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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야구의 미래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 구분 말고 중책 맡겨야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여자는 야구의 미래다

[사진 제공 · SBS]

[사진 제공 · SBS]

“드림즈는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을 겁니다.” 

SBS 금·토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 재송 드림즈 운영팀장(박은빈 분)이 남긴 대사입니다.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이 휠체어로 움직여야 하는 동생 백영수(윤선우 분)가 자기네 구단 전력분석팀에서 일하게 되는 걸 막으려고 면접 자리에서 일부러 막말을 쏟아내자 이렇게 항변했던 것. 

프로야구 꼴찌팀 재송 드림즈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서 이 팀장은 프로야구 첫 번째이자 유일한 여성 운영팀장으로 등장합니다. 최연소 운영팀장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현실 세계의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팀 운영팀장을 맡은 여성이 없었습니다.


야구 지도자는 금녀의 구역?

이번 시즌부터 오릭스 버팔로스 스카우터로 일하게 된 이누이 에미의 선수 시절. [GettyImages]

이번 시즌부터 오릭스 버팔로스 스카우터로 일하게 된 이누이 에미의 선수 시절. [GettyImages]

물론 키움 히어로즈가 지난해 1월 임은주(54) 단장을 선임하면서 프로야구 첫 여성 단장을 배출했지만 언론에서 프로축구 FC안양 단장 시절 비리 의혹을 폭로하자 열흘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대신 부사장 자리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 경영에 연루된 혐의로 구단으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죠. 

여성 단장은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례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킴 응(52) 메이저리그 사무국 수석 부사장이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등에서 부단장을 지내며 첫 여성 단장을 꿈꿨지만 아직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 여성 단장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ESPN은 지난해 9월 보스턴 레드삭스가 라켈 페레이라(50) 수석 부사장을 포함한 공동운영그룹을 꾸리자 “페레이라 부사장이 메이저리그 운영 파트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이 됐다”고 평가했지만 그 역시 직책은 부단장일 뿐입니다. 당시 보스턴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데이브 돔브로스키(64) 사장을 해고하고 이 공동운영그룹에 구단 경영을 맡긴다고 발표했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여성 단장이 드문드문 나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산하 AAA 팀인 리노 에이시즈가 에밀리 잰슨(38)에게 구단 살림을 맡기고 있습니다. 대학 동문회 자기소개 문구를 ‘스포츠 중독자(Sports junkie)’라는 표현으로 시작할 정도로 스포츠에 애정이 많은 잰슨 단장은 2005년 미국프로농구(NBA) 팀 시카고 불스의 단체 티켓 판매 담당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마이너리그 팀 단장까지 올랐습니다.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기본적으로 단장이라는 보직 자체가 모호한 편입니다. 일본에서는 보통 1994년 지바 롯데 마린스 살림을 맡았던 히로오카 다쓰로(廣岡達朗·88)를 첫 번째 제너럴매니저(GM)로 꼽습니다. 히로오카 단장은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감독을 지낸 다음 롯데 단장 자리를 맡았습니다. 이후에도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1947~2018), 오 사다하루(王貞治·80)처럼 이미 선수와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이들이 단장을 맡는 구조이기 때문에 여성이 단장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 시즌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화제를 불러 모은 여성은 이누이 에미(乾絵美·37)입니다. 소프트볼 대표팀 포수로 일본에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이누이는 이번 시즌부터 오릭스 버팔로스 스카우터로 일하게 됐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여성이 팀 스카우트 업무를 맡게 된 건 이누이가 처음입니다. 

스카우터는 프런트와 선수단을 잇는 가교(架橋)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구와 사촌격인 소프트볼은 선수단에 여성 지도자를 공급하기도 합니다.


