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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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는 절대善, 건물주는 절대惡?

어느 쪽도 환영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맘 편히 장사하려면 아직 멀어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5-26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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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입자는 절대善, 건물주는 절대惡?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이 4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나, 쫓겨납니다’를 주제로 상가권리금약탈방지법 처리 지연을 규탄하는 임차상인 100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리금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5월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가권리금 보장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2014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권리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권리금은 상가를 매입하거나 임차할 때 관행적으로 주고받았던 일종의 ‘자릿세’ 내지는 ‘보상금’으로 바닥권리금, 영업권리금, 시설권리금으로 구분한다. 역세권이거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라면 바닥권리금이 높고, 단골고객 수가 많으면 영업권리금이 높으며, 감가상각 후 남은 시설의 가치에 따라 시설권리금을 매기는 식이다. 2013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실태조사에 따르면 권리금이 있는 임대차는 55%에 달하고, 임차인의 85%가 향후 권리금을 받고 나가겠다고 응답했다.

    권리금은 엄연히 실체가 있는 돈이었지만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임차인들 간 거래일 뿐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어서 분쟁의 씨앗이 됐던 것. 건물주가 건물을 새로 짓는 등의 이유를 내걸면 세입자는 그 전에 아무리 비싼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더라도 권리금을 포기해야 했다. 또 세입자끼리 실제 매출에 관계없이 권리금만 부풀리는 거래도 행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가수 싸이는 본인 소유의 서울 한남동 건물에 세든 카페 임차인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5월 7일 건물인도청구 및 부당이득금 소송 첫 변론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재판과 별도로 임차인 측에 중재안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힙합듀오 리쌍은 2012년 본인 소유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건물에 세든 임차인과 분쟁 끝에 일부 비용 보전을 조건으로 기존 1층 상점을 지하 1층과 주차장으로 옮기도록 조율했으나, 이후 주차장 사용 문제를 놓고 다시 소송을 벌였다 패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법 개정이 권리금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개정안에서는 권리금의 정의를 상가임대차법에 도입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했고, 임대인으로 하여금 임차인들 간 권리금 수수행위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법으로 금지되는 임대인의 방해 행위는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하거나 수수하는 행위 △신규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신규 임차인에게 고액의 차임과 보증금을 요구하는 행위 △그 밖에 ‘정당한 사유’ 없이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거절하는 행위 등이다. 여기서 정당한 사유에는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이 보증금 또는 차임을 지급할 자력이 없거나 △신규 임차인이 임차인으로서 의무를 위반할 우려 또는 임대차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임대인이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 △임대인이 선택한 신규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을 체결하고 그 권리금을 지급한 경우 등이 해당한다.



    또한 서울 기준으로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 원 이하일 경우에만 인정되던 대항력이 모든 상가임대차에 확대돼 임대인이 바뀌어도 5년간 영업기간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권리금 산정 근거와 권리금 관련 권리·의무관계를 명확히 한 권리금과 임대차 표준계약서가 도입될 예정이다. 각 시도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한다는 조항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논의 과정에서 제외됐다.

    건물주들에게는 개정안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임대차 기간 만료 이후 다른 업종으로 바꾸기 위해 신규 임차인과의 계약을 거절하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줘야 한다. 이 때문에 개정안이 임대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건물주가 권리금을 돌려줘야 할 경우까지 예상해 전반적으로 임대료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건물주도 세입자도 불만인 개정안?

