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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단통법 있으나마나 ‘표인봉(페이백의 은어)’은 죽지 않았다

40만 원 돌려준다더니 라면 40봉지…불법 페이백 사기 여전

단통법 있으나마나 ‘표인봉(페이백의 은어)’은 죽지 않았다

단통법 있으나마나 ‘표인봉(페이백의 은어)’은 죽지 않았다

4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단통법 시행 6개월 평가 토론회’가 진행됐다.

‘스크 베시놋번이 현아에 당일 표인봉 사인 8장이네요.’ ‘여자친구가 아식스 개통하고 표인봉 사인 24장 받았습니다.’ ‘12월 달에 알파 사고 표인봉 사인 13장 받았네요.’ ‘요즘은 현아랑 표인봉 모르면 폰 못 사네요? 현아 시디 28장으로 완납하고 노트4 택배로 받을 예정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표인봉’을 검색하면 이런 내용이 줄줄이 뜬다. 주로 휴대전화, IT(정보기술) 기기 관련 커뮤니티에서 ‘표인봉 사인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휴대전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일 인기 있는 연예인은 표인봉과 현아다. 뜬금없이 개그맨 표인봉의 사인을 수십 장씩 받았다니 무슨 일일까.

여기서 표인봉은 개그맨 표인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휴대전화 개통 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정한 범위 내 보조금 외에 추가 지원금을 현금으로 편법 지급하는 페이백(Pay Back)과 초성이 같다는 이유로 표인봉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이백을 뜻하는 은어로 널리 쓰인다. 표인봉 사인 24장을 받았다는 건 현금 24만 원을 돌려받았다는 뜻. 현아는 현급 완납(현완)의 은어. 지난해 10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실시 이후 잠잠해질 줄 알았던 페이백 판매가 여전한 것은 물론,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어 소비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휴대전화 싸게 사는 표인봉의 마법

단통법 있으나마나 ‘표인봉(페이백의 은어)’은 죽지 않았다

페이백 금액 대신 라면 40봉지를 택배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글. 페이백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네이버 카페와 밴드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위부터).

단통법 아래에서는 페이백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휴대전화 판매업체들은 ‘현금을 준다’ ‘페이백이 있다’ 같은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게 만두, 별사탕, 도넛, 배추, 휴지 등이다. 휴대전화 판매업체 A통신 등은 지난해 12월 스마트폰을 판매하면서 ‘사은품으로 라면 40봉지를 석 달 후 주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누리꾼들은 여기서 사은품인 ‘라면 40봉지’를 ‘현금 40만 원’을 돌려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단통법 이후 얼어붙었던 페이백 시장에서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구매할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많은 이가 가입을 신청했고, 이들은 3개월 뒤 40만 원을 돌려받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가입자에게 페이백 금액이 들어올 시점에 돈 대신 문자 그대로 라면 40봉지가 배달된 것. 단통법 이후에도 스마트폰 액정필름이나 휴대전화 케이스 등 2만 원 상당의 상품은 대리점이 서비스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업체 측에서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다 2만 원 상당의 사은품에 준하는 라면 한 상자를 보낸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가입자들은 그제야 당했다는 걸 알았으나 개통 철회 기간인 2주를 훨씬 넘긴 뒤라 철회도 불가능했다.

인터넷 휴대전화 정보 공유 커뮤니티 ‘호갱님우리호갱님’과 ‘뽐뿌’에는 관련 피해자들이 넘쳐난다. 5월 7일 올라온 글의 댓글에는 ‘저도 어이없게 라면 40개 받았네요. 생각할수록 열받네’ ‘와 난 80개라서 아예 꺼내보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 진짜 ○○면인가 뜯어봤는데 매운맛 40개 순한맛 40개 아따마 확 디비지겠네’ ‘라면 47개라 해놓고 휴지가 왔네요. 미치겠네요. 이걸 가만둬야 하나요?’ 등 ‘라면 택배’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이들은 네이버 밴드와 카페에 피해자 모임을 만들고 카카오톡 단체채팅 등으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번 사기에 당한 사람은 알려진 것만 1000여 명 가까이 된다.

지난해 12월 A통신에서 가족들의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페이백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직장인 정모(31) 씨는 “단통법 이후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살 기회가 사라진 차에 가족들의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바꾸려다 사기를 당했다. 남들은 당해도 나는 안 당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약속한 기간이 지나도 입금되지 않아 업체 측에 전화해보니 번호가 바뀌었더라. 페이백을 지급받으려다 피해 보면 휴대전화로 차익을 남겨 장사하려는 폰테커 아니냐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오프라인에서 제값 다 주고 스마트폰 구매했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며 답답해했다. `

3월 29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 서대문구 신촌과 경기 일산 등에 위치한 휴대전화 판매점의 대표로부터 페이백 사기를 당했다는 고소장이 여러 건 경찰에 접수됐다. 피해자 대다수는 SK텔레콤 가입자였고, 일부는 LG유플러스 등 다른 이동통신사 가입자였다. LG유플러스는 확인된 피해자들에게 피해금액을 지급하기로 했고, SK텔레콤 측은 판매점을 통해 휴대전화 개통 계약을 맺은 대리점과 협의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진행하기로 한 상태다.