미국에 부는 야구 코치 여풍

지난해 11월 시카고 컵스 루키 레벨팀 코치로 선임된 레이철 폴든(왼쪽)과 2014-2015 시즌을 앞두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NBA 역사상 첫 번째 풀타임 여성 코치가 된 베키 해먼. [레이철 폴든 트위터, GettyImages]

지난해 11월 시카고 컵스 루키 레벨팀 코치로 선임된 레이철 폴든(왼쪽)과 2014-2015 시즌을 앞두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NBA 역사상 첫 번째 풀타임 여성 코치가 된 베키 해먼. [레이철 폴든 트위터, GettyImages]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월 17일 알리사 나켄(29)과 메이저리그 코치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첫 번째 ‘풀타임’ 여성 코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켄 코치는 새크라멘토주립대 소프트볼팀에서 주로 1루수로 뛰면서 총 184경기에 나와 타율 0.304, 19홈런, 83타점을 남긴 강타자 출신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23일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컵스도 여성 코치에게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타격 지도를 맡기기로 했다고 나란히 발표했습니다. 두 코치 역시 소프트볼 선수 경력이 있습니다. 

두 코치 가운데 시카고 루키 레벨팀의 타격 지도를 맡게 된 레이철 폴든(33) 코치는 대학 소프트볼팀은 물론, 프로팀 시카고 밴디츠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양키스에서 역시 루키팀 타격 지도를 맡긴 레이철 불코백(33) 코치는 대학 팀 경험까지만 있는 대신 운동 역학 관련 석사학위가 2개입니다. 

양키스는 선수들이 마음대로 수염도 기르지 못할 만큼 보수적인 팀입니다. 그런 팀이 다른 팀보다 앞서 여성 타격 코치를 선임한 이유는 뭘까요? 이에 대해 딜런 로슨 양키스 타격 코디네이터는 “우리가 불코백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불코백은 좋은 타격 코치이자 좋은 코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레이철 코치는 바이오메카닉스(biomechanics) 이론에 빠삭하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이오메카닉스는 신체 구조와 움직임을 기계공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폴든 코치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야구와 소프트볼 선수들에게 타격 기술을 전수하는 ‘폴든 패스트피치’를 세워 운영했고, 불코백 코치는 이 방면에서도 급진적인 접근법으로 유명한 ‘드라이브 라인’ 출신입니다. 

여성에게 타격 지도를 맡긴 것을 두고 성차별적 생각을 하는 분이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소프트볼과 야구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은 분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끼리도 자기가 야구를 잘한 것과 남을 잘 가르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한때 한국 프로야구 4대 타격 코치로 손꼽혔던 김문관(65), 김용달(64), 박흥식(58), 황병일(60) 코치가 프로야구 무대에 남긴 기록을 합치면 타율 0.245, OPS(출루율+장타력) 0.662가 전부입니다. 참고로 프로야구 역대 평균 타율은 0.267, OPS는 0.739입니다.


누구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면

사실 야구는 여성 지도자에게 문을 너무 늦게 열었습니다. NBA에는 현역 여성 코치만 11명입니다. 야구보다 농구가 신체 능력 차이에 더 영향을 받는 종목인데도 그렇습니다. 

미국 여자농구 대표팀 포인트 가드 출신인 베키 해먼(43)이 2014-2015 시즌을 앞두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NBA 역사상 첫 번째 풀타임 여성 코치가 됐을 때 이 팀에서 뛰던 파우 가솔(40)은 “나는 확신한다. 해먼은 NBA 팀에서 코치를 할 수 있다(Hammon can coach). 나는 해먼이 아주 좋은 코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 코치와 거의 동급일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해먼이 NBA에서 코치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성별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많은 여자 팀에서 남성 지도자가 활약하고 있는데 그 반대는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두 다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보다 두 귀 사이에 있는 뇌라고 부르는 공간에 들어 있는 콘텐츠 차이가 성패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얼른 ‘선을 넘는’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프로야구팀 단장은 물론, 감독 자리를 차지하는 여성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리하여 드라마 속 드림즈뿐 아니라 현실 야구 전체가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지 않는’ 스포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어쩌지 못하는 차이라면 말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여자는 야구의 미래입니다.






주간동아 2020.02.14 1226호 (p58~60)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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