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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의 김혜자가 부러워할 미국 수녀의 비밀 [궤도 밖의 과학]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간여행을 극복한 방법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가 부러워할 미국 수녀의 비밀 [궤도 밖의 과학]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노년의 김혜자 역의 김혜자와 젊은 김혜자 역의 한지민.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노년의 김혜자 역의 김혜자와 젊은 김혜자 역의 한지민. [jtbc]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주인공 김혜자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자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종류의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는 어떤 가상세계에서든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최상급 ‘사기 캐릭터’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놀랍게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돌리는 시간만큼 자신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으니 혼자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이를 먹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날 아버지의 사고를 막고자 수천 번 시간을 되돌려 결국 아버지를 구해냈지만, 본인은 할머니가 돼버린다.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우선 여기까지만 읽고 이 드라마를 꽤 참신하게 풀어낸 시간여행물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멈추길 바란다. 상상도 하지 못한 반전에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점차 기능을 잃어가는 우리의 뇌

jtbc 드라마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절은 김혜자 역의 한지민과 노년의 김혜자 역의 김혜자. [jtbc]

사실 김혜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노인이며, 자신을 젊은 아가씨로 착각하고 있을 만큼 심각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었다. 시간여행으로 늙어버린 딸이 아니라 인지능력이 어린 시절보다 떨어져버린 어머니였다. 언제나 나를 위해 모진 풍파 속에서 세상과 싸우던 부모가 이제 내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저 스쳐가는 동화 속 이야기라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심지어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비슷한 경험담을 접하고 있다. 드라마 속 판타지는 현실적인 병리적 아픔을 시청자에게 가감 없이 전해줬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알츠하이머병과 치매를 혼용해 사용한다. 엄밀히 말하면 뇌 기능과 관련해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는 상태를 가장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 치매다. 뇌세포가 퇴화하는 알츠하이머병은 그중 하나인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라고 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의 명칭은 20세기 독일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건망증과 유사하게 기억력에 문제를 보이면서 진행된다. 건망증은 기억을 저장하는 용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뿐 아니라 지적능력을 서서히 상실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악화된다. 아무리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라도 뭔가를 잊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다음번에는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면 잊었다는 것조차 상기하지 못해 자신의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부인한다. 

전체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치매의 원인이라, 보통 치매 하면 알츠하이머병을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가장 흔하다 보니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병은 왜 생겨날까.

85세 수녀의 뇌에 감춰진 비밀

정상 뇌와 알츠하이머에 걸린 뇌. [brainfacts.org]

정상 뇌와 알츠하이머에 걸린 뇌. [brainfacts.org]

아쉽게도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하는 현상이나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노화와 유전이 거론되고 있으며, 머리 외상이나 우울증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확실한 건 초기에는 주로 최근 사건에 대한 기억력만 문제를 보이다 노화로 증세가 악화되면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인지기능 이상을 동반하고, 결국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노년의 시간여행자를 안타깝게 바라보거나, 언젠가 슬픈 시간여행을 직접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과학으로 이것을 극복할 순 없을까. 다행히 알츠하이머병 연구와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미국 켄터키대 뇌신경학자인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는 노화와 알츠하이머병의 관계를 밝히고자 노인의 두뇌를 연구해왔다. 표본을 구하는 데 난항을 겪다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미네소타주 시골에 있는 수녀원에서 의학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뇌를 기증한 것. 100세 넘도록 장수한 수녀가 7명이나 되고, 수녀 대부분이 치매 증상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기에 사후 기증받은 뇌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대한 단서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연구 대상이 된 수녀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심장마비로 85세에 사망하기 직전까지 치른 인지시험에서 모두 최우수 성적을 거뒀고, 비교적 젊은 다른 수녀보다 훨씬 우수한 지적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연구팀 모두 기대가 컸다. 마침내 그의 뇌를 분석하려는 순간, 알츠하이머병 연구는 혁신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이 이미 말기까지 진행된 치매 환자임이 드러난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진단은 두개골을 직접 열었을 때 가장 정확하다. 뇌 상태만으로 봤을 때 이미 최악의 수준이던 그가 어떻게 수녀 가운데 가장 우수한 지적능력을 보유할 수 있었을까.

얽히고설킨 시냅스가 관건

자신들의 뇌를 사후 기증하기로 한 106세 된 수녀와 이를 토대로 1986년부터 알츠하이머 치료법을 연구 중인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 [GettyImages]

자신들의 뇌를 사후 기증하기로 한 106세 된 수녀와 이를 토대로 1986년부터 알츠하이머 치료법을 연구 중인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 [GettyImages]

뇌에는 기억이 저장되는 시냅스라는 부분이 있는데, 뇌세포 간 의사소통을 위해 연결된 길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시냅스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기억이 단단히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수녀의 시냅스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복잡한 연결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며 뇌를 관리해왔다. 기억을 하나의 시냅스에 저장하지 않고 새로운 시냅스를 계속 연결해 알츠하이머병으로 일부가 끊겨도 나머지 시냅스가 마치 벤치의 후보 선수처럼 뛰쳐나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최대한 다양한 이웃과 소식을 나눈다면 몇 명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려도 내가 전한 소식이 누군가에게는 남아 다시 전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생물학적인 해결 방법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뇌가 포도당을 분해하는 방식이 비정상적일 때 기억에 문제가 생길 개연성이 크다는 연관성도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근원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은 멀고도 험하다. 

어느 하루도 눈이 부시지 않은 날은 없었다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슬픈 마무리처럼, 세상에 이토록 이길 수 없는 슬픈 시간여행이 또 있을까.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세상은 경이롭지만,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봐 다시는 이런 슬픈 시간여행을 곁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이 없기를, 그리고 과학이라는 멈추지 않는 두뇌 활동이 여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239호 (p56~58)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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