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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서울여행

600년 된 성곽과 마을공동체

성북구 장수마을

600년 된 성곽과 마을공동체

600년 된 성곽과 마을공동체

한양도성과 어우러진 장수마을 전경. 사진 제공·구가도시건축

600년 된 성곽과 마을공동체
서울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 준비 작업이 막바지다. 내년 초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하면 현장 실사를 포함한 심사가 연말까지 진행되고, 내후년인 2017년 초면 등재 여부가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 한양도성이, 세계인이 함께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세계유산이 되려면 등재 요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인정받아야 한다. 또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관리계획(Protection and Management Plan)’이 있음도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유산이 있는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고 정부와 함께 유산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 여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제도는 1972년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면서 시작됐다. 30주년을 맞은 2002년 세계유산위원회는 ‘부다페스트 선언’을 발표하면서 ‘4C’로 요약되는 네 가지 전략목표를 제시했다. 각각 세계유산목록에 대한 신뢰(Credibility)를 높이고, 세계유산의 효과적 보전(Conservation)을 보장하며, 세계유산협약 체약국의 역량을 키우고(Capacity-building), 소통(Communication)을 통해 세계유산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참여 및 지지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5년 뒤인 2007년에는 여기에 지역사회(Community)가 더해져, 전략목표가 ‘5C’로 바뀌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네 가지 전략목표에 왜 하나를 더 추가했을까. 지역사회를 새로 넣은 것은 세계유산의 보호·관리에서 정부 및 전문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구실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유산 보호라는 명목 하에 유산이 위치한 마을이나 도시 주민공동체가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산과 주민의 삶을 함께 보호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라는 뜻으로, 주민 참여와 시민 참여, 그리고 협치(governance)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을 위한 한양도성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1392~1910) 수도 한양의 도시성곽이다. 백악, 낙산, 목멱, 인왕 등 네 개 산과 언덕 능선을 따라 축성된 한양도성은 500여 년 동안 수도의 경계로서 형태와 기능을 유지했고, 수도의 위엄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겪으며 서울은 1000만 인구를 수용하는 거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총 18.6km의 성곽 가운데 14.1km가 보전돼 있다. 매우 독특하고 귀한 도시유산이다.
당초 우리 조상들이 한양도성을 쌓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종묘사직과 왕궁, 관아 같은 공공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더불어 민가와 백성의 안전도 지키려 했을 것이다. 한양도성은 산지와 구릉지, 평지를 이어 쌓았다. 산지에 쌓은 성곽들은 대부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반면, 평지 성곽들은 도시화 과정에서 헐리고 훼손돼 시가지로 변모했다. 구릉지에 있는 성곽 안팎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마을로 구성된 곳이 많다. 조선 정부가 성곽 가까이 집을 짓고 사는 민가를 보호하려 노력했음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종 재위 시절 동부승지 채수(蔡壽)가 숭례문을 중수하면서 둘레에 옹성을 쌓자고 건의하자 성종은 “옹성을 쌓게 되면 마땅히 민가를 헐어야 하니 빈궁한 자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도적이 이 문에 이른다면 나라가 나라의 구실을 못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니 쌓지 말게 하라”고 답했다(‘성종실록’ 100권, 1479년 1월 17일). 이런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한양도성의 보호와 관리에서, 문화유산인 한양도성 자체를 보호 및 관리하는 것 못잖게, 도성을 쌓아 보호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삶과 삶터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산과 주민 둘 다 살리는 ‘성곽마을 재생’

600년 된 성곽과 마을공동체

다양한 마을 환경 개선사업으로 나들이 명소가 된 장수마을 풍경. 조영철 기자

현대 들어 성곽과 함께 성곽 안팎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삶을 보호하고 돌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과거에는 성곽 자체 보전에만 관심을 기울여 성곽 주변 마을을 철거하기도 했다. 성곽 가까운 지역의 마을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구역으로 지정돼 한꺼번에 철거된 뒤 아파트단지로 개발돼 주민공동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다. 한양도성 안팎에 위치한 성곽마을 가운데 재개발이 아닌 재생 방식으로 주민의 삶과 환경을 개선하는 시범사업이 처음 시작된 곳은 장수마을이다.
장수마을은 한양도성을 쌓은 내사산(內四山) 중 타락산(낙산)의 동쪽 경사지에 있다. 행정구역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으로, 2004년 주택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돼 ‘삼선4구역’으로 불렸다. 위쪽에는 성곽이 있고 아래쪽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삼군부 총무당이 있어 재개발사업이 어려워지자 2008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대안개발연구모임’이란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은 주민이 원래 삶터에 재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애썼고,  장수마을 주민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10년 마을 안에 작은 동네미술관을 열었다. 계단참을 낮추고 손잡이를 설치하는 골목길 정비사업도 진행했다. 2011년에는 집수리를 위한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세워 집들을 고쳐나갔다. 비어 있는 집을 고쳐 세입자를 들이고, 버려진 쓰레기장을 마을쉼터로 되살렸으며, 마을 곳곳에 평상을 만들어 주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2년 장수마을 종합계획 수립 작업이 시작되면서 이곳에서는 마을 환경과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들이 더 다양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마을사랑방을 겸한 마을박물관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성곽 가까운 곳에 동네 카페도 문을 열었다. ‘할멈솜씨’라는 브랜드로 수제 잼과 유자청, 감식초 같은 상품을 생산, 판매한다. 장수마을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자 찾아오는 손님이 늘었다. 이제 주민들은 마을해설사로 변신해 유료로 마을 소개와 안내를 한다.     
이렇게 장수마을에서 시작된 ‘성곽마을 재생사업’은 차츰 다른 성곽마을로도 확산하는 추세다. 당초 한양도성을 쌓은 이유가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면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져야 한다. 성곽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편안해져야 도성의 존재와 가치도 잘 드러날 것이다. 성곽에 기대어 사는 주민의 삶이 행복해질수록 한양도성도 더욱 튼튼히 보호될 것이다. 주민과 시민이 지키지 않는 유산을 누가 대신 지켜줄 수 있겠는가. 





주간동아 2015.12.16 1017호 (p72~73)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jerome36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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