 쳐주기 때문에 해당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요.”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부동산중개업자의 말이다. 7·10 부동산 규제 대책으로 시장이 또 한 번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강남을 중심으로 ‘전세 대란’ 조짐이 일고 있다. 정부의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두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조세부담으로 한동안은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거래절벽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6·17 대책의 후속이라 불리는 7·10대책은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매기는 게 주요 골자다. 

    우선 정부는 고가·다주택자에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현재의 두 배 수준인 6%까지 올리기로 했다. 내년 6월부터는 주택을 구입하고 1년이 되기 전에 되팔 경우 양도소득세율을 현행 40%에서 70%까지 올린다. 2년 안에 되팔아도 60%의 양도소득세율이 부과된다. 4년 단기임대 및 8년 장기임대주택등록제도는 폐지해 세제 혜택을 없애고자한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고가·다주택자의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을 확대한 이유는 이들이 세금을 견디지 못해 집을 팔면 부동산 시장에 매물이 많이 나와 집값이 떨어지고 매물 잠김 현상도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따라 1년이라는 유예기간 동안 급매물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종국에는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기보다는 버티기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고 내다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임대사업자)와 정부의 싸움에서 세입자 등만 터지는 셈”이라며 “정부의 계획대로 임대를 놓던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겠다고 하면 시장에서 전세 물건은 사라지게 되고,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팔지 않고 버티겠다고 하더라도 조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전·월세 가격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계속되는 규제에 결국은 세입자의 부담만 커지는 형국이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6·17 대책 때부터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 대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구 삼성동·대치동·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일명 ‘갭투자’가 불가능해지면서 전세 물건이 더 줄어들게 됐다. 해당 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살 경우 6개월 내에 입주해야한다. 



    여기에 장기보유특별공제 여건을 채우려고 자가로 들어오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세 물량은 더 귀해졌다. 내년부터 장기보유특별공제(연 8%, 최대 80%)를 받으려면 해당 주택에 2년 이상 거주해야한다. 잠실동 부동산중개업자는 “지난 연말부터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을 채우고자 전세 만기에 맞춰 본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옮기느니 전세 보증금 올려준다”

    7월 13일 현재, 잠실 리센츠 전세는 전용면적 84㎡ 기준 10억3000만~11억5000만 원까지 나와 있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9억 원에 계약되던 것들이다. 2년 전 시세와 비교하면 2억~3억 원까지 올랐다. 리센츠는 5600세대 대 단지로 단지 내에 초·중·고등학교가 다 있고,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과도 가까워 늘 전세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인근에 있는 엘스아파트의 전세 시세도 이곳과 비슷하다. 

    문제는 전세 물량이 많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것. 엘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계약 만료 날짜에 따라 물량이 계속 나오긴 하지만 그 양이 점점 줄고 있다”며 “세입자 처지에서는 아이들 학교를 옮길 수 없으니 집주인이 올려달라는 대로 전세금을 올려주고 계속 살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년 전 잠실 엘스로 이사 온 주부 A씨는 “9월이 전세 만기인데 집주인이 1억5000만원을 올리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면서도 “아이 학교 때문에 이사를 가기는 힘들고 어떻게든 버텨야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셋값 상승률은 강남구가 더 가파르다. 대치동 학군 진입을 위해 서민들이 주로 전세살이를 하는 대표 단지인 은마아파트 전셋값은 6·17 대책 발표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특히 재건축 단지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 실거주해야 하는 규제가 맞물려 ‘전세 품귀’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7월 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전용 84㎡의 경우 7월 2일 6억9000만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6·17 대책 발표 전인 6월 9일 같은 평형 전셋값이 5억9000만원이었는데, 한 달 만에 1억 원이 뛴 것이다. 2년 전 시세와 비교하면 1억5000만~2억 원 가량 올랐다. 대치동에서 그나마 전셋값이 저렴한 곳으로 꼽히는 선경, 대치 우성도 6·17 대책 발표 전보다 전세보증금이 5000만 원 안팎 올랐다. 

