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일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왼쪽)과 박근혜 전 대표가 강원지역 합동연설회에 나란히 입장하면서 인사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7월, 이른바 ‘박근혜 사생활’이 불거져 나오자 박근혜 전 대표는 이렇게 응수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한 검증위원이 고(故) 최태민 목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묻자 ‘숨겨둔 아이’가 나오면 DNA 검사까지 받겠다고 역공한 것. ‘여성 대통령 시기상조론’에 대해선 2006년 9월 독일 여성 총리 메르켈을 만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롤 모델’로 설정하면서 여성 대통령 불가론을 희석시켰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공격에는 ‘경제성장을 이끈 박정희의 딸’로 응수했다. 이른바 ‘박근혜 불가론’에 대한 대응이었다.
“사찰 의혹? 그런 얘기는 많이 있었죠”
‘박근혜 불가론’은 야당의 문제 제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명박 후보와의 전면전 상황에서 이 후보 선거 캠프 측의 별도 라인이 확대 재생산한 ‘공격 무기’성격이 강했다. 당시 이 후보 캠프의 핵심 관계자 A씨의 설명이다.
“이명박 후보 캠프에는 박근혜 후보의 문제를 제기할 별도 팀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꾸준히 ‘불가론’을 확산했다. 박 후보 캠프에서도 이 후보의 ‘BBK 문제’를 파헤치며 ‘이명박 본선 불가론’을 만들어냈다.”
대통령 후보 경선 뚜껑을 연 결과는 이명박 49.56% 대 박근혜 48.06%. 박 후보는 당원 대의원 선거인단 투표에선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박빙의 패배를 맛봤다. 박 후보는 패배를 인정하며 “며칠, 몇 날이 걸리더라도 경선 과정의 일들을 잊자”며 자신의 불가론을 포함해 경선 과정의 마찰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박근혜 불가론’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세종시 문제와 친박계 국회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 문제로 친이(친이명박)계와 마찰을 빚으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 친이계 의원의 말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위해 본회의 발언에 나선 것은 (2005년 4월 당 대표 자격으로 본회의 교섭단체 연설 이후) 5년 2개월 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국회 표결을 요청한 것은 일종의 ‘발빼기’였는데 거기에 굳이 발언을 하며 대못을 박으니 (친이계가) 흥분했던 거 같다.”
당시 ‘독선적 리더십’ ‘고집불통의 리더십’이라는 또 다른 모습의 ‘박근혜 불가론’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8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청와대 회동 이후 급속히 화해 기류가 조성됐고, 정치권에선 ‘2012년 대선후보 경선 공정관리’가 대화의 핵심이라고 추측했다. 박 전 대표 역시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일각에서 ‘고집스럽다’는 비판을 받던 차에 대통령을 만나면서 이러한 비판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박 전 대표는 연일 당 친이계 의원들과 만나는 ‘광폭 행보’를 이어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이계 의원과도 만나고 싶었는데 지난 2년간 당내에 벽이 있어 만남을 청하지 못했다. 이제 언제든지 서로 연락하자.”
이 대통령이 10월 1일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한 자리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도 했다.
그의 공개 행보에 ‘변신’이라는 분석이 쏟아졌고, ‘박근혜 불가론’도 자연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는 친박계 의원들의 복당과 세종시 문제가 해결되면서 친이-친박 간 마찰이 준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박 전 대표와 친이계 의원 모두 셈법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확 달라진 표심 앞으로 행보가 관건
박 전 대표가 9월 14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의원(가운데), 박영아 의원 등 친이계 여성 의원과 얘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친이계 의원들과 만나는 ‘광폭 행보’로 관심을 끌었다.
이와 함께 친이계 의원들도 2012년 4월 총선을 감안하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은 ‘선수(選數) 쌓기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한 친박계 의원의 분석이다.
“우리(친박계)도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고, 그쪽(친이계)도 박 전 대표가 필요하다. 예전처럼 강력한 대항마(이명박 대통령)가 있다면 ‘박근혜 불가론’이 여러 차례 튀어나왔겠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다. 대선 8개월 전에 치르는 총선을 감안하면 ‘박근혜 저격수’를 자처할 의원도 많지 않다. 2012년 총선, 특히 수도권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어렵다’고 하는 마당에 박 전 대표를 공격한다면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표를 잃을건 뻔하다. 앞으로 ‘박근혜 불가론’은 대항마가 나오기 전까지 들어보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불가론’은 경선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진 만큼, 다시 꺼낼 경우 ‘식은 피자’ 신세가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지난 경선처럼 박빙의 승부도 아니고, 박 전 대표를 쓰러뜨릴 ‘한 방’도 없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지 않나. 총선 공천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박 전 대표에게 밉보일 필요도 없고, 필요하면 선거 지원유세를 요청할 수 있는 끈도 만들자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귀띔했다.
“‘박근혜 불가론’은 이제 박 전 대표 자신이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7년 경선에선 ‘한나라당 대선 후보 확정=당선’ 분위기였지만, 5년간 보수정권을 경험한 국민들의 표심과 정치적 상황이 그때와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친이계 핵심 관계자의 분석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불가론’은 지엽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본선을 생각하면 ‘한나라당 박근혜 불가론’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야당에서 다자(多者)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야권연합과 후보단일화가 연거푸 터져 나올 것이다. 이때 5년간 보수정권을 경험한 국민이 ‘한나라당은 안 돼’ 하고 등을 돌린다면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역시 당선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사건 등 현재 한나라당 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치발전을 이뤄내야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세력과 자리에 연연하면 당내 경선은 통과해도 본선에서 야당 주자에게 패할 가능성이 높다. 불가론은 박 전 대표가 스스로 만들 수도,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