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 ‘침’을 들고 있는 구당.
의료인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는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 바로 구당 김남수(95) 옹에 대한 이야기다.
1984년 재야에서 침뜸 봉사활동을 해오던 구당은 2008년 KBS 추석특집 프로그램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에 출연하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2회에 걸친 방송은 종합 시청률 20%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민간에서는 자가(自家) 뜸 치료 열풍이 불었고, 특히 위암에 걸린 영화배우 장진영 씨를 치료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치인, 종교인, 기업인들이 앞다퉈 구당을 찾았고, 구당의 존재는 대체의학 및 민중의학의 선봉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러나 구당이 유명해질수록 침과 뜸을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라고 여기는 한의사들(대한한의사협회)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7월 29일 부산지법이 구당의 침뜸 연구단체인 ‘뜸사랑’ 회원들이 낸 신청을 받아들여 재청한 의료법 제27조항의 위헌법률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4(합헌)대 5(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의료법 제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의사면허 없이 침이나 뜸 시술, 자기요법(磁氣療法) 등 이른바 대체의학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 소송의 한가운데에 구당이 있었다.
‘주간동아’는 그동안 일단의 한의사와 뜸사랑 전직 회원들로부터 구당과 뜸사랑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제보를 받았다. 제보 내용은 △ 구당의 침사자격증과 의술 경력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고 △ 그가 치료를 했다는 유명인사들이 실제로는 치료를 받은 적이 없거나 일부 치료를 받은 적은 있어도 구당의 주장대로 완치되지 않았으며 △ 침뜸이 암, 에이즈, 사스 등 불치병을 치료했다는 과학적 인증이나 임상시험 결과가 없음에도 이를 과대포장해 주장하며 △ 구당의 의술활동을 뒷받침하는 조직인 뜸사랑이 돈 문제에서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구당을 둘러싼 현재까지의 논란은 침사자격증만 있고 구사자격증이 없는 그가 무면허 뜸 진료 행위를 한다는 점에 국한돼 있었다. 침과 뜸의 의료행위가 한의사의 고유 영역인지, 일반인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지의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므로 이 기사에서 이 문제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구당의 의술과 도덕성에 대해 일단의 한의사와 뜸사랑 전직 회원들이 제기한 의혹을 하나씩 확인해보았다.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권
8월 2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 자리한 남수침술원을 찾아 그동안 주간동아의 취재 결과를 설명하고 직접 구당의 해명을 들으려 했으나, 그는 과거 경력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대신 나머지 부분은 서면 인터뷰로 응했다. 구당과 뜸사랑 측은 주간동아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구당과 뜸사랑을 두고 제기되는 의혹들은 한의사협회와 뜸사랑에 불만이 있는 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구당 선생과 뜸사랑의 운영, 예산, 관리 등에 대해 확인·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알리는 것이 과연 국민의 알 권리에 해당하는지 (의문)”라며 “뜸사랑에서는 이러한 사항을 알릴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간동아는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의혹들을 검증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구당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행위를 하고 있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공인일 뿐 아니라 어떤 한의사나 의사보다 유명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구당과 뜸사랑 측은 “연간 1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침뜸 봉사를 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구당과 그의 의술을 신뢰한다는 말이다.
더욱이 구당과 뜸사랑의 주장대로 “치료를 잘한다”고 해서 그의 미심쩍은 경력과 과대포장된 치료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2005년 논문 조작건으로 대한민국을 흔들어놓았던 황우석 파동을 두고 황우석 박사를 옹호하는 일각에선 “난치 희귀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논문 조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황우석 박사의 전체 연구를 폄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논문 조작’이라는 분명한 잘못이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목적이 옳다 해도 과정의 잘못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연예인들의 학력 위조가 사회적으로 문제 됐을 때 “연기를 잘하니까 학력 위조는 용서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 경력으로 명성을 얻었고, 그 명성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았다면 경력의 진위를 밝히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구당과 뜸사랑 측은 “뜸사랑의 운영, 예산, 관리에 대한 부분은 내부 문제일 뿐 국민의 알 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당과 뜸사랑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을 포함해 그들로부터 침뜸을 맞은 이들은 외국인이 아닌 우리 국민이다.
구당과 뜸사랑 측은 ‘배워서 남 주자’며 침뜸 놓는 행위를 ‘무료 봉사활동’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 배우는 과정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기본과정(3개월/55만 원), 본과정(3개월/65만 원), 전문과정(6개월/120만 원)을 포함한 뜸사랑의 1년 교육비는 240만 원에 달하며, 지금까지 침뜸 교육을 받은 이가 4000여 명이다. 구당과 뜸사랑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비싼 돈을 내고 수업을 들었을 리 없다.
구당과 뜸사랑 측 “침뜸부터 취재하라”
구당과 뜸사랑 측은 주간동아가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서 말미에 “잘못 알려진 사항에 대하여만 사실 여부를 물을 게 아니라 좀더 넓은 생각을 갖고 침구사에 관한 역사와 발전과정, 침구술의 장단점, 침뜸 또는 한약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취재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말에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의혹들이 먼저 해소돼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는 구당과 뜸사랑 측의 충분한 해명을 듣기 위해 8월 25일 구당과 뜸사랑 앞으로 서면 질의서를 e메일로 보냈다. 이에 뜸사랑은 8월 28일 답변을 보내왔다. 한편 구당은 8월 31일 “국내에서 침뜸 치료를 할 수 있는 합법적 여건이 조성되기 전에는 봉사활동(시술)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