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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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채널 많아야 “까라면 까” 막을 수 있다

상명하복 의사소통 구조 땐 불통과 제왕적 리더십 불러 모두가 피해볼 수도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입력2013-10-07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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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소통 채널 많아야 “까라면 까” 막을 수 있다

    상명하복 구조는 순식간에 구성원의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구 결과 구성원 간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할 경우 더 높은 수준의 의견 일치가 이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핵분열과 핵융합의 물리학은 세계 정치지형을 바꿨고, 현재 진행되는 빅 데이터(big data) 물리학은 이미 우리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많은 투표자의 행동 데이터 분석이 미국 대통령선거의 선거전략 수립에 활용됐으며, 대형마트는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한 쇼핑 카트의 이동 경로 자료를 분석해 상품 진열 결정에 참고한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그 영향이 좋든 안 좋든, 그리고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일상의 자료는 수집되고 분석되며 이용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규모를 훨씬 넘어서 말이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논문

    그러나 사실 매일 더디게 진행되는 연구 단계에서 진행을 위해 가치판단이 필요한 경우는 드물다. 지금은 기존 과학의 바탕을 뒤흔드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과학혁명의 시기’가 아닌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시대다. 물리학자는 대부분 자신이 진행하는 연구의 물리학 밖 ‘의미’에 대한 큰 고민 없이 하루하루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연구 주제를 정할 때 물리학 외의 가치판단이 거의 필요하지 않던 필자에게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된 논문이 있다. 필자가 읽은 그 논문 저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과 같은 방식으로 연결된 구성원의 모임이 가장 높은 수준의 ‘때맞음’을 보여준다. 필자는 ‘주간동아’ 904호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때맞음’에 대해 설명했다. 많은 청중이 모여 각자 다른 사람의 박수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는 상황에서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이 같은 박자로 박수를 치게 되는 것을 사례로 소개했다. 사람들이 혼자 치는 박수의 박자가 제각각이었어도 말이다.

    앞선 논문의 저자들은 처럼 연결됐을 때 때맞음이 가장 잘 일어난다는 것을 수학적 방법으로 엄밀히 증명해놓아 그 결과가 틀릴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가 이 논문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이 가장 좋다는 결과가 ‘너무 싫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이전에 출판했거나 읽은 과학 논문의 결론은 ‘옳거나 틀리거나’ 할 수 있지만, 논문의 결론에 대해 ‘좋거나 싫거나’라는 가치판단을 해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필자가 이 논문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의 나무 모양 연결망에서는 완벽한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 연결망 화살표의 방향은 구성원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향이다. 상위 구성원은 자기 아래의 구성원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들로부터는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 구조다. 전체 연결망이 더 높은 수준의 의견 일치에 이르는 데는 이러한 완벽한 상명하복 구조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주적인 합일 과정보다 모든 사람이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한다’는 과정을 따르는 것이 사회 전체의 공통된 의견 형성에 더 효과적이라는 뜻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논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논문 저자들이 이용한 수학적 모형은 각 구성원이 가진 고유진동수가 서로 다른 경우를 기술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각자가 가진 고유진동수가 서로 다른 경우(홀로 있을 때 개인이 치는 박수 박자가 모두 제각각이어서 이 논문의 모형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경우)에도 이 가장 효율적인 구조일까. 이 내용을 살펴보는 방향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연구 결론만 먼저 소개하면, 개개인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의 의사결정 방식이 최적의 구조가 아니다.

    한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같은 계층의 사람이나 자기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얼마나 있는지를 기술하는 조절변수를 p라 하자. 만약 p=0이면 이 된다. p값이 점점 더 커지면 처럼 좀 더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이 만들어진다. 필자가 싫어한 원래 논문의 결론은 p=0인 의 완벽한 상명하복 구조가 계층 간 의사소통이 가능한 구조보다 더 큰 규모의 ‘때맞음’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엄재곤, 한성국 박사와 함께 이에 대한 새로운 계산을 했다. 구성원 고유진동수의 다양성이 허락된 모형을 이용해 도출한 결과가 다음 장의 이다.