    일대에서 가장 비싼 래미안대치팰리스(래대팰)는 최근 ‘반전세’로 손 바뀜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보증금은 그대로 두고 오른 금액만큼 월세로 대체하는 식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통상 보증금 1억 원을 월세 30만원으로 계산한다. 낮아진 금리를 생각하면 이 또한 세입자에게 불리한 구조다. 그럼에도 더 이상 대출이 불가하거나 과도한 보증금에 대한 부담감이 큰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전경.  [동아DB]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전경. [동아DB]

    6·17 대책 이후 무섭게 치솟은 집값

    부동산 전문가들은 매매가 상승이 결국 전세가를 끌어올린다고 본다. 래대팰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최근 래대팰이 평당(3.3㎡) 가격이 1억을 찍으면서 주변 부동산이 더 들썩이고 있다”며 “집값이 이렇게 오르는데 전셋값 오르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6월 20일 래미안대치팰리스 59㎡가 25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0월 같은 면적이 22억8000만 원에 거래된 것에 비해 2억2000만 원이나 올랐다. 특히 거래된 시점이 절묘하다. 6·17 대책에 의해 대치동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시점(6월 23일) 직전에 거래가 이뤄졌다. 3.3㎡당 1억 원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10월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84㎡가 34억 원에 거래된 이후 두 번째다. 

    대치팰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지정되면서 막차 수요가 확 몰렸다. 대치팰 뿐만 아니라 대치동·청담동·삼성동·잠실동 모두 토지거래허가제 구역으로 지정되자 제도 발효일 전에 ‘사자’는 분위기가 확 일면서 몇몇 단지가 신고가를 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6월 22일 거래된 잠실동 리센츠 84㎡는 이전 거래가보다 1억5000만 원이나 오른 23억 원에 거래됐다. 대치동 롯데캐슬 105㎡도 6월 21일 신고가 20억5000만원에 팔렸다. 이 밖에도 삼성동 삼성롯데캐슬프레미어, 래미안삼성1차, 힐스테이트2단지 등이 신고가를 경신했다. 

    강남 내에서도 일종의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 규제 지역에 인접해 있는 곳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는 것.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4.9㎡는 6월 6일 23억1000만 원(11층)에 매매된 데 이어 규제 이후인 6월 26일에는 23억5000만 원(10층)에, 7월 3일에는 26억5500만원(8층)에 매매가 이뤄졌다. 한 달여 만에 3억 원이 넘게 뛴 셈이다. 잠실동과 인접한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84.9㎡도 나흘 만에 3억 원이 올랐다. 6월 16일 17억5000만 원(4층)에 거래된 데 이어 주말 새 20억5000만원에 또 하나가 거래됐다. 

    도곡동 렉슬 아파트 인근 부동산 한 관계자는 “매매가가 높아진 만큼 전세가도 올라가고 있다”며 “전세 물량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2006년(재개발) 입주 당시 70%에 달하던 전세 비율이 최근에는 40%로 줄어들었다”고 귀띔했다.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상가에 입점해 있는 부동산 관계자도 “어제 전세 매물이 하나 나오자마자 집도 보지 않고 바로 계약이 이뤄졌다”며 “보통은 가을철에 새 학기 수요로 전세 매물이 많이 나오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이사 계획을 잡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임대차3법’ 세입자 부담 늘릴 것

    서울 내 전세시장은 이미 ‘공급자 우위’로 굳혀지는 분위기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6월 마지막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73.3으로 집계됐다. 이 지표는 0~200 범위에서 산출되는데 기준점인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부족’이 심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3월 첫째주(94.5) 이후 100을 넘어섰고 이후 66주간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여당이 추진 중인 ‘임대차3법’ 또한 세입자 부담을 늘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임대차 3법으로 전세가 안정될 거라는 생각은 헛된 희망이다. 해당 법이 시행되기 전에 전세가를 최대한 높여 부르겠다는 집주인들이 많다. 또 4년 차 상승분을 한꺼번에 올리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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