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2

2015.04.06

물이 넘치는 개천을 위하여

불평등 국가일수록 ‘부모 재산=자녀 운명’

  •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5-04-06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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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넘치는 개천을 위하여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고교 선택 전략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입시정보를 경청하고 있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사회과학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을 상향사회이동이라고 부른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는 상향사회이동률이 떨어지는 사회다. 한국이 개천에서도 용이 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재의 중·장년층인 산업화 세대가 경험했던 높은 상향사회이동은 아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고소득 화이트칼라 비중이 높아지는 건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높은 소득, 높은 지위의 직업을 갖게 된다. 직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상당수 인구가 세대 간 상향사회이동을 경험하는 현상을 구조적 이동이라고 한다.

    인구총조사 원자료를 이용한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 관리직, 전문직, 사무직을 포함한 화이트칼라는 1966년 조사 당시 9%에 불과했지만 2010년 35%에 이른다. 반세기 만에 4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금 괜찮은 직업을 가진 중·장년층 상당수가 농민이나 육체노동자 자녀들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건 과거 세대가 유난히 진취적이었기 때문도, 현재 세대가 현저히 소극적이어서도 아니다. 사회구조 변화의 산물일 뿐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경남도지사가 된 홍준표 지사의 사례는 현재의 중·장년층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경험이다. 개인 차원으로 보면 스스로 의 노력에 대한 보상 내지 성취일 것이다. 하지만 중·장년층이 상향사회이동을 경험한 것은 개인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다. 과거와 비교해 지금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건 개발도상국인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부러워하며 한국의 낮은 성장률을 비관하는 것과 같다. 모든 사회가 산업화 이후에는 상향사회이동률이 떨어진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보다 상향사회이동률이 높은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사회학과 경제학계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 중에서도 불평등이 낮고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상향사회이동률이 높다. 반대로 불평등이 높아질수록 부모 세대의 경제력이 자녀 세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도가 높아진다. 마일스 코락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이를 일컬어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라고 칭한다.



    불평등 수준이 높은 미국이나 영국은 부모 소득과 자녀 소득이 50%가량 관련돼 있지만, 핀란드나 노르웨이 등 복지국가에서는 상관관계가 20% 미만이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뜻이다. 부모 세대의 결과의 평등 없이 자녀 세대의 기회의 평등은 주어지지 않는다. 복지에 대한 반감을 키우면서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홍준표 지사의 주장이 모순된 이유다.

    평등한 사회, 복지국가에서 용이 날 확률이 높은 이유는 이들 사회가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도 상향사회이동을 위한 자원을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상향사회이동을 하려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원 공유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는 다른 복지국가에 비해 자원을 계층별, 개인별로 사유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교육에서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이 65%이고 민간이 부담하는 비율이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보다 민간 부담률이 3배 가까이 높다. 핀란드처럼 복지와 교육 수준 둘 다 높은 나라의 민간 부담률보다는 12배 높다. 한국은 부모의 경제 수준이 자녀의 교육 수준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화 시대 이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물이 풍부한 개천을 만드는 것이다. 개천을 돌보지 않으면 용도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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