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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자의 ‘오타쿠글라스’

나는 왜 이 공연에 150만 원 넘게 썼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나는 왜 이 공연에 150만 원 넘게 썼나

구기자의 ‘오타쿠글라스’
※관객이 공연장에서 작품과 배우를 자세히 보려고 ‘오페라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공연 속 티끌만 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자 ‘오타쿠글라스’를 씁니다.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오후 7시 55분, 난 공식에 따라 휴대전화를 정확히 끄고 기침을 털어낸 뒤 오페라글라스를 무릎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내 혈관을 타고 퍼지는 듯한…. 아, 흥분된다. 흥분되고 설레는 이 느낌은…‘지킬’?! 뚜렷한 ‘관크’(‘관객+크리티컬’·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없다. (중략) 오후 8시, 모든 게 정상. 기대 이상의 적막. 관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주인공 헨리 지킬 박사의 대사를 조금 고쳐봤다. 가창력 좀 된다 하는 가수들이 음악프로그램이나 콘서트에서 한 번쯤은 부르다 못해 결혼식 축가로도 널리 애창되는 ‘지금 이 순간’을 주인공이 서재에서 부른 후 나오는 장면의 대사다. 

기자는 ‘지킬 앤 하이드’로 뮤지컬에 입문했고 ‘회전문’(같은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하는 행위)도 처음으로 돌아봤다. 어쩌다 보니 매년 이 작품을 예매하는 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됐는데(그렇다고 다른 공연을 보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텅장’이 된다는 뜻이다), 공연이 있는 시즌에는 저녁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언제 ‘꿀 캐스팅’ 조합의 자리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안다. 그런 날이면 기자가 공연장 근처 카페나 로비에서 하이드처럼 어슬렁대고 있으리라는 것을.


올해 캐스팅도 ‘기대 이상’

조승우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조승우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공연 담당 기자면 티켓은 그냥 나오지 않아?” 



보도를 목적으로 기획사에서 주는 프레스 티켓이 있긴 하다. 하지만 1장. 전 캐스트의 연기와 노래를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올해는 프레스 관람이 열리기도 전부터 2018년 지킬/하이드 역을 맡은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의 공연을 다 봤다. 작품 설명은 ‘애정 필터’가 끼어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으니, 올해 어떤 캐스팅으로 봐야 할지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자 한다. 

이 작품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맡았는데, 내용은 지킬과 하이드의 대립이라는 설정을 제외하면 원작과 거의 다르다. 국내에 아무런 정보도 없던 시절 배우 류정한의 ‘류지킬’로 이 작품을 처음 본 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여행 갔을 때 원어로 감상하고 싶었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국내와 달리 흥행 성적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유독 인기인 ‘지킬 앤 하이드’는 2014년 10주년 공연을 한 데 이어 2019년 15주년 공연을 앞뒀다. 

‘지킬 앤 하이드’는 일반적으로 ‘조승우의 뮤지컬’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조승우는 이 작품 외에도 여러 뮤지컬을 했는데 말이다. 2004년 초연부터 지금까지 11명(류정한, 조승우, 서범석, 민영기, 김우형, 홍광호, 김준현, 윤영석, 양준모, 박은태, 조성윤)의 걸출한 남자배우가 지킬/하이드 역을 맡았다. 연기, 노래 다 되고 체력까지 좋아야 소화할 수 있는 역이다. 셋 중 하나라도 없으면 지킬에서 하이드로 변하기 전 먼저 쓰러질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여러 번 본 건 다양한 배우의 이중인격 연기와 음색, 성량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점철된 작품에서 거의 몇 안 되는 웃음 포인트 중 하나인 “이 느낌은, 마약?”이라는 대사마저 모든 지킬이 다 다르게 소화하니 말이다.


