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는 신출귀몰하는데 경찰은 따라가지 못한다. 재개발지역 다세대주택 인근의 빈집을 수색하던 한 형사가 플래시로 집 안을 비추자, 유력한 용의자가 뒤쪽 창문을 통해 달아나 3.5m 담 아래로 뛰어내렸다. 형사는 고함을 치며 용의자를 따라 뛰어내렸으나 발목을 다쳐 더 이상 뒤쫓지 못했다. 근처에 있던 형사들이 도주 현장에 도착했지만 재빠른 용의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3월 3일 김길태 사건 당시 경찰은 눈앞에서 김씨로 추정되는 용의자를 놓쳤다. 10일 검거될 때까지 국민은 일주일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 교도소에서 복싱 등으로 체력을 단련한 김길태를 경찰이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신임 순경들의 체력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중앙경찰학교 신임 순경의 평균 체력점수는 2006년 88.36점에서 2007년 86.49, 2008년 84.14점, 2009년 82.69점으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특히 남자 순경은 2006년 88.44점에서 2009년 81.47점으로 급락했다. 이러니 경찰에 치안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 채용 때부터 까다롭게 뽑아야
경찰청은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경찰의 기초체력을 강화, 현장에 강한 경찰관을 육성하겠다며 올 하반기부터 경찰관 체력검정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일선 경찰서들은 예비 체력검정을 실시해 경찰관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자신의 체력 수준을 가늠하도록 돕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은 직장훈련 평가기준상 체력단련 점수(5점)를 월 2회 무도훈련 참석 횟수만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경찰청은 하반기부터 무도훈련 점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12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악력 테스트 등 4종목을 측정해 1~4등급으로 점수를 매겨 인사고과에 반영하도록 했다. 대상은 치안감 이하 전 경찰관이다.
경찰관 체력검정제 도입을 앞두고 체력 관련 전문가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체육과학연구원 고병구 박사는 “체력평가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면 경찰관들이 체력단련을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경찰서 강력계 형사도 “체력관리를 잘하는 동료도 있지만 피곤하다며 소홀히 하는 동료도 있다. 체력검정제가 실시되면 시간을 내서라도 운동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운동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고 실시해 부담스럽다”며 고개를 젓는 경찰관도 있다.
체력검정제 도입을 환영하는 전문가들도 내실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즉 경찰청에서는 1등급을 받기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실상 4등급 기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경찰 체력검정제 관련 연구를 맡았던 관계자는 “경찰 쪽에서 상위등급 기준은 까다로워도 되지만 하위등급 기준은 낮게 잡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하위등급을 높게 잡아야 체력검정제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4세 1200m 달리기 3등급 기준은 6분 5초 이하로 2007년 국민체력 실태조사와 비교해볼 때 상위 65%에 불과하다. 즉, 국민 평균보다 10% 이상 떨어지는 수치다. 4등급 아래로는 불합격 기준도 없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강한 경찰이 국민의 신뢰성을 높인다. 4등급을 국민 평균 수준으로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 또 불합격 기준을 만들어 미달자에게는 복지 차원에서 건강, 체력관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경찰관 채용 체력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체력이 강한 경찰을 뽑아 경찰의 체질을 강화할 때 체력검정 기준도 차차 높일 수 있다는 것.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종목은 10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좌우악력 4종목이다. 종목당 10점 만점으로, 지원자가 한 종목에서라도 1점을 받으면 불합격 처리된다. 예를 들어 남자 기준으로 제자리멀리뛰기의 불합격 기준은 190cm. 고병구 박사는 “소방관 채용시험에서는 238cm 미만이면 탈락인데, 이에 비하면 경찰관의 기준은 한참 모자란다. 국민의 평균체력보다 약해도 경찰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체력 강화와 관련해 모범 모델로 꼽히는 것이 소방공무원 체력평가다. 한 전문가는 “경찰 조직은 보수적인 반면 소방방재청은 체력 강화를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한다”고 평했다. 이미 소방공무원 지망생들은 까다로운 체력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체대 입시학원을 다니는 등 적극적으로 체력을 기른다. 소방방재청 소방정책과 관계자는 “현장에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 업무의 근본은 체력이다. 현직 소방관들의 체력평가도 종목별로 기준을 강화할 것이며, 인사고과 반영 비중도 확대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이 체력 기준을 강화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신임 소방관들의 체력 강화가 있다. 국민 평균체력의 상위 40% 이상인 신임 소방공무원이 늘어나면서 현직의 체력관리 기준도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체력수준 평가뿐 아니라 검거 현장에서 필요한 무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일대 허건식 교수는 “경찰이 현장에서 범인과 마주쳤을 때 제압할 수 있는 무도 기술을 얼마나 숙련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순경 임용자들은 중앙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6개월 동안 무도 수업에 배정된 시간은 75시간에 불과하다. 중앙경찰학교 전 무도교관은 “교육생들도 무도 교육을 하나의 수업 정도로 생각하는 등 학점 따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원래 운동을 했던 교육생 빼고는 일선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경찰서에서 무도 재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한 경찰서에서 무도 지도위원으로 일했던 김모 씨는 “야간근무를 했거나 나이가 있는 경찰은 무도 수업 때 힘들어 따라오질 못한다”며 치안유지 능력이 있는지 걱정했다.