    의사소통 채널 많아야 “까라면 까” 막을 수 있다
    무늬만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은 구성원의 때맞음 정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세로축 값이 0이면 모든 구성원이 제각각 박수를 치는, 때맞음이 전혀 안 된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1은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치는 상태로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 제각각 박수를 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의견 일치에 이르러 어느 정도 비슷한 박자로 박수를 치게 되는 현상은 p값에 관계없이, 즉 사람의 의사소통 채널 구조에 관계없이 항상 일어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완벽한 상명하복 계층구조(p=0)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때맞음 정도가 커진다. 상명하복 구조에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이 생길수록 때맞음 정도는 줄어든다(p=0인 경우와 p=0.5인 경우를 에서 비교할 것).

    흥미로운 일은 그다음에 생긴다. 의사소통 채널이 충분히 많아지면(p=0.5와 p=1을 비교할 것) 상황이 역전돼 때맞음 정도가 완벽한 상명하복의 계층 구조(p=0)를 넘어서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p=1)가 상명하복 의사소통 구조(p=0)를 넘어서는 결과를 얻는 상황이 일어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를 좀 더 확실히 보여주려고 그린 것이 와 이다.

    를 보면 상명하복 구조에서 다양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 한동안은 때맞음 정도가 약해진다. 그러나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이 훨씬 더 활발해지면(즉 p가 충분히 커지면), 결국에는 상명하복 구조보다 더 강한 때맞음이 일어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와 공동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얻고 상당히 기뻤다. 필자가 싫어하던 원 논문과는 다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원 논문의 결과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결과는 사람들의 개성이 다양한(구성원의 고유진동수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을 뿐이다. 에서 볼 수 있듯, 상명하복 계층구조를 넘어서는 정도의 때맞음이 일어나려면 의사소통 채널의 다양성을 ‘상당히’ 보장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대충대충 ‘무늬만’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상명하복의 계층구조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은 구성원이 의견 일치에 도달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를 필자의 모형에서 측정해본 것이다. 상명하복 계층 구조(p=0)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의견 일치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의견 일치에 도달하게 된다.

    필자와 공동연구자들이 얻은 결과는 엄청나게 단순화한 추상적인 모형에서 구한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의 의견 일치 과정과 직접 비교하는 데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그럼에도 필자의 연구 결과는 민주적인 의견 일치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먼저 상명하복의 계층구조는 큰 장점이 있다. 최상위층에서 정한 내용을 엄청나게 빠른 시간 안에 최하위층 모든 구성원에게까지 전달할 수 있다( 참조). 그러나 큰 문제도 있다. 최상위층의 결정이 전체 사회를 위해 올바른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 결정이 사회 전체에 파급돼 모든 구성원이 잘못된 결정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반면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과 토론이 가능한 구조의 경우에는 최상위층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도 구성원의 의견 교환을 통해 다른 의견으로 합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비록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리지만. 민주주의는 길고 긴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의사소통 채널 많아야 “까라면 까” 막을 수 있다
    의사소통 채널 많아야 “까라면 까” 막을 수 있다
    교수의 헛소리, 학생들의 뒷담화

    우리 사회 안의 모든 의사결정 구조에서 계층을 넘나드는 채널이 많을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군이 바로 눈앞에서 진격해오는데 대응 전략을 결정한다고 며칠씩 토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의사결정 내용보다 의사결정에 이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결정이 아닐지라도 대응 전략을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 아마도 군대의 명령체계가 구조인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체가 군대는 아니다.

    앞에서 얘기하진 않았지만 구조를 다시 보면 최상위자는 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딴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충분히 다양한 의사소통 구조가 존재하면, 최상위자의 일방적인 명령을 전체 집단의 다른 올바른 의견으로 수렴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 사회의 정치 구조나 대기업 내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지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불통의 리더십’이나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표현과 더불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진행하는 많은 연구는 연구팀을 이끄는 교수와 그들의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그룹에서 주로 진행한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필자 같은 지도교수가 연구와 관련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도, 그룹에 속한 대학원생이 그것을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지도교수의 헛소리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이 글을 성의껏 읽은 독자라면 이미 답을 안다. 그 답은 ‘뒷담화’ 활성화다. 뒷담화로 바로잡아진 필자의 헛소리를 대학원생들이 다시 필자에게 고쳐 알려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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