    임차인은 어떨까.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소상인들과 시민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즉각적인 재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형할인점, 대규모 점포, 백화점, 전통시장 등은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 데다 건물주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할 경우 권리금을 회수할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 점포(매장 넓이 3000㎡ 이상)에 속한 1816곳(지난해 10월 기준)은 개정안에 따르면 권리금 보호 대상이 아니다. 권리금에 부과될 세금도 새로운 부담이다. 정부가 지난해 파악한 평균 상가 권리금은 2748만 원, 보호대상 권리금 총액은 33조1000억 원이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권모(51) 씨는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와 관리비 200여만 원을 내고 장사를 하고 있다. 성균관대 학생들과 공연을 보러 온 손님들 덕에 장사가 잘되는 편인 권씨의 매장 권리금은 7000만 원. 권씨는 “권리금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환영한다. 다만 우리 같은 세입자들은 건물주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한다고 하면 권리금을 받을 길이 없다. 사실 재건축 때문에 권리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또한 권리금을 평가하는 기준도 제각각이라 개정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모임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이 4월 28~29일 전화와 인터넷 설문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가권리금이 평균 월세의 53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동구의 한 요식업 매장은 월세 230만 원에 권리금은 3억 원으로 130배나 차이가 났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카페는 월세 300만 원에 권리금은 3억 원으로 100배가량 차이를 보였다.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은 “이번 법 개정의 가장 큰 성과는 ‘임차상인의 영업가치(권리금)가 임차상인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법으로 명시했다는 부분”이라며 “2013년 개정안에서 환산보증금을 초과하는 임대차에도 5년간 계약갱신요구권을 적용할 당시 빠져 있었던 ‘대항력’을 환산보증금을 초과하는 모든 임대차에 적용키로 한 것도 주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다만 “임대인의 방해금지의무 예외 사유 중 ‘임대차목적물인 상가건물을 1년 6개월 이상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경우’는 독소조항이다. 상가권리금은 특성상 월차임보다 많게는 100배 가까이 되는데 권리금이 18개월분 월차임보다 훨씬 크다면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18개월분의 월차임을 포기하면서 합법적 약탈을 시도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법에서 보장하는 갱신기간 5년을 초과할 경우 임차상인이 불안한 처지에 놓이는 점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조항이 빠진 점 △임대인이 재건축을 하고자 할 때 실질적으로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받기 어려운 점 △전대차와 대규모 점포 및 준대규모 점포의 경우 일괄적으로 권리금 회수 기회 보장이 제외된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권리금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관행은 아니다. 민변 부동산팀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건물주 리쌍과 곱창가게 임차인 사이 명도소송을 맡으며 상가임대차에 관심을 갖게 된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3월 임차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법률지식서 ‘골목사장 생존법’을 발간했다. 그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권리금을 선의의 돈이라는 뜻에서 ‘굿 윌(good will)’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상점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받기 위한 돈이라는 뜻에서 ‘키 머니(key money)’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양도금이라는 뜻의 ‘전양비’라는 말을 쓰고, 프랑스에서는 상점 권리금을 ‘퐁 드 코메르스(Fonds de commerce)’라고 한다.

    세입자는 절대善, 건물주는 절대惡?

    5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가 상가 권리금 법제화를 담고 있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법률 개정에 대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권리금을 법적으로 보장한 부분과 건물주가 바뀌어도 임차인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거나 건물을 비영리로 사용하면 권리금을 받을 수 없게 됐는데, 재산권은 형평에 맞게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한쪽 권리만 보장할 수는 없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대형 유통상가와 백화점 매장은 법 적용이 안 되고 일률적으로 배제된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리금에 대해 감정평가가 이뤄지면 권리금을 함부로 부풀려 매도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종의 작은 M·A(인수합병)와도 같기에 M·A의 중요한 절차가 거래에 포함돼야 합니다. 그동안 매출이 안 나올 경우 그 리스크를 양수인이 부담했는데, 해외에서는 실제 매장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시스템이 있고, 일정 기간 매출이 안 나오면 매매계약 대금을 조정하거나 감액하는 제도가 정립돼 있습니다.”

    개정안은 시작에 불과

    권리금 문제는 주로 절대악인 건물주 대 선량한 세입자의 구도로 언론에서 다뤄졌지만, 권리금을 부풀려 다음 세입자에게 비싸게 매장을 넘기고 차익을 챙기는 악덕 세입자도 분명 존재한다. 또 다른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교회도 신도 수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권리금을 올려 받고 매매하는 현실에서 권리금 뻥튀기 장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주로 PC방이나 카페 등 창업비가 크게 들지 않는 매장을 열고 권리금을 뻥튀기해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반적으로는 임차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져 건물주는 억울하다 하고, 세입자도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라며 “권리금 거품은 빠지겠지만 과세도 이뤄지기 때문에 임대료가 올라갈 개연성이 있다. 또한 시설권리금은 눈에 보이니까 대략 감정이 가능하지만, 영업권리금과 바닥권리금은 얼마나 인정해야 하는지 사례가 많지 않아 딜레마일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목이 좋은 곳에 건물을 새로 짓고 건물주가 임차인을 받을 때 임차인으로부터 받는 권리금에 대해서는 이번에 언급되지 않았어요. 새로 생기는 상가의 약국 자리 같은 경우에는 3억 원 가까운 권리금이 붙기도 하거든요. 그런 권리금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명료하게 해줘야 임차인이 진정으로 갑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상가임대차법 개정안과 관련해 정부의 후속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국토교통부(국토부)는 내달 초까지 감정 평가를 통한 권리금 산정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권리금 거래에 필요한 표준계약서는 국토부와 법무부가 협의해 지방자치단체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을 통해 공표할 예정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권리금은 30~40년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인데, 한 번의 개정안으로 해결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며 “시행착오를 겪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재건축 시 권리금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도시재생사업 시 권리금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부분을 살피고 조금씩 바꿔나가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법을 손질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배제된 전통시장은 권리금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다. 관련 위원회를 만들고 프로세스를 단계적으로 마련해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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