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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산업, 위기 아닌 도약의 기회다”

  • 김병재 극작가·문학박사

“한국 문화산업, 위기 아닌 도약의 기회다”

[GettyImages]

[GettyImages]

일찍이 지금처럼 우리 문화산업이 세계로부터 각광받은 적은 없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봉 감독의 말처럼 칸영화제가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해 ‘선물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중국, 대만, 이란에 이어 일정한 작품성과 시장 규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황금종려상과 인연이 닿지 않은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이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특히 작품상을 받은 것은 비영어권 영화로선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는 비영어권의 작품상으로 불리는 국제장편영화상의 제정 취지를 무색게 하는 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장편영화상이면 몰라도 작품상을 다른 나라 영화에 줬다고 불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봉 감독의 말처럼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우리 영화가 아시아 변방의 문화가 아님을 천명했다. 

‘기생충’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도망친 여자’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우리 영화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경사였다. 이보다 앞서 방탄소년단(BTS)은 이미 세계 음악시장 정상에 있다. 최근 정규 4집 앨범 ‘MAP OF THE SOUL : 7’으로 한국 가수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고, 미국 빌보드를 비롯해 일본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신기록까지 세웠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또 있다. 한국 콘텐츠 수출 1위를 지키고 있는 게임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국내 게임 수출액은 4조 원이 넘는다. 우리 콘텐츠산업 전체 수출액 7조 원의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이다. ‘한류’ 주역인 케이팝(K-pop), 방송산업보다 4배 더 크다. 이렇듯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점령,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더해 변함없는 게임산업의 수출 성과는 우리 문화산업이 세계 정상임을 입증하고 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다. ‘잘나가는’ 우리 문화산업이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로 제동이 걸렸다. 우리 콘텐츠가 세계 최정상에 선 순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사실 ‘기생충’ 배우들과 제작진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짜파구리 파티와 파안대소’를 할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진정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 세계경제가 충격에 빠졌다. 



문화 공연이 취소되고 영화관은 개점휴업 상태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국내 극장 일일 관객이 5만 명대에 그치고 있다. 영진위가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으로 재상영에 들어가 특수를 보던 ‘기생충’은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4월로 예정된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공연장인 미국 리바이스 스타디움도 코로나19 여파로 폐쇄됐다는 소식이다.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최근 미주 박스오피스 매출 감소 및 영화 개봉과 제작 지연 등에 따른 손실 규모가 6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세계 주요 국가가 줄줄이 극장, 박물관 등 다중이용시설을 폐쇄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 문화산업계가 팬데믹으로 마비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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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다. 우리 문화산업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줄 도약의 기회다.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은 우리나라를 미국, 프랑스, 일본과 함께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해본 나라로 평가하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1990년대 말 ‘한류’가 탄생하고 2000년 초 케이팝이 등장한 이래로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에서 이 정도 성과를 올린 데는 국내 문화예술인 개인의 역량, 기업의 투자, 그리고 정부의 지원책도 한몫했다.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과 걸그룹 소녀시대,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를 거쳐 방탄소년단과 ‘기생충’까지 온 것이다. 이들 콘텐츠는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고 경제적 성과도 상당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연 콘서트의 경제효과가 1조 원에 육박했는데 이는 중견기업 6개와 맞먹는 규모다. 

하지만 순탄치만도 않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생긴 중국과 정치적 갈등인데, 중국은 지금까지도 한류 콘텐츠에 대해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다. 또한 경제효과만 강조한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원인으로 ‘지나친 상업성’(28.9%), ‘획일적이고 식상함’(28.0%), ‘자극적이고 선정적’(12.6%) 등이 뽑혔다. 

이제 방탄소년단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을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전략을 세워봄직하다. 우리 문화산업이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생충’의 이번 수상은 15조 원에 달하는 게임산업을 잇는 콘텐츠산업의 효자가 될 발판을 마련했다. 3월 13일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의 전 세계 수익은 총 3000억 원을 넘어섰다. 

케이팝의 경우 당장의 경제효과에 매달리지 말고 나라 간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격조 있는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해당 국가의 전통문화와 관습, 식생활, 종교에 대한 연구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문화적 차이가 몰고 올 한류 역풍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종합예술인 콘텐츠산업은 장르 특성상 더 디테일한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이번 ‘기생충’의 수상은 일회성이고, 언어적 장벽과 문화적 차이 탓에 한국 영화의 성장성은 여전히 밝지만은 않다. 특히 비영어권 영화로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마케팅 전략이 있어야 한다. ‘기생충’은 홍보 마케팅 비용으로 100억 원을 넘게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원론적인 얘기지만 봉 감독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으로 말했던 ‘개인적인 것이 곧 창의적인 것’이라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에 대한 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문화 콘텐츠는 결국 사람과 돈이 만들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창의성을 가진 인력은 산업적 마인드를, 산업 시스템은 콘텐츠 종사자의 감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자와 빈자 간 계급투쟁을 그린 ‘기생충’도 창의성을 갖춘 봉 감독과 대기업 CJ가 합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창의적인 인력과 산업적인 시스템 간 조화 및 협력 없이는 자본주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전형인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콘텐츠시장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1231호 (p40~41)

김병재 극작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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