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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수렵보좌관’ 감투 쓴 영국 고양이 래리

‘영국의 트럼프’ 존슨 총리가 트럼프를 따라 할 수 없는 한 가지

‘수석수렵보좌관’ 감투 쓴 영국 고양이 래리

‘수석수렵보좌관’ 래리. [AP=뉴시스]

‘수석수렵보좌관’ 래리. [AP=뉴시스]

보리스 존슨(55) 신임 영국 총리가 총리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첫 기자회견을 한 7월 24일(현지시간) 언론의 관심은 영국 역사상 최초로 ‘퍼스트 걸프렌드’가 된 캐리 시먼즈(31)에게 쏠렸다. 시먼즈는 현재 이혼소송 중인 존슨 총리의 동거녀로, 총리관저에 공식 입주하는 최초의 혼외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총리관저 한 귀퉁이에서 이를 심드렁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이다. 제법 거창해 보이는 직함이지만 Mouser는 ‘쥐잡이’를 뜻한다. 총리관저를 지키는 수석쥐사냥꾼이라는 의미니, 올해 열두 살 된 수고양이 래리를 가리킨다.


다우닝가의 고양이들

6월 영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 부부가 기념촬영하는 모습을 왼쪽 창문턱에 앉은 ‘수석수렵보좌관’ 래리가 바라보고 있다. [AP=뉴시스]

6월 영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 부부가 기념촬영하는 모습을 왼쪽 창문턱에 앉은 ‘수석수렵보좌관’ 래리가 바라보고 있다. [AP=뉴시스]

2011년부터 다우닝가 10번지에 살고 있는 래리가 맞이한 총리 ‘집사’만 벌써 세 명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그리고 보리스 존슨이다. 래리는 런던 유기묘 보호소에서 살다 총리관저에 출몰하는 쥐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자 캐머런 가족에게 직접 발탁되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고양이다. 

의외로 수렵보좌관의 역사는 오래됐다. 의회와 가까워 총리관저(10번지)와 재무장관관저(11번지·18세기까지 재무장관이 총리 역할을 맡음)가 위치한 다우닝가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헨리 8세 때 재무장관을 맡았던 토머스 울지 추기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다 정부의 세금 지출과 연관돼 정부 문서에 공식 등장한 것은 1929년 6월이다. 당시 총리관저 예산을 담당한 재무부 관료 A. E. 밴햄이 쥐 퇴치를 위해 “하루 1페니의 푼돈으로 유능한 고양이를 계속 두기로 했다”고 언급한 기록이다. 이 비용은 1932년 1주일에 1실링 6페니가 됐고, 2011년 현재 1년에 100파운드까지 올랐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보도한 바 있다. 



이렇게 총리관저를 거쳐간 고양이는 여럿이다. 가장 오래 봉사한 고양이는 1973~86년 13년간 에드워드 히스, 해럴드 윌슨, 제임스 캘러헌, 마거릿 대처 등 4명의 총리를 모신 윌버포스다. 하지만 수석수렵보좌관이라는 공식 직함이 부여된 고양이는 래리가 최초다. 


2012~2014년 래리와 함께 수석수렵보좌관 업무를 수행한 프레야. [위키피디아]

2012~2014년 래리와 함께 수석수렵보좌관 업무를 수행한 프레야. [위키피디아]

문제는 래리가 본연의 임무 수행에 너무 태만해 쥐가 다시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점. 이로 인해 ‘Lazy Larry(게으른 래리)’라는 보도가 나가자 캐머런 전 총리는 2012년 9월 래리를 일시적으로 해고하고 재무장관관저의 쥐잡이 고양이 프레야를 수석수렵보좌관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열 살 된 호랑무늬 암고양이 프레야의 사냥 실력이 그만큼 월등했기 때문. 

하지만 래리를 쫓아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프레야와 함께 수석수렵보좌관 직책을 유지시켜주되 총리관저 방문객을 맞이하고, 보안상태를 점검하며, 고가구의 편안함을 테스트하는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다 프레야가 2014년 9월 교통사고를 겪고 은퇴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현재는 래리가 유일한 수석수렵보좌관이다. 

존슨 총리는 여러모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고 해 ‘영국의 트럼프’로 불린다. 풀풀 날리는 금발머리에 수다스럽다는 점도 닮았지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를 열렬히 지지하는 민족주의 성향이 뚜렷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심지어 7월 25일 영국 하원에서 있었던 총리 취임연설에서 “2050년까지 영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백악관의 고양이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의 ‘퍼스트 캣’ 삭스.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의 ‘퍼스트 캣’ 삭스.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래리와 프레야 때문에 존슨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완동물과 관련해 아주 독특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백악관을 거쳐간 45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유이(唯二)하게 애완동물이 없는 대통령이다. 다른 한 명이 19세기 중반 11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녹스 포크(1795~1849)라는 점에서 백악관은 160여 년 만에 개와 고양이는 물론 소, 말, 염소, 토끼, 악어, 앵무새, 카나리아, 심지어 비단나방 같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는 곳이 됐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의 ‘퍼스트 캣’ 인디아. [미국 백악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의 ‘퍼스트 캣’ 인디아. [미국 백악관]

고양이만 놓고 봤을 때 최초의 ‘퍼스트 캣’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키운 테비와 딕시였다. 마지막 퍼스트 캣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검은고양이 인디아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가족은 보와 서니라는 포르투갈 워터도그(개) 한 쌍을 키웠다. 

다행히 존슨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매정함’까지 따라 하긴 힘들 듯하다. 영국 총리관저에는 터줏대감 래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래리의 지위를 위협하는 위험신호가 포착되긴 했다. 존슨 총리 커플이 주거 공간이 더 넓은 다우닝가 11번지 재무장관관저 2층 아파트에서 생활할 것이고, 고양이 대신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로 인해 개와 앙숙인 고양이 래리가 쫓겨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 뉴스에 대해 31만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래리의 비공식 트위터 계정에는 ‘절대 반대(HELL NO)’라는 메시지가 떴다. 

개는 주인을 따라 거처를 옮겨가는 것에 거부감이 적다. 반면 고양이는 ‘집사(주인)’보다 장소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집사가 바뀌더라도 자신이 살던 곳에서 터줏대감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존슨 총리가 애완견을 들여 ‘찬밥 신세’가 되더라도 래리가 제 발로 걸어나갈 리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거기엔 국민들의 보는 눈도 있는데 인간 나이로 환산했을 때 환갑을 넘긴 래리를 설마 억지로 쫓아내겠느냐는 막연한 바람도 담긴 듯하다.






주간동아 2019.08.02 1200호 (p4~6)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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