이번 사태는 제2의 ‘거성모바일 사태’로도 불린다. 거성모바일 사태는 2012년 8월부터 5개월간 휴대전화 판매업체 거성모바일 대표 안모 씨가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사후 보조금을 주겠다는 글로 가입자를 모은 뒤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식으로 4000여 명 피해자로부터 23억여 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거성모바일은 보조금 단속을 피하고자 판매 공지에 쓴 빨간색 글자 수만큼 페이백을 지급하는 식으로 누리꾼들과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진행중이다.

3월 30일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방통위는 페이백 관련 민원이 늘어남에 따라 이용자의 주의를 촉구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관심 단계 ‘조기경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3월 셋째 주에만 특정 유통업체 관련 민원이 총 75건 접수되는 등 페이백 민원 상승세가 두드러진 데 따른 것이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페이백이 통상 유통점 등에서 이용약관과는 다르게 이용자와 은밀하게 개별적인 거래를 통해 이뤄지므로 분쟁 발생 시 관련 증거가 불명확할 뿐 아니라 페이백 자체의 법적 효력이 문제가 될 수 있어 실제적인 피해보상이 어려우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고 밝혔다. 또한 유통점의 페이백 등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단통법 위반 신고센터(080-2040-119)로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페이백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전화 구매 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단통법이 시행되기 전 페이백을 받고 부모의 휴대전화를 갤럭시 노트2로 바꿨다는 대학생 한모(23) 씨는 “페이백을 받으려면 비공개 밴드에 초대받아 들어가야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외부로 정보를 유출하는 것도 불법이다. 페이백을 지급받는 사람도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같은 기종이 국내에 비해 절반 가까이 저렴한데 국내에서는 페이백이 아니면 휴대전화를 저렴하게 살 길이 없다. 똑같은 아이폰을 40만~50만 원 가까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솔깃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거성모바일 사태 이후 페이백을 지급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페이백도 개통 즉시 현금을 지급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사후 지급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단통법 있으나마나 ‘표인봉(페이백의 은어)’은 죽지 않았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이동통신사 수익성 개선법이라는 비판이 고조되는 가운데 5월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이 공휴일임에도 영업을 하고 있다.

단통법 이후 이동통신사만 웃었다?

지난해 A통신의 페이백 대란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지만 휴대전화 개통은 하지 않았다는 직장인 최모(27) 씨는 “당시에도 지나치게 좋은 조건을 내세워 사기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페이백은 모 아니면 도다. 운이 좋으면 헐값에 휴대전화를 살 수 있지만, 사기를 당하면 제값을 다 줘야 한다. 라면 택배를 받은 사람들은 다행히 언론에서 이슈화해 보상을 받게 됐지만, 거성모바일 피해자들은 재판이 진행 중이고 보상도 못 받은 것으로 안다. 페이백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면서 단통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정가로 휴대전화를 사는 사람은 눈 뜨고 당하라는 건가 싶다. 이런 식이면 누가 법을 지켜가며 휴대전화를 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가격이 올랐다고 불만이 많지만, 이동통신사 영업이익은 단통법 시행 전보다 급증했다. 1분기 SK텔레콤 영업이익은 402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 늘었고, KT는 320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35%, LG유플러스는 154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휴대전화 판매업자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 단통법이 시행되고 추가 지원금이 감소하다 보니 공시가대로 팔면 휴대전화를 살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판매업체에서는 제 살 깎기 식으로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단말기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페이백을 하려는 소비자만 뭐라 할 게 아니다. 정부 지원금을 올려주거나 휴대전화 기기 값을 내리지 않는 이상 음지 영업은 성행할 테고, 피해는 고스란히 법을 지키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단통법 위반 행위에 대한 단속을 대대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방통위에는 이달 말 이동통신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한 단말기유통조사과가 신설된다. 인원은 총 10명으로 확정됐다. 방통위 직원 8명과 경찰 1명, 미래부 직원 1명씩 파견받아 부서가 운영된다. 신설되는 단말기유통조사과는 페이백 등 단통법 위반 행위 단속과 무선이동통신시장을 전담해 관리하고, 기존 관련 업무를 맡아온 시장조사과는 초고속인터넷과 알뜰폰 업무 등을 전담한다.

입력 2015-05-26 13:21:00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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