무도 재교육하지 않는 일선 署
현장에 강한 경찰을 만들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고병구 박사는 “경찰의 업무를 1년 이상 관찰해 현장 상황별로 일어나는 행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직무와 밀접하게 연관된 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김형돈 교수팀은 검거 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경찰관 직무테스트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도주하는 피의자를 추적해 제압하는 모의 동작들이 테스트에 담겨 있다. 또 체력검정제 도입에 앞서 일선 경찰관에게 복지 차원에서 체력단련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관에게 ‘기분 좋은 부담’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 항명 파동 등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대(對)국민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잡아놓은 피의자에게 힘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마주친 범인을 제압하는 강인한 체력과 무도 기술이 필요한 때다. 한 경찰은 “다 좋으니 약골경찰이란 표현은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신뢰회복은 경찰의 몫으로 남았다.
신임 순경들의 체력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중앙경찰학교 신임 순경의 평균 체력점수는 2006년 88.36점에서 2007년 86.49, 2008년 84.14점, 2009년 82.69점으로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특히 남자 순경은 2006년 88.44점에서 2009년 81.47점으로 급락했다. 이러니 경찰에 치안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 채용 때부터 까다롭게 뽑아야
경찰청은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경찰의 기초체력을 강화, 현장에 강한 경찰관을 육성하겠다며 올 하반기부터 경찰관 체력검정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일선 경찰서들은 예비 체력검정을 실시해 경찰관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자신의 체력 수준을 가늠하도록 돕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은 직장훈련 평가기준상 체력단련 점수(5점)를 월 2회 무도훈련 참석 횟수만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경찰청은 하반기부터 무도훈련 점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12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악력 테스트 등 4종목을 측정해 1~4등급으로 점수를 매겨 인사고과에 반영하도록 했다. 대상은 치안감 이하 전 경찰관이다.
경찰관 체력검정제 도입을 앞두고 체력 관련 전문가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체육과학연구원 고병구 박사는 “체력평가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면 경찰관들이 체력단련을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경찰서 강력계 형사도 “체력관리를 잘하는 동료도 있지만 피곤하다며 소홀히 하는 동료도 있다. 체력검정제가 실시되면 시간을 내서라도 운동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운동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고 실시해 부담스럽다”며 고개를 젓는 경찰관도 있다.
체력검정제 도입을 환영하는 전문가들도 내실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즉 경찰청에서는 1등급을 받기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실상 4등급 기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경찰 체력검정제 관련 연구를 맡았던 관계자는 “경찰 쪽에서 상위등급 기준은 까다로워도 되지만 하위등급 기준은 낮게 잡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하위등급을 높게 잡아야 체력검정제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24세 1200m 달리기 3등급 기준은 6분 5초 이하로 2007년 국민체력 실태조사와 비교해볼 때 상위 65%에 불과하다. 즉, 국민 평균보다 10% 이상 떨어지는 수치다. 4등급 아래로는 불합격 기준도 없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강한 경찰이 국민의 신뢰성을 높인다. 4등급을 국민 평균 수준으로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 또 불합격 기준을 만들어 미달자에게는 복지 차원에서 건강, 체력관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경찰관 채용 체력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체력이 강한 경찰을 뽑아 경찰의 체질을 강화할 때 체력검정 기준도 차차 높일 수 있다는 것.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종목은 10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좌우악력 4종목이다. 종목당 10점 만점으로, 지원자가 한 종목에서라도 1점을 받으면 불합격 처리된다. 예를 들어 남자 기준으로 제자리멀리뛰기의 불합격 기준은 190cm. 고병구 박사는 “소방관 채용시험에서는 238cm 미만이면 탈락인데, 이에 비하면 경찰관의 기준은 한참 모자란다. 국민의 평균체력보다 약해도 경찰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소방방재청의 체력 관련 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한다. 소방관이 체력평가를 받는 모습.
체력수준 평가뿐 아니라 검거 현장에서 필요한 무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일대 허건식 교수는 “경찰이 현장에서 범인과 마주쳤을 때 제압할 수 있는 무도 기술을 얼마나 숙련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순경 임용자들은 중앙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6개월 동안 무도 수업에 배정된 시간은 75시간에 불과하다. 중앙경찰학교 전 무도교관은 “교육생들도 무도 교육을 하나의 수업 정도로 생각하는 등 학점 따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원래 운동을 했던 교육생 빼고는 일선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경찰서에서 무도 재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한 경찰서에서 무도 지도위원으로 일했던 김모 씨는 “야간근무를 했거나 나이가 있는 경찰은 무도 수업 때 힘들어 따라오질 못한다”며 치안유지 능력이 있는지 걱정했다.
무도 재교육하지 않는 일선 署
현장에 강한 경찰을 만들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고병구 박사는 “경찰의 업무를 1년 이상 관찰해 현장 상황별로 일어나는 행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직무와 밀접하게 연관된 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김형돈 교수팀은 검거 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경찰관 직무테스트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도주하는 피의자를 추적해 제압하는 모의 동작들이 테스트에 담겨 있다. 또 체력검정제 도입에 앞서 일선 경찰관에게 복지 차원에서 체력단련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관에게 ‘기분 좋은 부담’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 항명 파동 등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대(對)국민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잡아놓은 피의자에게 힘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마주친 범인을 제압하는 강인한 체력과 무도 기술이 필요한 때다. 한 경찰은 “다 좋으니 약골경찰이란 표현은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신뢰회복은 경찰의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