내년이면 국내 공연 15주년

박은태(왼쪽) 홍광호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박은태(왼쪽) 홍광호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조승우의 ‘조지킬’, 홍광호의 ‘홍지킬’, 그리고 박은태의 ‘은지킬’. 정말 개성 강한 배우들이라 하나만 고르기가 쉽지 않다. 초연부터 지킬과 하이드의 캐릭터를 구축해온 조승우의 지킬은 연륜에서 묻어나는 노련미가 있다. 지킬과 하이드 사이를 오갈 때 성대를 갈아 끼우는 듯 폭발하는 가창력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에서 상까지 받으며 서구 관객으로부터도 실력을 인정받은 홍광호에게서 느낄 수 있다. 박은태의 공연이 처음이라면 그가 앙리와 괴물 두 역할을 소화한 ‘프랑켄슈타인’을 참고하면 좋다. ‘은지킬’은 셋 중 가장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며 웃음도 많다. 청아한 음색의 소유자로 쩌렁쩌렁한 울림은 없지만 하이드가 됐을 때 반전이 상당하다. 비슷한 느낌을 꼽으라면 섬세한 감정선을 연기한 ‘소녀지킬’ 김우형이 있겠다. 하이드가 됐을 때 조끼도 모자라 셔츠 단추까지 뜯어버리는 박력도 비슷하다. 


아이비, 윤공주, 해나, 민경아, 이정화 (왼쪽부터)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아이비, 윤공주, 해나, 민경아, 이정화 (왼쪽부터)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엠마와 루시 역도 어느 하나 버릴 사람이 없다. 엠마 역의 이정화, 루시 역의 윤공주와 아이비 외에 해나(루시)와 민경아(엠마)는 조금 낯선 배우였는데, 캐릭터에 찰떡같이 어우러져 아주 매력적이었다. 해나는 아이돌 출신으로 2년간 공백을 깨고 최근 걸그룹 ‘마틸다’로 컴백했다. ‘슈퍼스타K6’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 등에서도 실력을 선보였으나 아직은 인지도에 목이 마른 실력자다. 민경아는 이 바닥에서는 드물게 대극장 앙상블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주연까지 올라온 배우로 깔끔한 고음이 아름다웠다. 

다른 배우들의 1인 2역도 보는 재미가 있다. 2011년 ‘지킬 앤 하이드’ 공연 때 일이다. 한 여성 관객이 나가면서 일행에게 “무대 인사에 왜 지킬만 나오고 하이드는 안 나와?”라고 물은 게 기억난다. 새비지/풀, 비콘스필드/기네비어, 스트라이드/스파이더 역도 캐스팅을 보지 않으면 극 중에서 완전히 다르게 나와,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 같은 배우가 귀족과 하층민을 모두 연기하니 그 자체로 ‘해학’이다.


다른 캐스팅의 OST도 ‘듣길 원해’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사진 제공 · 오디컴퍼니]

작품의 팬들이 염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새 OST (Original Soundtrack) 발매다. OST에 없지만 작품에는 나오는 ‘I Need To Know(알길 원해)’는 유튜브에서만 들을 수 있다. 한국판 OST는 2004년 초연 버전과 2006년 버전이 있지만, 오디컴퍼니와 신춘수 대표가 지금까지 작품을 거쳐 간 명배우들의 목소리를 유튜브가 아닌 OST로도 들을 수 있게 보존해주면 좋겠다. 10주년은 지나갔지만 15주년에는 작업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골수팬이라면 국내에서는 빠진 루시와 넬리의 듀엣곡 ‘The Girls Of The Night’도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여담이지만 오타쿠는 돈을 쓰고도 ‘호구’ 취급당하는 경우가 유독 잦다. 사회적 이미지가 박해서일까. 특히 게임·애니메이션업계가 그렇고, 뮤지컬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세상사 다 그렇듯, 이 작품도 공연할 때마다 화제가 되다 보니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10주년인 2014년 ‘지킬 앤 하이드’ 측 관계자가 “욕하고 인신공격하는 관객은 관객이 아니다. 그들은 작품을 즐길 줄도 모르는 양아치다. 게다가 매출을 올려주는 봉이다”라고 발언한 게 논란이 돼 관계자들이 줄사과하기도 했다. 작품 주제인 ‘인간의 이중성’을 몸소 보여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소비자를 봉 취급하는 작품은 오래갈 수 없다. 크고 작은 사건이 늘 터지는 이 업계의 관계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도 ‘마약’ 같은 매력을 가진 이 작품이 ‘봉’이 아닌 ‘관객’과 ‘무병장수’하길 바란다. ‘봉’은 술집 레드랫을 방문한 지킬 하나면 족하다.






주간동아 2018.12.07 1167호 (p74~76)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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