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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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테제베’vs 獨 ‘이체에’ 누가 웃을까

지금 유럽에선 철도전쟁 … 상대국서 영토 확장 ‘진검승부’

  • 슈투트가르트 = 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10-01-21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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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회 의원인 미하엘 크라머는 베를린 ‘초(Zoo)’역에서 기차를 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역이 서베를린 교통의 중심이라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2006년 중앙역이 동서 베를린 중간쯤에 새로 만들어진 후 초역엔 더 이상 이체에(ICE) 등 고속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교통 전문가이기도 한 크라머 의원은 여행객의 처지를 대변해 “초역에서도 고속열차를 탈 수 있게 해달라”며 여러 차례 독일철도(DB)에 건의했으나 거절당했다. 독일철도가 민영화되긴 했지만 독일의 모든 기차운행을 독점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독점 시대는 끝났다. 크라머 의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한 셈인데, 유럽의회에서 유럽 전역 장거리 여객노선의 개방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 결의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유럽연합(EU) 전역에서 이론상 누구나 기차를 운행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열차회사 간의 경쟁구도 덕에 저렴하고도 편안하게 유럽을 여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독일 독점 어장에 뛰어든 프랑스 국철

    이 조치를 기다렸다는 듯 프랑스 국영철도(SNCF)는 지난해 11월 독일 내 일부 구간 선로 사용을 신청했다. 프랑스 국영철도가 탐낸 구간은 독일에서도 이용객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베를린을 연결하는 선로다. 이제 파란 빛깔의 테제베(TGV)가 독일 전역을 누비며 독일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TGV는 2007년 6월부터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와 뮌헨까지 들어오고 있다. 독일은 반대급부로 프랑크푸르트~파리 노선에 ICE를 보내고 있다. 이는 독일철도와 프랑스 국영철도의 시범적 협력사업으로 운영수익을 정확히 반분(半分)하고 있는 상황. 그렇지만 이번에 프랑스 국영철도가 독일에서 철도사업을 하려는 것은 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협력이 아닌 경쟁을 하겠다는 것으로, 독일철도가 독점하던 어장에 뛰어들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독일철도와 프랑스 국영철도는 각각 자산규모 335억 유로와 252억 유로를 보유하고, 선로운송사업체 세계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다. 사람들은 종종 독일철도의 ICE와 프랑스 국영철도의 TGV를 비교한다. 속도는 TGV가 앞서고 승차감은 ICE가 낫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런 비교를 통해 일종의 원거리 포격전을 했지만 이제는 지상군의 피 터지는 백병전이 벌어지게 됐다. 어느 한쪽으로 승객의 선호도가 쏠리는 날에는 다른 한쪽이 사업 철수 내지 굴욕적인 인수합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독일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EU 권역 내 화물수송 개방은 이미 2007년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독일철도는 영국 최대 규모의 철도 화물운송 회사인 EWS를 인수해 결과적으로 EWS의 프랑스 지사인 카르고 레일(Cargo Rail) 또한 인수했다. 독일철도는 말하자면 뒷문으로 벌써 프랑스 철도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어느덧 프랑스 전체 물류 운송의 8%를 담당하는 독일철도의 이용률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철도가 프랑스 선로를 이용해 자동차 등을 스페인 등지에 보내고, 거기에서 농산물을 독일로 가져올 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 국영철도는 화물 수송에 취약한 편이다. 인건비가 높을 뿐 아니라 파업이 잦아 수송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이 분야에서 6억 유로(약 1조60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프랑스 정치권 역시 지금까지는 홍보 효과가 큰 초고속열차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분위기여서, 화물수송 시장은 독일에 승산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여객사업은 사정이 다르다. 철도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초고속열차 운영에서는 프랑스가 한 수 위다. 전체 선로망은 독일(3만3862km)이 프랑스(2만9473km)보다 길지만, 초고속열차 선로만 놓고 보면 프랑스(1880km)가 독일(1300km)보다 앞선다. 또한 프랑스는 2020년까지 2000km의 초고속열차 망을 더 깔기로 결정했다. 차체 성능에서도 TGV는 국제적 공인을 받았으며, 현재도 최고 시속을 경신 중이다. 반면 독일의 고속열차인 ICE는(최신 모델인 ICE-3을 제외하고는) 전력공급 장치에 약점이 있어 고가의 변압기를 장착하지 않고는 독일 국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獨 기차회사 프랑스에 고발장 접수

    게다가 국영기업인 프랑스 국영철도는 국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다. 법 규정에 따르면 프랑스 국내선 사업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오직 프랑스 국영철도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프랑크루르트에서 출발해 파리로 가는 ICE는 중간 지점인 메츠에서 승객을 단 한 명도 태울 수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기존처럼 프랑스 국영철도가 운영하는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또한 프랑스는 ‘유럽 장거리 여객철도 개방에 대한 EU의 결의문’에서 ‘이 조치로 국내 노선이 영향을 받는 것을 각국은 막을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찾아냈다.

    독일이 기대를 걸고 있는 프랑스 물류시장에는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린다. 매년 큰 적자를 보면서도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버티던 프랑스 국영철도의 화물운송 자회사 프레(Fret)가 최근 사르코지 정부의 보조금 7억 유로를 이용해 운송단가를 덤핑 수준으로 낮춘 탓이다. 이는 프랑스 국내시장을 잠식해오는 외국 경쟁사들을 단번에 몰아내려는 조치로 보인다.

    프랑스 땅에서 외국 기차가 달리긴 어려워 보인다. 반면 독일 땅에서 프랑스 기차는 활개를 치며 달릴 것이다. 이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몇몇 도시 연결 노선 같은 것은 프랑스 국영철도의 자회사인 케올리스(Keolis)가 계약을 따냈고, 2011년부터는 프랑스의 상징인 TGV가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함부르크 같은 주요 도시를 신나게 달릴 예정이다. 독일의 철도시장은 이미 개방됐기 때문에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불공정한 상황에 분개한 독일 국민은 정부가 나서서 조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독일연방 교통부 장관 페터 람사워는 프랑스 측에 항의하며, 프랑스 못지않은 수십억 유로의 지원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정부의 최근 정책기조는 ‘절약’이다.

    독일철도 관계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독일 철도시장이 잠식될 수 있다고 판단, ‘2007년 알레오’(Alleo·독일철도와 프랑스 국영철도가 공동으로 세운 회사로 TGV의 슈투트가르트 운행과 ICE의 파리 운행을 주관한다)의 공동 설립과 같은 평화적 협력관계를 유지하자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는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자고 외치고 있다. 마침내 독일철도가 프랑스 공정거래위원회에 60쪽에 걸친 고발장을 접수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철도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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